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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사랑을 나눠요

사랑의 밥 나눠주는 주부 장미정

“아들 대영이 생일잔치도 거리의 노숙자들과 함께할 거예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안소희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4.05.04 13:47:00

신나게 살고 싶어 별명을 ‘신나라’로 지었다는 장미정씨(37). 지난해 10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 무료배식 봉사를 하며 수백 명의 이웃을 갖게 된 장씨는 “봉사란 나눠주는 게 아니라 깨달음과 사랑을 나눠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눈물섞인 밥을 퍼주는 장씨의 가족사랑, 이웃사랑.
사랑의 밥 나눠주는 주부 장미정

상쾌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힘차게 ‘밥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딱따구리 왔습니다!” ‘딱따구리’는 배식시간에 시끄럽게 재잘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내 별명이다. “오셨어요? 그럼, 시작할까요?” 먼저 도착하신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로 식사준비에 들어간다. 밥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국끓는 소리가 보글보글 들리면 오전 11시. 배식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밥을 푸는 것. 날도 제법 무더운 데다 밥열기까지 뜨거워 등줄기에서 주르르 식은땀이 흐르지만 차가운 냉골에서 주무신 분들은 이 밥 한그릇이 따스하게 느껴지는지 소중하게 담아가신다.
내가 ‘밥퍼’(밥퍼는 하루 한끼 무료배식을 하는 사회복지단체인 다일공동체의 별칭이다)를 알게된 것은 지난해 가을. 전부터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며 살자’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 가까운 곳에서 무료배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봉사를 해보니 ‘내 것을 나눈다’는 생각 자체가 교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나누어 받기 때문이다. 우선 많은 이들의 음식을 준비하면서 음식 솜씨가 늘었고, 훌륭한 분들을 직접 만나며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배웠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은 수백 명의 가족과 이웃을 얻었다는 점이다.
‘밥퍼’에서 봉사를 하기 전만 해도 요즘 같은 세상에 끼니를 굶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다. 더구나 거리의 노숙자들을 볼 때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대하기 꺼려지고 무섭기까지 했다. 그런데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해보니 하루 한끼도 드시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봉사활동 하며 음식솜씨 늘고 따뜻한 마음 배워
사랑의 밥 나눠주는 주부 장미정

이곳에서는 점심을 나누어드리고 있지만 아침, 점심, 저녁이 그분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저 이 한그릇이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하는 밥인 것이다. 그래서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생각에 배가 불러도 무조건 많이 먹는다고 한다. 이들의 고단한 하루를 알기에 이제는 남루한 차림새보다는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외면당한 마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밥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배식시간이 끝나가는 모양이다. 정신없이 밥만 푸다보니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아직 안 오셨나?’ 이맘 때가 되면 나는 으레 인천 할머니가 오셨는지 살피게 된다. 인천에서 이곳 청량리까지 매일 오신다는 인천 할머니와의 첫 만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한 할머니가 무언가를 봉투에 담고 계셨다. 나는 무엇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 여쭈어보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쁜 일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화들짝 놀라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자세히 살펴보니 국이며 반찬이며 밥이 범벅이 되어 비닐봉투에 담겨져 있었다. 할머니는 겁에 질린 얼굴로 “내가 이가 안 좋아…” 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아마도 내가 애써 담은 음식을 빼앗을까봐 두려우셨던 모양이다.

사랑의 밥 나눠주는 주부 장미정

일주일에 두번 무료배식을 하는 봉사활동을 통해 나눔의 사랑을 배워간다는 장미정 주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가 안 좋은 할머니는 정해진 배식시간 안에 음식을 드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까맣게 튼 손에 들려 있던 비닐봉투는 며칠이 지나도록 잊혀지질 않았다. 할머니는 그 비닐봉투를 들고 지하철을 타고 인천까지 가셨을까? 그날 이후 나는 인천 할머니께 미리 음식을 챙겨드리게 되었다.
잠시 후 인천할머니가 오셨다. “이제 오셨어요?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맛있게 드세요, 할머니.”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신다. 나는 할머니의 거북등처럼 갈라진 손을 꼬옥 잡아드렸다.
오후 3시경, 배식을 끝내고 내일 음식준비까지 마친 후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마당에서 조촐한 돌잔치가 벌어졌다. 요즘 ‘밥퍼’에서는 돌잔치나 결혼기념일 등 가족행사를 하며 이웃과 밥을 나누는 게 유행처럼 되었다. 얼마 전 한 신혼부부는 신혼여행 경비 일체를 밥퍼에 기증하고 신혼여행을 이곳에서의 봉사활동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오늘도 아이의 돌을 축하하며 온가족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의 따스한 사랑에 나까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나도 다가오는 아들 대영이(10)의 생일엔 이곳에서 생일잔치를 해야겠다. 얼마 전 대영이를 이곳에 데리고 왔는데 대영이가 음식을 드시는 어른들을 거리낌없이 대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대영이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없어서 심심했다고 말했다. ‘그래, 대영아. 네 또래 친구들이 항상 이곳에 가득한 그런 따스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치?’
따끈한 온기가 남아 있는 돌 축하 떡을 얻어들고 집으로 향한다. 나도 오늘은 이곳에서 한끼 사랑의 밥을 얻어가는 셈이다.


여성동아 2004년 5월 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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