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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빠의 고백

폭력 가장에서 자상한 아버지로 변모, 가족의 행복 되찾은 이상운씨

■ 기획·이한경 기자 ■ 글·이승민 ■ 사진·지재만 기자

2004. 06. 10

2년 전만 해도 권위적이고 무서운 모습으로 아이들과 제대로 된 대화 한마디 안 하고 살았던 이상운씨. 하지만 그는 한 민간단체의 아버지학교에서 5주 동안 교육을 받은 후 자상한 아버지가 되었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가는 이상운씨를 만나보았다.

폭력 가장에서 자상한 아버지로 변모, 가족의 행복 되찾은 이상운씨

“결혼한 후 꽤 오랫동안 제대로 된 남편 노릇, 아빠 노릇을 못했다는 게 참 후회가 돼요. 매일 술 먹고 담배 피고 소리 지르고 아이들 앞에서 아내를 때리기까지 했으니까요.”
인자한 얼굴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분히 과거를 회상하는 이상운씨(42). 지금 그의 모습에서 과거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던 모습을 상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운씨는 그동안 아내나 아이들이 모두 자기 뜻에 맞춰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자기 뜻에 맞지 않을 때는 술을 먹고 술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고 했다. 자기 말에 반응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아빠를 무시하는 거냐”며 큰 소리를 쳤고 아내를 향해서는 자신도 모르는 새 폭력을 휘둘렀다.
그렇게 가정을 살얼음판으로 만들며 살아오기를 10여 년. 한번은 이상운씨의 폭력으로 아내의 갈비뼈 5대가 부러지는 큰 사고가 있었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 아내 김영임씨(44)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살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아들 웅렬이(15)와 딸 예지(14)가 있었으나 아빠에게 맞고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느니 따로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아내를 보며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후회를 했는데 아내의 결심이 너무나 확고해서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아시는 분이 이혼을 할 때 하더라도 ‘아버지학교’를 한번 다녀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들은 아내도 그러면 아버지학교를 수료하고 그때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했고요. 그때는 무조건 이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버지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받지 못하고 자라 아이들 대하는 법 배우지 못해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에서 운영하는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10시 반까지 5주 단위로 진행되었다. 첫번째 강의가 있던 날은 무척 힘들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모두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둘째주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자신이 왜 가족들을 힘들게 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어요. 아버지가 두 집 살림을 하셨거든요. 어머니와 저희 3형제를 버려두고 다른 집에서 평생을 사셨어요. 그래서 자라는 동안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컸어요. 내 자식들에게만큼은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제가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예요. 아내와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요.”
아버지학교에서는 매주 아내와 아이들에게 편지쓰기, 하루에 한번씩 아이들 안아주기, 칭찬하기 같은 숙제가 주어졌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무뚝뚝하게만 대해온 이씨에게 여간 힘든 숙제가 아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이들도 저도 쑥스러워서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아이들을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다가가면 아이들이 갑자기 왜 그러냐며 자리를 피했죠. 그럴 때 예전 같으면 화를 버럭 냈을 텐데 그러지 않고 다시 한번 시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도 변한 저의 모습을 보고 좋아하더라고요.”
이렇게 지내기를 5주. 이상운씨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우선 자신이 힘들 때마다 의지했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더 큰 변화는 아버지학교를 수료하고 아버지학교 도우미로 활동하면서부터 나타났다.
아버지학교 도우미는 수료를 마친 사람들이 처음 아버지학교에 등록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씨는 도우미로 활동하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증오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폭력 가장에서 자상한 아버지로 변모, 가족의 행복 되찾은 이상운씨

이상운씨는 과거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치고 아내에게는 폭력을 휘두르는 가장이었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고 제 아이들에게 저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지난해 11월 극동방송에 출연해서 했는데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이씨는 아버지의 부음을 열흘이 지난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크게 화를 내며 술을 마셨겠지만 그는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묘소를 찾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가족이 불행하면 소용 없어
이런 이씨의 변화를 가장 반기는 것은 바로 아이들. 웅렬이는 “술만 마시면 포악하게 변하는 아빠가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대화도 많이 하고 잘 놀아줘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웅렬이의 희망사항은 장차 이씨처럼 자상한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예지 또한 변화된 아빠를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
“아빠가 술을 끊으신 후부터는 무슨 일이든 말로 하세요. 또 저에게 전화하실 때마다 ‘사랑하는 예지야’ 이러시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제가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요.”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아이들에게 가족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는 것. 앞으로 우리 가족이 더 잘 될 것이라는 희망에 더욱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이상운씨처럼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도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사랑 표현에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마음속으로는 자식에 대한 사랑, 아내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지만 밖으로 나오는 말은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이씨는 이런 아버지들에게 표현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정은 작은 천국이에요. 일에서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더라도 아내와 아이가 행복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특히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빠와 멀어지기 쉬운데 마음속에 가득 담긴 아빠의 사랑을 표현하기만 하면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어요.”
이상운씨가 알려주는 아이사랑 비법은 두 가지. 첫째는 자주 안아주라는 것.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 어떤 말과 선물보다 아이에게 더 큰 감동을 전해준다고 한다. 둘째는 칭찬을 많이 하라는 것. 하루 한번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사랑하는 선아야, 오늘도 너의 꿈을 이루는 보람된 하루를 보내거라’ 하고 이야기해주면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지금은 사춘기 아들과 침대에서 뒹굴며 장난을 칠 정도로 가까워진 이상운씨. 그는 “우리나라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배우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아버지가 바뀌면 가족이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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