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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국민 사랑받은 MBC 드라마 ‘대장금’ 작가 김영현

“20여년간 투병한 아버지 헌신적으로 돌본 어머니 모습 장금이에게 많이 반영됐어요”

입력 2004.04.02 10:04:00

MBC 드라마 ‘대장금’이 5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오다 3월23일 종영을 맞았다.
1년6개월여간의 집필 작업에서 비로소 벗어난 작가 김영현씨를 만나 드라마 ‘대장금’ 뒷이야기, 그리고 드라마 속에 투영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온국민 사랑받은 MBC 드라마 ‘대장금’ 작가 김영현

지난해 9월1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시청률 50%를 넘나들며 인기몰이를 해온 MBC 드라마 ‘대장금’이 화제리에 종영을 맞았다. 의녀 장금이 오래도록 자신의 옆에서 지켜봐준 말없는 후원자 민정호와 부부의 연을 맺고 의녀로서 자신의 의술을 완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 드라마는 그간 삽입곡 ‘오나라~’의 히트를 비롯해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드라마의 히트와 맞물려 관련 기록이 전무하다시피한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집필한 작가에게도 많은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3월15일 새벽, 드디어 마지막 대본을 완성한 작가 김영현씨(38)를 탈고 직후 만났다.
“새벽 1시에 완성하고 나서 만세를 불렀어요(웃음). 극이 해피엔딩으로 끝나 저도 기분이 좋았거든요. 게다가 너무 지쳐 있었어요. 드라마는 7개월 동안 방영됐지만 대본은 2002년 월드컵 끝나고 난 직후 쓰기 시작했거든요. 1년6개월이나 매달려 써왔으니 오죽했겠어요? 이 드라마 끝나면 바로 여행을 떠나기로 작심을 거듭해왔는데 드디어 내일 떠나요.”

그가 뽑은 명대사는 한상궁의 “맛을 그려보아라”
드라마가 끝났다는 것보다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50%대의 시청률을 유지했다는 것보다도 김씨는 당장 내일이면 여행길에 오른다는 사실에 더 설레는 모습이었다. 그는 MBC측에서 보내주는 포상해외여행과는 별도로 같이 작업해온 후배 작가 4명과 함께 그리스·터키로 10일간의 여행길에 오른다고 했다. 대본을 쓰면서 힘들고 갑갑할 때마다 그는 ‘이것만 끝나면…’하고 지중해의 해안을 꿈꿔왔다고 하는데, “내일 떠나요” 하며 웃는 환한 표정에서 그 홀가분한 심정이 생생히 전해졌다.
그는 그간 매주 2회 분량의 대본을 넘기는 생활을 해왔다. 매주 토요일 밤 12시에 대본을 넘기고 나면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하루 12시간씩 보조작가 2명과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극이 중반을 넘기면서부터는 아예 2명을 더 불러 5명이 끙끙댔는데, 줄거리가 서면 목요일부터 사흘간 집중적으로 글을 썼다고. 밤에 일이 잘 되다보니 오후 3~4시쯤 일어나 새벽 6시까지 일하고 해가 뜨면 잠자리에 드는 올빼미 생활이었다. 그나마도 스토리가 풀리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 드라마 쓰느라고 읽은 책이 수십권이 넘어요. 궁중음식 부분은 ‘한국음식대관’을 읽은 게 도움이 됐고, 한의학 부분은 ‘동의보감’을 한 차례 완독한 것으로 해결했어요. 지명은 ‘동국여지승람’을 뒤지는 식이었어요. 책 외에도 인터넷을 뒤져 ‘유황오리’같은 아이디어를 찾아내기도 했어요. 이런 식으로 요리나 의학관련 서적 수십권을 사다놓고 필요할 때마다 뽑아서 참조했어요.”
나이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관록의 작가는 아니다. 연속드라마를 쓰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고, 게다가 사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극, 그것도 역사적 기록이 전무하다시피한 한 궁녀의 삶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그는 사극에 관심이 많아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50부작을 해보는 게 처음이라 얼떨떨했을 따름이라고.

온국민 사랑받은 MBC 드라마 ‘대장금’ 작가 김영현

“좋은 대사나 재미난 스토리는 의외로 쉽게 생각난 경우가 많아요. 쉽게 떠오른 대사는 시청자 반응도 좋았고. 오히려 고민해서 만들어낸 부분이 억지스럽게 느껴졌나봐요. 큰 틀을 잡아놓고 시작한 거라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제주도 생활 부분처럼 시청자들이 재미없어 하는 부분은 저도 힘들었어요. 시청률도 의식하게 돼서 빨리 지나가게 했죠(웃음).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있다면 1부에서 장금의 아버지가 도사를 만나 세 여인에 대한 계시를 받는 대목이었을 거예요. 이 부분이 드라마 스토리 전체를 관통하는 부분이라 공을 많이 들였죠.”
‘대장금’엔 명대사 명장면들이 가득하다. 세자를 죽여달라는 중전의 부탁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권력의 손맛을 묻혀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라며 거절하는 장면이나, 한상궁이 장금에게 ‘맛을 그려보아라’고 하는 장면 등은 그 백미로 꼽힌다. ‘맛을 그려보아라’는 대사는 ‘창조하다’는 뉘앙스의 사극 단어를 고민하다 한 후배의 아이디어로 쓰게 됐다고 하는데, 너무 현대적이라는 반대도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학졸업 후 백수생활 등 방황하다 방송작가의 길 들어서
“처음엔 인기가 너무 높으니까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에요. 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소재나 주제가 색달랐다는 점이 제일 크지 않을까 싶은데…. 왕을 다룬 사극은 많아도 궁녀 이야기를 다룬 사극은 처음이었잖아요? 그리고 일종의 여성 성공스토리이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가족과 헤어져 여자들끼리만 살아가는 궁녀들의 삶이라 여자들끼리 맺어가는 인간관계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드라마를 쓰면서 그는 ‘혹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여자들끼리의 뜨거운 자매애나 시기와 질투 등 미묘한 심리를 너무 잘 묘사해낸 데다, 지금까지 독신을 고집하며 같은 드라마 작가인 여자후배 한 명과 자취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하고 싶어요. 결혼해야죠. 저 멋있는 남자 좋아해요(웃음). 이해심도 많고….”
“민정호란 인물에 이상형이 투영된 것 아니냐”고 거듭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 분명하게 대답하진 않았다. 그저 비슷하다는 반응이었는데, 민정호로는 성에 차지 않은 눈치.
“이상형이나 제 자아가 투영된 인물은 특별히 없어요. 다 골고루 제 모습이 투영됐겠죠. 몇 가지 모습에선 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반영됐다고도 생각돼요. 제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사셨는데 극중 한상궁이나 최상궁이 보이는 교사로서의 모습은 사실 부모님의 교육관에서 빌어왔지요. 아버지가 20여 년간 폐결핵으로 고생하셨는데 어머니가 직장 다니고 우리들을 키우면서 그 수발을 다 드셨어요. 그런 헌신적인 모습들이 장금이에게 많이 반영된 듯 싶어요.”

온국민 사랑받은 MBC 드라마 ‘대장금’ 작가 김영현

비교적 늦은 나이인 스물 일곱에 방송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삼십대 후반에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사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드라마 작가가 됐다. 연세대 경제학과 85학번인 그는 대학 졸업 후 1년반 동안을 ‘백수’로 지냈다. 그는 “시험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대학 생활을 한 탓인지, 내가 어리버리한 탓인지 대학 졸업 후 취직도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고 그 시기를 회고했다. 그러다 한 경제 잡지사에 들어갔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금방 나오고 말았다. 잡지기자로 일할 때 회사 인근에 개설된 작가강좌에 등록, 수강했는데 이것이 계기가 돼 방송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글 쓰는 것도 싫어하고…. 그냥 TV를 워낙 좋아했던 터라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거였죠. 그런데 제가 구성작가로 나선 게 스물일곱살 때다 보니 달리 다른 길을 찾기도 힘들어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일했죠. 처음엔 구성작가로 들어갔기 때문에 드라마쪽하고는 상관이 없었어요. 관심이 있던 터라 개인적으로 대본을 가져다 본 거죠. 그러다 인연이 돼서 보조작가로 일하게 된 거예요.”
그는 한동안 최완규 작가의 보조 작가로 ‘간이역’ ‘애드버킷’ 등의 대본을 쓰다 ‘간이역2’로 ‘입봉’을 했다. 그리고 지난 2001년엔 SBS 드라마 ‘신화’를 썼다. ‘대장금’의 히트로 이른바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간의 경력으로 보면 아직 신인작가인 셈이라 그에 대한 기대는 더욱 크다.
“다음 작품도 이병훈 PD와 함께 하기로 했어요. 애초 ‘토지’를 하고 싶었는데 SBS에서 먼저 해 개인적으로 안타까워요. 사극보다는 시대극이 더 매력적인데 마땅한 원작이 없어 ‘대장금’이 끝나면 감독님과 의논을 해야 할 듯 싶어요. 조만간 결정이 되겠죠.”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는 곧바로 ‘대장금’ 제작팀 1백여명이 참가하는 포상휴가를 가게 된다. 행선지는 빈탄이나 발리가 될 것이라고. 김영현씨에겐 지난 1년6개월의 피로를 모두 털어버릴 수 있는 행복한 4월이 될 듯하다.

여성동아 2004년 4월 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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