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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웃음을 만드는 삶의 지혜

입력 2004.07.05 17:44:00

웃음을 만드는 삶의 지혜

유쾌한 농담과 칭찬 한마디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즐겁게 만드는 삶의 윤활유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로 코앞에 닥친 문제에 대해서도 하찮게 여기는 낙천적인 사람이 있다. 인생이 즐겁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하단 걸 잘 알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지금부터라도 주문을 걸어야겠다. ‘난 행복하다. 난 사랑한다. 모든 것이 유쾌하다.’
지난 6월초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사망했다. 아흔세살이니 천수를 누린 셈이지만 12년간 알츠하이머병(치매)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항상 갸우뚱하게 고개를 틀고 싱글벙글 웃는 표정이 인상적이던 레이건 대통령. 주변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던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니 만난 적도 없지만 진심으로 명복을 빌고 싶어진다.
각종 매스컴에서는` ‘냉전을 뛰어넘은 미국인의 우상’ ‘냉전 종식의 영웅’ 등의 용어를 쓰며 그가 재임시절에 이룬 업적을 재평가하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정치적 업적보다 인간적인 면에 더 호감을 느낀다. 그는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하는 등 고생을 하며 자랐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배우가 되었지만 톱스타도 아니었다. 첫번째 부인 제인 와이먼은 할리우드에서 그보다 더 유명한 배우였다. 그는 TV 드라마나 기업 광고에 출연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런 그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또 연임되고 퇴임 후에도 사랑 받는 비결은 그의 끝없는 낙관주의 때문이 아닐까.

저격 당해 수술 받고도 아내에게 농담 던진 레이건
그는 남루하고 초라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항상 밝은 미래를 생각했고 삶의 불공평함을 투덜거리기보다 현실의 어려움을 가볍게 여기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숱한 인생의 역경 속에서도 그는 웃고 손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그런 침착함과 안정감이 그를 믿음직한 미국 대통령으로 신뢰를 받게 했다.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삶은 감자뿐이라면 “이 따위 식은 감자나 먹어야 한다니 정말 비참하군” 하며 불평하기보다 “이 다음엔 꼭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거야. 그러려면 지금은 이 감자를 먹고 힘을 내야지. 그런데 이 감자, 정말 고소한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고단함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승화시키는 재능을 보여줬고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던져주었다. 무엇보다 그의 보석 같은 재능은 유머감각이다. 우리 정치인들도 그의 유머감각과 포용력을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 영웅이나 위인은 그들이 처한 시대 상황이 만든다지만 유머와 관용의 마음은 자신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당시 상대 후보였던 먼데일이 그의 고령을 문제 삼았을 때도 그는 “내 경쟁자의 젊음과 미숙함을 정치적 목적에 악용하지 않겠다”고 받아넘겨 일흔세살의 나이를 ‘성숙한 연륜’으로 만들었다. 또 정신질환자로부터 저격을 당해 수술을 받고도 병원을 찾아온 낸시에게 “여보, 미안해. 머리 숙이는 걸 깜빡했어. 그런데 제일 비싼 양복에 구멍이 나서 어떡하지?” 하고 말해 아내를 안심시켰다. 멕시코 순방을 다녀와서는 “난 내 말을 통역하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웃을 때마다 따라 웃었다”며 자신의 무지(?)까지도 웃음거리로 삼는 여유를 보였다.
또 비서실장직을 제의하기 위해 베이커 전 상원의원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부인이 “각하, 우리 그이는 손자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서 집에 없답니다”하고 말하자 레이건은 “내가 그를 위해 더 흥미로운 동물원(백악관)을 생각해뒀다고 전해줘요” 하고 말했다고 한다.

웃음을 만드는 삶의 지혜

게다가 그는 아주 로맨틱하고 성실한 남편이었다. 두 사람은 신인 배우였던 낸시가 할리우드에서 한창 공산당원 색출 바람이 불던 시절에 의혹을 받게 되자 영화배우조합장이었던 레이건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면서 사랑에 빠졌다. 1952년에 결혼한 그들은 52년 동안 잉꼬부부로 살았다.
아내 낸시는 그에게 안정감과 사랑, 질서를 선물했다. 그는 부인을 ‘마미(엄마)’라고 부르며 의지했으며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수시로 편지와 메모를 보내고 선물을 잊지 않았다. 혼자 일하러 간 출장길에서 그는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남자는 심장이 없으면 살 수 없는데 당신은 나의 심장이야. 당신이 없으면 삶도 없어. 그런 삶은 원치도 않아.”
열정으로 눈이 먼 신혼시절에 주고받은 편지가 아니다.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각해지기 전까지 그는 항상 낸시에게 키스를 퍼부었고 같이 다닐 때는 손을 잡았고 생일 카드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잊지 않았다. 아주 매력적인 존재여서가 아니라 서로를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반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이 평생 주고받은 편지와 메모는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나도 레이건의 낙관적인 사고를 닮고 싶다. 항상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조금만 일이 잘못되어도 세상이 무너진 듯 호들갑을 떨고 팔자타령을 일삼았지만 이젠 “잘 될 거야”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재미있다” “신난다” 등의 말을 자주 해야겠다.
당연히 유머감각도 배우고 싶다. 딱딱하고 난처한 상황에서도 유머는 상황을 부드럽게 반전시킨다. 얼마 전 중요한 분을 소개받는 자리에 늦게 도착했다. 그 자리를 주선해준 분이 더 초조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정말 죄송합니다. 다리가 워낙 짧다 보니 좀 시간이 걸렸네요. 다음엔 바퀴 달린 운동화를 신고 올게요” 하고 말했더니 다들 웃음을 터뜨렸고, 그 다음 이야기도 쉽게 풀렸다. 요즘 내가 텔레비전 화면에 예쁘게 나온다면서 성형수술이라도 했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카메라 마사지를 받아서 그런가 봐요. 카메라가 저랑 친해지니까 잘 나오게 해주더군요. 나이 들수록 더 예뻐지면 어떡하나….”
앞으로 몇 년을 더 살건 징징거리고 궁시렁대기보다는 사소한 일에 감격하고 신나게 웃으면서 살아야지. 너무 웃어서 하회탈 같은 주름이 지더라도 나도 남들도 즐겁게 해주며 살고 싶다.


여성동아 2004년 7월 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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