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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첫 심경 고백

갑작스레 아내 떠나보낸 아픔 딛고 재기 모색하는 프로바둑기사 유창혁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서정보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4.07.12 10:47:00

프로바둑기사 유창혁 9단의 부인 김태희 아나운서가 급작스럽게 사망한 지 넉달이 지났다.
그동안 아내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바둑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그가 최근 슬픔을 뒤로 하고 조금씩 재기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가 아내를 잃은 황망한 심경과 근황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갑작스레 아내 떠나보낸 아픔 딛고 재기 모색하는 프로바둑기사 유창혁

대국 중에도 문득 죽은 아내가 생각나 집중이 잘 안된다는 유창혁.


“요즘 들어서 ‘아내의 죽음이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서히 적응이 되는 건지….”
프로기사 유창혁 9단(39)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사랑하던 아내(MBC 아나운서 김태희)를 떠나보낸 지도 벌써 넉달이 되어간다. 처음 두달여 동안은 아내가 아직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문을 열고 “여보” 하면서 자신을 부를 것 같았고 전화를 걸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오늘 일찍 들어와” 하고 말할 것 같았다고.
그는 같이 살던 용산구 서부이촌동 집에서 아내의 물건을 하나도 치우지 않았다. 아내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
그런데 그는 최근 용산의 한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겼다. 아내와의 추억이 가득한 집에서 질식할 것 같아서였다. 동훈과 정훈 두 아들은 수유리에 있는 친할머니 집으로 보냈고 주말에만 만난다고 한다.
“아내가 예정보다 한달반 일찍 출산해 인큐베이터에 있던 둘째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위안이 됩니다. 17개월 된 큰아이는 뭘 아는지 병원 한번 안 가던 아이가 아내가 숨진 뒤 감기, 장염으로 두번이나 병원 신세를 졌어요. 하긴 매일 자기를 예뻐해주고 챙겨주던 사람이 없어졌으니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겠지요. 가끔 엄마를 찾아 보채기도 하고…. 곧 부모님,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는 가급적 늦은 시간에 오피스텔로 귀가한다. 혼자 있으면 쓸데없는 생각이 날 때가 많아 최규병 9단, 김영환 7단, 이재일 아마 5단 등 어릴 때부터 함께 바둑을 공부했던 사람들과 어울리다 늦게 귀가한다.
“아무 약속이 없을 땐 집에서 가끔 한잔씩 합니다.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인데 요즘은 마시는 양이 조금 많아졌어요. 새벽에 깨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그럴 땐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달랩니다. 술을 좀 줄이긴 해야 하는데….”
그는 아내가 숨진 지난 2월29일에 아내를 혼자 자게 한 것이 아직도 후회된다고 했다. 그날 부부는 오전 1시반까지 안방에서 TV 영화를 봤다. 다음날 친가 식구들과 함께 교외로 놀러 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평소엔 늘 함께 잤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아내가 ‘당신은 오래 운전을 해야 하니까 피곤하지 않도록 내가 큰아이를 데리고 옆방에서 자겠다’고 했어요. 별 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죠. 아내가 조산과 빈혈로 인해 몸이 안 좋긴 했지만 그날은 병원에 있는 아이에게 수유까지 해주고 온 터라 별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른 방에서 문을 걸어놓고 자고 있더라고요. 불면증이 있던 아내가 오랜만에 단잠을 자는 것 같아 깨우지 않고 내버려뒀어요. 점심 무렵 장모님과 처제가 찾아왔길래 깨우려고 방문을 두드렸는데 도무지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억지로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한때 김태희씨 옆에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는 것 때문에 많은 억측이 나돌기도 했다.
“불면증이 있는 아내가 가끔 술 한잔을 먹고 자곤 했는데 그날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는 ‘평소처럼 같이 잤다면 아내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을 것이며 상태가 나빠져도 금방 병원으로 데려갔을 텐데’하는 생각에 한동안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고 한다.
유창혁·김태희 커플은 바둑계에서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99년 10월 결혼했을 때 프로기사와 아나운서의 결합은 유례가 없던 것이어서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결혼 전 김씨의 집에서는 “승부사의 아내는 평생 ‘고3 수험생을 둔 부모’처럼 가슴 졸이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주 한 병을 들고 김씨 집에 찾아가 장인과 담판을 지은 유씨의 ‘승부수’가 성공을 거두며 결혼에 골인했다.

갑작스레 아내 떠나보낸 아픔 딛고 재기 모색하는 프로바둑기사 유창혁

신혼 초 대국을 마친 유창혁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던 생전의 김태희 아나운서.


신혼 초 김씨가 대국을 마친 남편의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준 일이 있었다. 이를 찍은 사진은 두 사람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있다. 유씨는 자주 ‘뽀뽀’로 애정을 확인해주던 다정다감한 남편이었다. 김씨는 평소 “유 9단이 내 남편이라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하고 말하곤 했다. 활달한 성격의 김씨는 후배 기사들과도 잘 어울려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이창호 9단도 김씨를 ‘누나’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아내가 결혼 후 제게 바둑을 배워 한 15급쯤 됐어요. 가끔 25점을 깔고 바둑을 두면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하더군요. 시간이 별로 없어 자주 둬주지 못했는데 그게 후회됩니다.”

처음엔 실감이 안 나 슬픈 줄도 모르겠더니 이젠 ‘아련한 슬픔’이 가슴에 자리잡아
아내가 죽은 뒤 유씨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2월까지 성적은 7승2패였지만 이후 12승14패. 3월초 열린 맥심배 결승에선 루이나이웨이 9단에게 1대 2로 패했다. 최근 성적도 들쭉날쭉하다. 세계 기전에선 LG배 세계기왕전 8강과 후지쓰배 4강에 오르며 약진하고 있지만 국내 기전에선 자주 패점을 기록하고 있다.
“바둑 둘 때 문득 아내 생각이 나면 머리가 멍해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중력이 떨어질 나이인데 바둑 판에 온 정신을 쏟아부을 수가 없어요.”
주위에선 그래도 유씨가 뛰어난 기재(棋才)를 갖고 있어 힘든 상황에서도 이 정도의 성적을 낸다고 보고 있다. 최규병 9단은 “요즘 많이 안정을 찾았어요. 바둑 내용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로 돌아가려면 한참 더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유씨는 잡념을 잊기 위해 많은 일을 벌여놓았다. 우선 최 9단과 함께 바둑도장을 열었다. 현재 제자는 7명. 대국이 없는 날이면 오전부터 나가 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어린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한다.
그는 한주에 한번 아내의 유골이 있는 경기 고양시 벽제 근처의 해인사 미타원을 찾는다.
“미타원을 찾아가면 ‘정신차려야겠다, 그게 아내를 위한 도리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마음의 응어리를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아 슬픈 줄도 모르겠더니 이젠 ‘아련한 슬픔’이 가슴에 자리잡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건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겠죠.”

여성동아 2004년 7월 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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