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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 이후 두문불출! 권양숙 여사의 요즘 심경 & 청와대 생활

“뒷산 오르고 청와대 산책하며 마음 다스려”

■ 글·구미화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4.04.01 18:05:00

지난 3월12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모든 권한을 정지 당한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청와대 관저에 칩거 중이다. 임기 첫해를 넘기자마자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보는 권양숙 여사의 요즘 심경과 청와대 생활을 밀착 취재했다.
탄핵안 가결 이후 두문불출! 권양숙 여사의 요즘 심경 & 청와대 생활

지난 3월12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58)은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등에 참석하기 위해 경남 지역을 방문중이었다. 노대통령은 이날 낮 12시쯤 보고를 받았지만 예정된 행사를 모두 소화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노대통령은 사진촬영 후 “내가 마지막일지 모르겠는데, 내년에도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졸업생들은 “파이팅, 파이팅”으로 화답했다. 이제 겨우 임기 첫해를 넘겼을 뿐인데 그 다음해 일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노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보는 영부인 권양숙 여사(57)는 착잡한 표정이었다.
탄핵 위기에 직면한 노대통령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영부인 권양숙 여사다. 권여사는 노대통령과 함께 경남 지역을 방문하던 중 탄핵안 가결 소식을 전해듣고, 예정돼 있던 여성단체장들과의 오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권여사는 “이런 사태가 벌어져 책임을 느끼며 죄송하고 부끄럽다. 모처럼 고향에 와서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씁쓸해했다. “(그간 대통령이 펼쳐온 정책이) 성과도 보지 못했는데 탄핵안이 가결돼 흥분되고 감정이 가라앉지 않는다. 세련되지 못한 언행으로 대통령이 공격받았으나,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만한 언행은 아니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날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을 끝으로 노대통령 부부는 모든 공식 일정을 중단한 상태다.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이상 노대통령은 국정개입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집무실에 나가지 않고 관저에만 머물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 또한 탄핵 정국 첫 주가 시작된 3월15일 이후 ‘입 단속’을 철저히 하고 있는 중이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 직원 조회를 갖고 “청와대는 홍보수석과 대변인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입을 닫으라”며 금언령을 내린 것. 노대통령이 탄핵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 어떤 내용이든 청와대 안에서 이야기가 흘러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탄핵안 가결 이후 청와대는 그야말로 정적에 휩싸여 있다”며 “대통령과 한 배를 탄 청와대 보좌진 역시 처음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는 정말 날벼락을 맞은 듯 당황했지만 지금은 말조심 몸조심하며 사태가 개선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청와대 분위기를 전했다.

“언행이 세련되지 못했으나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탄핵안 가결 이후 두문불출! 권양숙 여사의 요즘 심경 & 청와대 생활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노대통령 부부의 일과를 ‘감옥생활’에 비유했다. 노대통령 부부가 일절 외출도 하지 않고 관저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 탄핵안 가결 후 처음 맞은 휴일인 3월14일, 평소 주말처럼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가족과 함께 북악산에 오르기도 했으나 주로 관저에 머물며 탄핵정국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는 한편 책을 읽으며 재충전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노대통령은 권오규 정책수석이 추천한 영국 대처 수상의 평전 ‘마거릿 대처’를 읽기 시작했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소재로 한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 지방화의 성공적 추진 사례를 담은 ‘이제는 지역이다’ 등도 읽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중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이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 하면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화두와 함께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전투 전후의 심정과 권력의 덧없음, 한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무장으로서의 고뇌 등을 서술한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탄핵안 가결 이후 두문불출! 권양숙 여사의 요즘 심경 & 청와대 생활

공식적인 업무는 중단됐지만 대통령 신분이 유지되고 있는 이상 노대통령 부부를 수행하는 청와대 부속실 직원들은 수시로 관저를 드나들고 있다. 권여사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 관계자는 권여사의 근황에 대해 “지금 ‘잘 계십니다’라고 하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잘 있느냐’는 반응이 나올 것이고, ‘마음 아파하십니다’하고 말하면 ‘동정표 얻으려 한다’는 비난이 빗발칠 것이니 지금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다”며 난처한 입장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저희 앞이라고 해서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도 아니고, ‘괜찮다’ 하신다고 한들 그게 정말 괜찮은 거겠어요” 하며 “그 아픈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라고 말했다.
권여사는 평소 청와대 안의 수영장을 찾거나 저녁이면 대통령과 배드민턴을 치고, 요가나 맨손체조를 하는 등 운동으로 답답함을 해소해왔는데 지금은 어떤 활동도 여의치 않은 상황. 그저 한번 도는 데 20∼30분 소요되는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뒷산에 오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공식 일정이 전혀 없는 만큼 아들 건호씨나 딸 정연씨 부부 등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도 같은데 청와대 부속실 관계자는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며 “다만 이런 상황일수록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탄핵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리긴 했지만 사실 올초 노대통령 부부는 기쁜 소식을 두가지나 접했다. 지난 1월14일, 며느리 배정민씨가 첫 딸을 출산하고, 지난해 2월 결혼한 딸 정연씨가 임신 소식을 알려온 것. 특히 첫 손녀가 태어난 날이 마침 권 여사의 음력 생일(12월23일)이기도 해 권여사는 청와대에서 맞는 첫 생일날 뜻하지 않게 손녀라는 큰 ‘선물’을 받은 셈이 됐다.
그로부터 한달쯤 뒤에는 며느리 배씨가 딸의 모습, 신혼여행 등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남편 건호씨의 해외출장 사진 등과 함께 노대통령 내외가 손녀를 안고 흐뭇해하는 장면 등을 올려놓은 인터넷 홈페이지가 언론에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배씨는 특히 ‘뿌룩이 맘’ 코너를 통해 딸의 이름을 ‘노서은’이라고 짓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노대통령 내외는 손녀의 이름으로 ‘노일지’ ‘노다지’ ‘노생금’을 추천했다고 소개했다. 노대통령 부부가 “‘다지’라는 이름도 예쁘지만 금덩어리인 ‘노다지’를 이름으로 갖는 게 얼마나 좋으냐, ‘노다지’가 싫으면 한문으로 변형시킨 ‘생금’은 어떠냐”고 했다는 것. 하지만 노대통령 가족의 잔잔한 일상이 소개된 이 인터넷 홈페이지는 접속자가 폭주하면서 폐쇄됐다.
한편 권여사는 탄핵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임신초기인 딸 정연씨가 입덧이 심해 애를 태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의 부인이기 전에 어머니인 권여사는 딸을 향한 안타까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통에 여느 신부들처럼 어머니와 함께 다니며 마음놓고 혼수장만을 하기는커녕 모녀간의 애틋한 시간을 갖는 것마저 어려웠기 때문. 한편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직장(영국대사관)에 다니며 자신의 전문적인 역량을 키워가겠다고 했던 정연씨는 지난해 여름 영국대사관을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고, 결혼 당시 사법연수원생이던 남편 곽상언씨는 지난 1월, 법무법인 화우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안 가결 이후 두문불출! 권양숙 여사의 요즘 심경 & 청와대 생활

딸 정연, 아들 건호씨와 함께 한 노대통령 부부.


올초 청와대가 권여사의 지난 1년을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권여사는 그동안 3백50여개 행사에 참석해 1만여명을 만났다. 이는 대외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전임 이희호 여사와 비교할 때 활동량이 적은 것. 청와대 제 2부속실 관계자는 “권여사의 본격적인 활동은 총선 후 시작될 계획이었다. 취임 초부터 줄곧 관심을 가져온 아동 및 청소년 교육 문화 등과 관련된 활동 프로그램을 이미 작성해 놓은 상태인데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여사는 청와대 자료에서도 보여주듯 지난 1년 동안 독자적인 활동보다 대통령 내조에 더 열심이었다. 청와대 입성하기 전 음식 솜씨가 좋기로 소문났던 권여사는 ‘밥이 가장 좋은 보약’이라는 지론을 갖고 가족 건강 관리를 위해 특별히 음식에 신경을 써왔다. 권여사의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은 해물탕과 삼계탕 등을 최고로 꼽으며 권여사 자신은 미더덕찜을 가장 자신있어 한다. 노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 권여사는 말을 많이 해야하는 남편을 위해 기관지에 좋다는 오미자를 특급 건강식으로 내놓기도 했다. 인삼 달인 물에 오미자를 우려낸 원액을 한 스푼씩 넣어 인삼오미자차를 만든 것. 권여사는 청와대 입성 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거르지 않고 미리 만들어 놓은 경단과 함께 인삼오미자차를 내놓곤 했는데, 자연산 오미자가 워낙 귀해 오미자 원액을 신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하며 가족 중 오로지 노대통령 한사람에게만 권했다고 한다.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공식 일정이 없는 일요일 아침은 권여사가 직접 준비해왔는데 30년 넘게 권여사의 손맛에 익숙한 노대통령은 일요일 아침상을 기다렸다고 한다. 공식 만찬 일정이 없는 요즘, 노대통령의 입맛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권여사가 특별히 음식 솜씨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권여사는 독서를 즐기고, 화초를 가꾸며 마음의 여유를 찾곤 했는데, 요즘도 소일거리가 될 듯싶다. 특히 청와대 관저에서 자라고 있는 1m 크기의 ‘관음죽(觀音竹·열대성 야자과 식물)’은 노대통령 부부와 26년째 연을 맺고 있어 화제가 된 바 있다. 노대통령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78년에 사법시험 동기로부터 선물받은 이 관음죽은 지금까지 노대통령이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지난 98년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한 2000년 등 두 번 꽃을 피웠다. 노대통령이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기관장 모임에서 “관음죽이 꽃을 피우면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했을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인 터라 권여사는 관음죽을 청와대 관저로 옮겼고, 각별히 신경을 써왔다.
권여사가 종교에 의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권여사는 평소 “부처님이 우리 부부를 많이 도와주신다”는 말을 해왔을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불교에 의지해왔다. 지난 2002년 11월, 청와대 입성을 앞두고 최후의 난관이었던 정몽준 국민통합21대표와의 후보 단일화 결론이 나던 날도 권여사는 항공편으로 급히 김해 봉화산 내 정토원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상경했다. 청와대에 들어온 뒤에도 한달에 한두번 손윗 동서인 노건평씨의 부인을 통해 공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안 가결 이후 두문불출! 권양숙 여사의 요즘 심경 & 청와대 생활

청와대 관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배웅하는 모습(왼쪽). 권양숙 여사는 총선 이후 청소년 및 교육 관련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었다(오른쪽)


권여사는 노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상적인 대통령 부인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꼽은 적이 있는데 묘하게도 두 사람은 대통령의 탄핵 위기를 맞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청와대 제 2부속실 관계자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98년 탄핵 위기에 처했을 때 부부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큰 안도감을 주고 믿음을 준 바 있다”며 노대통령 부부 역시 서로에게 의지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고려대 함성득 교수(대통령학)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에 대해 ‘비공식 제 1의 참모’라고 정의한다. 대통령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만큼 대통령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는 것. “노대통령이 험난한 정치 역정을 헤쳐온 ‘바람’이었다면 나는 노대통령과 가족을 든든하게 지켜온 ‘바위’였다”는 말을 종종 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남편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때 함께 고민하고 조언하는 정치 동반자였던 권여사는 대선 직후 대통령 부인의 역할과 관련된 서적들을 탐독하며 청와대 생활을 준비했다. 함교수가 쓴 ‘영부인론’을 비롯해 12명의 미국 대통령 부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 등을 읽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결같이 대통령 부인의 역할에 따라 한 국가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이다.
모든 권한이 정지된 노대통령에게 현재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권여사가 유일한 참모다. 권여사는 대통령 선거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한 나라의 어미다.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대통령 부인이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보다 앞서, 대통령 후보시절에 노대통령은 사석에서 권여사를 “컨피던트(Confident)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컨피던트’는 본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만 노대통령은 당시 “그 사람(권여사)이 있으면 뭔가 일이 잘 된다. 그 사람이 (선거에서) 이긴다면 이기고, 진다면 졌다. 대통령선거에서도 이긴다고 했다”고 덧붙이며 컨피던트를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람’ 정도의 의미로 해석했다.
노대통령에게 요즘 그 어느때보다 권여사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이번에도 권여사가 노대통령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인지 탄핵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성동아 2004년 4월 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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