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꽃이 눈을 어지럽히는 봄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꽃구경에 나서는 가족들 모습이 정겹다. 그러나 꽃이 많이 피어난 곳은 사람들 또한 많이 모여들게 마련.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보면 꽃구경은커녕 혹 아이라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게다가 꽃향기보다 진하게 밀려오는 장사치들의 음식냄새가 나들이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인파에 밀려 지나치듯 하는 꽃구경이 아닌 꽃의 특징과 생태, 이름의 유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서울 근교의 식물원이나 수목원이 적당하다. 애기똥풀, 각시붓꽃, 제비꽃처럼 그 이름 하나에도 정감이 배어 있는 꽃들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듣다보면 교과서에선 찾기 힘든 지식과 즐거움이 있다.
서울 근교의 대표적인 식물원으로는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과 용인의 한택식물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그곳 또한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주말이나 휴일에는 찾는 사람이 많다. 이에 비하면 경기도 양평의 ‘들꽃수목원’은 앞서 두 식물원과 규모나 식물 종류면에서 뒤지지 않으면서도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남한강변 맑은 물 따라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들꽃수목원은 떠드렁섬을 포함한 10만평 대지 위에 대규모 야생화 재배단지와 습지원, 아름다운 민물고기와 곤충표본실이 있는 자연생태박물관, 그리고 그와 연계된 생태환경체험장을 갖춘 곳이다. 게다가 식물모종체험, 천연염색 그리기, 개구리 생태체험, 습지 관찰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아스팔트 위에서 살아온 우리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더없이 적당한 곳이다.
사과·파인애플 맛 허브잎 먹고, 재미난 꽃말도 듣고
들꽃수목원은 계절별로 수수한 꽃을 피우는 각양각색의 야생화를 재배하고 있다. 논둑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풀부터 인적드문 산 속에 피는 희귀한 꽃까지 볼 수 있는 곳. 들꽃수목원 내 생태환경농업연구소 주변 돌담에는 잎 모양이 마치 단풍잎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돌단풍과 붉은 초롱이 아름다운 금낭화, 보리이삭처럼 생긴 깽깽이풀, 꽃봉오리 밑단이 날카로운 모양을 한 매발톱 등 재미난 이름을 가진 야생화와 할미꽃, 민들레, 제비꽃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야생화부터 쉽게 접할 수 있는 야생화까지 모두 6백여 종. 꽃마다 푯말이 꽂혀있어 혼자서도 재배원을 둘러볼 수 있으며, 원한다면 원예학과 출신 직원들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지난 겨울에 세워진 비닐하우스에 들어서면 후끈 불어오는 더운 공기와 함께 허브를 비롯한 열대식물들이 마치 미니어처를 보는 듯 아기자기하게 심어져 있다. 이곳에서도 재미난 꽃말의 설명은 계속되는데, 가장 인기있는 꽃이 바로 ‘미스킴 라일락’이다. 원래 국산이었던 이 품종은 미국으로 건너가 집집마다 정원수로 각광을 받은 후 다시 국내로 역수입됐다. 미국으로 건너갈 당시 이 꽃을 처음 본 미국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놀라자 옆에 있던 안내원이 그 꽃에 관해 설명했는데 그가 바로 ‘미스 김’이었다고. 후에 꽃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미국인들이 그 안내원의 이름을 빌려 꽃말을 붙였다고 한다. 당시 ‘미스 김’의 미모가 꽃보다 더 아름다워 미국인들이 그를 기억했을 것이라는 후일담도 재미있다.
이밖에도 유럽에서 향수의 추출물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는 꽃 헬리오 트러프트, 유럽과 러시아에서 핵발전소 옆에 많이 심을 정도로 오염 해독 능력이 좋다는 꽃 루핀너스의 설명에 이어 요즘 음료수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구와바 자몽 파파야 나무에 이르면 아이들의 얼굴엔 호기심과 함께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비닐하우스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허브잎을 맛보는 것. 설탕보다 당도가 50배 더 강하다는 ‘스테비안’을 비롯해 파인애플과 사과, 레몬맛이 나는 허브잎을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손끝으로 막 치고 지나가며 허브향을 만끽할 수 있는 로즈메리길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수목원 안에는 귤, 파인애플, 망고, 앵두, 살구 등 과실수도 많은데 모두 농약 및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그 자리에서 따먹을 수 있으며 칸사시, 옥살리스, 유리호프스, 다비움, 금잔화 등 형형색색의 원예종을 심어 가족사진의 배경으로 만들어놓았다.
교과서로만 보아온 곤충과 암석 직접 체험
들꽃수목원의 가운데 자리한 자연생태박물관은 생김새가 각시처럼 예뻐서 이름붙여진 각시붕어, 1급수 물에 사는 깔끔이 금강모치, 버들치, 쉬리 등의 민물고기와 호랑나비, 노랑나비, 흰나비 등 수많은 곤충은 물론, 우리 생태계를 파괴하는 미운 황소개구리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어린이들에게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해야 하는지에 대해 연구소 직원의 설명과 화상교육이 진행된다.
1층 곤충전시장에는 장수풍뎅이 등 살아있는 곤충들과 국내 곤충을 표본전시하고 있는데, 그들의 서식처와 주·야행성에 따른 동작들을 직접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자연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민물고기전시장에는 교과서로만 배웠던 쉬리, 피라미, 가물치나 버들붕어 등 환경오염 때문에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토종 민물고기와 외국에서 들여와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 블루길, 베스 등 외래어종을 볼 수 있다. 외래어 관상종에만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우리와 같이 살아온 토종 물고기가 어떤 것이 있는지, 자연환경에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는 현장. 철갑상어의 날카로운 이빨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토종 물고기에 피해를 준다는 설명을 듣고는 외래어종에 욕을 하는 아이 등 재미난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생태박물관 2층에는 지구과학관과 우주과학관, 영상관이 있다. 지구과학관에는 암모나이트 등 화석과 광물, 운석, 보석광물이 전시되어 있고, 우주과학관에는 여러가지 패널과 간단하게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는 미니 천문대가 설치되어 있다. 영상관에서는 여러가지 자연의 생태와 곤충의 생육과정을 담은 자연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다.
들꽃수목원은 원래 무전기, 통신망 등을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인 국제전자가 사원들의 연수원 부지로 조성했던 곳. 그러나 사원들의 공간으로 한정하기보다는 도심의 아이들에게 흙냄새와 들꽃향기를 선물하자는 취지에서 수목원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재미와 학습효과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 농학박사인 이상각 소장과 10여 명의 원예과 출신 직원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과 함께 진행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진행되는 농사체험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 유기농작물을 직접 심고, 수확하는 체험. 맨손으로 흙을 만지며 자신이 심은 작물이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들꽃 식물체험은 전문가로부터 각 들꽃과 식물에 얽힌 사연도 듣고 생태도 배우며, 우리 꽃모종을 예쁜 화분에 심어서 집으로 가져가 길러보는 프로그램. 야생화를 직접 심으면서 흙의 질감과 우리 꽃에 대한 전설 등을 통해 지식을 얻고, 직접 키워봄으로써 생명의 존귀함을 느끼게 된다.
자연에서 얻은 5가지 천연염색 물감으로 직접 화려한 손수건을 만들거나 자신의 물건을 마음대로 염색하는 천연염색 프로그램은 아이들과 부모에게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 자연에서 얻어지는 다채로운 색상의 신기함을 느낄 수 있다.
영상교육과 현장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개구리 생태체험은 알에서 부화되어 올챙이가 되고 뒷다리가 나오고 꼬리가 없어지며 개구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문가와 함께 영상으로 배우고 또 올챙이알을 채집해서 사육통에 담아 집에 가서 길러볼 수도 있다. 소금쟁이, 물방개, 게아재비, 물자라 등의 수서곤충과 수련, 부들, 갈대, 물달개비 등 수생식물을 관찰하는 습지 관찰체험은 생태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다양한 체험학습 후엔 자연학습 체험장에서 한바탕 뛰어 노는 것도 좋다. 동물체험장에는 염소·토끼·닭 등 아이들에게 친근한 동물들이 있어 직접 만져보고 먹이를 주며,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차가운 물에 들어가 돌과 수풀 사이에 숨어 있는 물고기를 찾아보는 민물고기 체험장은 부모 세대에게 유년 시절 친구들과 시냇물에서 물장구치며 물고기를 잡아본 기억을 되살려주는 곳. 각시붕어, 송사리, 미꾸라지 등을 풀어놓아 직접 잡으며 체험할 수 있다.
저녁 시간이 여유있는 가족은 수목원과 함께 자리한 자동차극장(문의 031-773-7893)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멋진 야경을 배경으로 최신영화가 상영되는데, 뒷좌석에서 아이들이 잠에 곯아떨어진 사이 부부만의 오붓한 영화감상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들꽃수목원은 등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가족쉼터, 기린동상과 고인돌이 있는 언덕, 창을 열면 남한강변이 시원하게 보이는 방갈로 등 쉴 곳이 많다. 도시락은 가져올 수 있으나 취사는 금지. 수목원 입구 옆에 자체 운영하는 식당이 있으며, ‘더 가든’에서는 허브와 야생화 모종을 구입할 수 있다.
그리 알려지지 않아 주말에도 비교적 한적한 들꽃수목원. 향긋한 꽃내음과 함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 들꽃과 허브, 민물고기와 나비를 찾아떠나는 가족나들이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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