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앙드레김(69). 62년 첫 패션쇼를 연 이래로 2백여차례의 국내외 패션쇼를 통해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한 그는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인물이다. 김희선 장동건 차인표 최지우 배용준 등 국내 톱스타들뿐만 아니라 주한 외국 대사 부인, 스포츠 스타 등 다양한 인사들이 그의 패션쇼 무대에 섰고,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의 무대 연출은 패션쇼를 단순히 의상 홍보의 장이 아닌 ‘종합예술’로 승격시켰다. 이 때문에 굳이 패션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도 앙드레김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 그가 언론에 일절 알리지 않고, 아들 중도군(24)을 결혼시킨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지난 2월14일 서울 하얏트호텔 리젠시룸에서 현승종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의 주례로 거행된 중도군의 결혼식은 미국·오스트레일리아·핀란드·노르웨이 대사 부부 등 평소 앙드레김과 친분이 두터웠던 주한외교사절과 신랑 신부의 친지 및 친구들 1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하고 엄숙하게 진행됐다. 앙드레김은 60∼70년대를 풍미한 배우들을 비롯해 최근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신세대 스타까지 수많은 톱스타들과 폭넓은 교분을 유지해왔지만 이날만은 그의 주변에 연예인도, 각종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도 없었다. 이날 앙드레김이 손수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숭의여대를 졸업하고 지난 99년 말 ‘앙드레김 아뜨리에’에 입사한 디자이너 유은숙씨로 중도군보다 연상으로 알려졌다.
“요란한 결혼식에 강한 거부감, 신성하고 엄숙하게 치르고 싶었어요”
지난 3월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앙드레김 의상실에서 만난 앙드레김은 아들의 결혼식 이야기가 나오자 손을 모으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반복하며 너무나 아끼기 때문에 내놓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는 평소 번잡하고 요란한 결혼식에 강한 거부감을 느껴온 터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식만큼은 특별하게 치르고 싶었다고 한다.
“여러 결혼식에 초대받고 가봤지만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결혼은 아주 성스러운 것이잖아요. 우리 중도의 결혼식만은 신성하고 엄숙하게 감동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결혼식이 알려진 뒤에 차인표씨 등 여러분이 ‘왜 알리지 않았느냐’며 서운해하셨지만 조용히 성스럽게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소문이 안 날 수 있냐”고 묻자 앙드레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사 부부들만, 그것도 비서를 통하지 않고 그분들과 직접 통화해 초대했거든요. 제 뜻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이라 소문이 안 났어요. 축의금도 전혀 받지 않았고요.”
앙드레김은 82년, 생후 1년6개월 된 중도군을 입양해 홀로 키웠다. 중도군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아버지와 함께 패션쇼 리셉션이나 콘서트 오페라 등 각종 공연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때마다 앙드레김이 직접 디자인한 세일러복을 입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 이후로는 공식석상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함께 오페라를 관람하고 돌아와 산더미 같은 숙제에 눈물을 글썽이는 아들을 본 앙드레김이 그 뒤로 아들을 공식석상에 동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에게는 ‘유명해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보호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다. 그는 기자와 만난 날도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말을 극도로 아꼈으나 자신이 손수 준비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결혼식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했다.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인 결혼식이었어요. 12명의 코러스가 축가를 불러줬죠. 축가를 부르는데 컨덕터(지휘자)까지 있는 경우 보셨어요? 연세대 졸업생들로 이뤄진 12인조 합창단이 컨덕터와 함께 ‘생명의 양식’을 축가로 불러줬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앙드레김 패션쇼의 백미는 부케를 든 신부와 신랑이 이마를 맞대는 모습의 피날레. 패션쇼의 로맨틱한 웨딩 장면으로 결혼이 영원하고 성스러운 맺음이라는 것을 강조해온 그는 배우자를 맞는 아들에게도 벅찬 감동을 안겨줬다.
자신의 성장 과정 담은 영상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린 아들
“영상물을 준비했어요. 중도의 어렸을 때 모습부터 신랑 신부가 웨딩 촬영하는 모습, 결혼식 준비하는 모습 등이 담긴 3분50초짜리 영상을 준비했죠. 그룹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를 배경음악으로 했죠. 영상을 보면서 중도가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저는 그날도 울고, 그 다음날도 울었고요. 지금은 괜찮아요. 매일 보거든요.”
그는 아들 부부가 자신과 같은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신접살림을 차려 매일 얼굴을 마주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예의바르고 감성이 풍부하면서도 농구와 헬스를 즐기는 씩씩한 청년으로 자란 중도군은 앙드레김이 40대 중반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휴전선 이북이 돼버린 개성으로 시집가 소식이 끊긴 큰누나는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고, 부모와 나머지 형제 모두 세상을 떠나버린 앙드레김에게, 생후 1년6개월 때 처음 품에 안긴 중도군은 유일한 가족이다.
앙드레김은 중도군이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부터 “나는 너를 입양했다. 그러나 내가 낳은 것과 다름없다. 나는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입양사실을 감췄다가 뒤늦게 알려지면 아이에게 오히려 큰 충격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낳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자식간의 사랑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앙드레김은 두살 되던 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지는 바람에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새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1년 동안 어머니를 꿈에 그리며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최지우 배용준 등 국내 최고의 연예인은 물론 나오미 캠벨 등 세계적인 톱모델들이 앙드레김 패션쇼 무대에 섰다.
아들을 향한 앙드레김의 사랑과 희생은 그가 일에서 추구하는 완벽주의만큼이나 정교하다. 앙드레김은 자신의 아파트를 ‘중도의 세상’이라고 부르며 아들이 불편해할까봐 손님을 집에 초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중도군이 여섯살 때 한번 꾸짖은 뒤로는 회초리는커녕 혼을 낸 적도 없다. 중도군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게임기를 너무 오래 가지고 노는 것 같아 “이러면 안 되는 거야” 하고 방바닥을 손으로 치면서 야단을 쳤는데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우는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 그 다음날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앙드레김은 엄격한 아버지보다 아들이 허물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을 향한 앙드레김의 애잔한 마음은 2002년 출간된 그의 자서전 ‘My Fantasy’에 잘 나와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인데요. 한번은 집에 와서 이가 아프다고 해, 웬일인가 물었더니 3학년 형이 때렸다는 거예요. 아들의 말을 듣던 그날 저는 너무너무 분해서 잠이 안 왔어요. 밤새 한 잠도 못 잔 건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마구 떨렸어요. 분해서.”
다음날 앙드레김은 아들과 함께 스쿨버스에 올랐고, 아들을 때린 덩치 큰 상급생에게 다가가 “어린 동생들을 아끼고 사랑해야지, 이렇게 때려서야 되겠느냐”며 설득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교장 교감 담임교사를 만나 학교 폭력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폭력이 재발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학교를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그 뒤로 다행히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도 ‘극성 학부모’였다며 회고할 정도다.
앙드레김은 또한 중도군이 대학 1학년 때까지 아침마다 침대 위에 그날 입고 나갈 의상 ‘후보’ 세벌을 펼쳐 놓았다. 대학 2학년 때부터는 스웨터 티셔츠 폴라 재킷의 순서로 옷장에 옷을 진열해놓고, 아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교복을 입기 전까지는 손수 세일러복을 만들어 입혔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혼자서 부모의 노릇을 해온 것.
중도군 역시 아버지의 애절한 사랑을 잘 이해하고 말썽 없이 커줬다. 학창시절 매일 새벽 2∼3시까지 공부를 하는 바람에 앙드레김이 “공부 그만 하고 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을 정도라고. 앙드레김은 어려서부터 떼를 쓰거나 투정 부리는 일 없이 조용히 자라준 아들이 한편으론 측은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자유롭게 살도록 분가시켜, 내년쯤 미국 유학 보낼 계획
그러나 아들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고 이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왜 다른 친구들은 데이트도 하는데 저는 하면 안 되죠?” 하고 물은 것. 앙드레김은 아들에게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에 열중하고 대학교에 가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 너의 몸과 너의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무엇을 해도 좋다”고 얘기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수긍하고 공부에만 열중해 대학에 들어간 뒤에야 이성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토록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을 훌쩍 떠나보낸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까 싶다. 더욱이 중도군은 아직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 재학중인 학생으로 결혼하기엔 다소 이른 나이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앙드레김은 중도군이 2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아들이 하루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해왔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자신과는 다르게 아들이 사랑하는 배필을 만나 아기가 탄생하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걸 눈치챘을 때 앙드레김은 “들떠 보이지 않고, 허영스러워 보이지 않는, 올바른 여자를 사귄다면 얼마든지. 다만 섹시함에 속아서는 안된다”고 일러줬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앙드레김 의상실에서 만난 며느리 유은숙씨는 깨끗한 피부와 가지런한 몸가짐이 청순하고 지적인 매력을 풍겼다. 앙드레김은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진지하고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어 결혼을 허락했다”고 한다.
주한 외교사절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앙드레김은 나이가 지긋한 외국인들이 지갑에 며느리 사진을 넣고 다니며 며느리 자랑을 늘어놓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몫이라고는 하지만 앙드레김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두 사람이 자유롭게 살도록 분가시킨 것도 “신혼의 아기자기한 행복을 맘껏 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대학 4학년에 재학중인 중도군이 졸업하는 내년쯤 두 사람은 유학을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속옷 브랜드 ‘엔카르타’로 홈쇼핑에 진출하고, ‘앙드레김 키즈’라는 이름으로 아동복 시장에 명품 바람을 불러일으킨 앙드레김. 이제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며느리를 얻은 그는 앞으로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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