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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사랑을 나눠요

어린이도서관 자원봉사 하는 주부 주정원

“보람도 느끼고 아이가 책 읽는 습관 들여 더욱 좋아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안소희‘자유기고가’ ■ 사진·김형우 기자

2004. 06. 04

어린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주정원씨(35). 그는 봉사활동을 통해서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보람을 얻을 뿐 아니라 아이가 책 읽는 습관을 들이고 공동체 문화를 체험하는 등 유익한 체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와 가족의 삶에 소중한 일이 되었다는 따뜻하고 행복한 도서관 자원봉사 이야기.

어린이도서관 자원봉사 하는 주부 주정원

“엄마, 도서관 가는 거지? 빨리 빨리 해.” 동환이(6)는 아침부터 설거지하는 내 손을 잡아당기며 서두르라고 성화다. 감기 때문에 유치원도 쉬고 있는 녀석이 도서관 가는 날은 귀신처럼 알고 아까부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대고 있는 것이다.
“동환이 도서관 그렇게 가고 싶어?”
“응!”
“왜?”
“동식이 보러.”
그럼 그렇지. 아이가 이렇게 책을 좋아했나 싶어 내심 뿌듯해했더니…. 그래도 여섯 살배기 동환이가 도서관을 놀이터처럼 친근하게 여기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아니, 이렇게 아이와 함께 기쁘게 외출할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만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지난해 여름 처음 도서관을 찾던 때를 기억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린이 도서관-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간판을 보고 기웃거리고 있는데 동환이가 말릴 새도 없이 쌩하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따라 들어가 보니 여느 도서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마치 어린이집처럼 느껴졌다.
인사를 건네는 도서관 선생님께 엉겹결에 “여기, 책도 읽을 수 있나요?” 하고 물었다. 도서관에서 ‘책도 읽을 수 있느냐’고 물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마는 선생님은 “그럼요” 하며 활짝 웃었다. 도서관은 딱딱하고 엄숙한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어린이 도서관과의 인연은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바꾸는 ‘작은 혁명’이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 수연이(9)는 동생 동환이 손을 잡고 매주 2~3일은 꼭 도서관을 찾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벗어놓기 무섭게 학원이나 게임방을 찾는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뿐만 아니다. 동환이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또래 모임에 참여해 연놀이와 팽이치기 등 신나는 공동체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또한 주말이면 도서관 회원들과 함께 주말농장을 찾아 상추씨도 뿌리고 배추 싹에 물도 주면서 맨발로 흙을 밟아보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도서관은 어느새 사랑방이 되었고 삶의 소중한 일부가 되었다.
어린이도서관 자원봉사 하는 주부 주정원

그러던 중 작은 도서관이지만 손 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정리, 청소 같은 간단한 일에서부터 비품관리, 도서목록 정리, 회원관리, 대출관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숨은 손길이 필요했다. 또 어린 아이들이 이용하다 보니 책들이 찢어지기 일쑤여서 책을 하나하나 싸는 것도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이용하는 엄마들의 모임이 생겨났고 자원봉사 모임으로 이어졌다. 도서관 상근 선생님들이 미처 하지 못하는 일들을 찾아 하나하나 역할을 나누게 되었다. 컴퓨터가 익숙한 엄마들은 홈페이지에 자료를 올리고 도서목록을 입력하는 일을 했고, 손재주가 좋은 엄마들은 도서관을 예쁘게 꾸몄다. 신발장 정리, 방청소 등은 너나없이 함께 했다. 처음에 6천여 권에 이르는 책들을 정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한권 한권 자료가 쌓여갈 때마다 봉사팀의 기쁨과 자부심도 함께 쌓여갔다.

어린이도서관 자원봉사 하는 주부 주정원

주정원씨는 일주일에 두 번 동네 어린이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도서관을 꾸미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엄마가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혼자 오는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것, 아이들에게 올바른 독서예절을 가르치는 것, 각종 동아리(노래모임, 그림모임, 공동 육아모임)에서 재미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다. 나는 대학시절 노래패 활동 경험을 살려서 매주 금요일이면 노래하는 천사들의 선생님이 된다.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려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주일의 활력을 새롭게 충전받는 느낌이다.
상쾌한 초여름 공기를 가르며 도서관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동환이는 벌써 뽀르르 달려가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있다. 나는 신발장 정리는 잘 되어 있는지, 방석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꼼꼼히 둘러보고 난 후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은 게시판에 동시를 올리는 날. 매주 월요일 새로운 시를 게시판에 적어두는 것이 내가 맡은 일 중에 하나다. 없는 솜씨에 모양을 내려니 쉽지 않지만 아이들 눈에 쏘옥 들 수 있도록 정성을 들여야 한다.
이처럼 즐겁게 어떤 일을 한 것이 얼마 만인가? 두 아이와 집안일을 핑계로 밖으로는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스스로 두터운 벽을 쌓고 있었던 나에게 동화 속 마술처럼 이웃을 만들어준 이곳에 감사한다. 오늘도 아이에게 입으로는 책을 읽으라고 말하면서 손으로는 끊임없이 텔레비전 채널 순례를 하는 과거의 나 같은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마음을 열고 세상에 한 발 다가서자 세상이 내게로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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