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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의 동생’이라는 사실 뒤늦게 알려져 화제 모은 ‘실미도’ 조연 엄태웅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4.03.10 18:33:00

관객 동원 1천만명 시대를 연 영화 ‘실미도’에 가수 겸 영화배우 엄정화의 동생, 엄태웅이 출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고 3때부터 연기자를 꿈꿨으나 10년 넘게 영화판을 맴돌다 ‘실미도’를 통해 비로소 늦깎이 배우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그의 일과 가족 이야기.
‘엄정화의 동생’이라는 사실 뒤늦게 알려져 화제 모은 ‘실미도’ 조연 엄태웅

영화 ‘실미도’가 관객수 1천만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의 흥행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가운데 톱스타 엄정화의 동생 엄태웅(30)이 비참하게 최후를 맞은 31명의 훈련병 중 한명으로 출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실미도’에서 엄태웅은 반항아 기질이 강한 훈련병 ‘재용’을 연기했으나 한눈에 쏙 들어올 만큼 비중 있는 배역은 아니다.
“‘실미도’를 촬영하면서 한번도 이 작품으로 관객들 눈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실미도’를 두번 세번 보시는 분들이 생겨나면서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여러 번 눈여겨보아야 기억할 만한 역할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엄태웅은 많은 것을 얻었다. 비록 단역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덕분에 ‘실미도’가 개봉된 후 영화나 뮤직 비디오 출연 제의가 잇따른 것. 최근 설경구 김윤진 강혜정 김남진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가수 SG워너비의 뮤직비디오 ‘타임리스’에 두 남자 주인공에게 총을 겨누는 조직의 ‘보스’로 출연했고, 수애 주현 등과 함께 영화 ‘가족’을 촬영중이다. 97년, 영화 ‘기막힌 사내들’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나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었던 그가 비로소 주연급 연기자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사실 ‘실미도’에 출연하기로 결정할 무렵 아침드라마 주인공 제의가 들어왔었어요. 욕심이 났지만 드라마 한편으로 모든 걸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작은 역할이지만 제 가능성을 조금씩 보여줄 수 있는 ‘실미도’를 택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어요. 앞으로 배우로 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든 것 같아서요.”
그는 안성기 허준호 설경구 등 쟁쟁한 선배 연기자들과 혹독한 촬영을 함께 하는 동안 “전우애 같은 게 생겼다”며 오랜 무명 연기자 생활 끝에 찾아온 아침드라마 주인공 자리를 박차고 죽음의 섬 ‘실미도’에 뛰어든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나이 올해로 서른. 적지 않은 나이에 비로소 ‘엄태웅’이라는 이름 석자를 알리기 시작한 그는 사실 10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배우를 꿈꿨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을 공부했어요. 고 3때 친구들이 밴드를 결성했는데 공연을 앞두고 급하게 보컬을 구하는 바람에 제가 겨우 일주일간 연습하고, 무대에 선 일이 있어요. 정말 많이 떨었는데 막상 무대에 불이 켜지고 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니까 뭔지 모를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처음 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미술을 접고, 연극영화과를 목표로 삼았다. “누나 엄정화에 이어 가족 중 두 사람이나 연예인이 되는 것에 대해 가족의 반대는 없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젓는다.
“아버지가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출신이세요. 젊은 시절, 아버지의 꿈도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고 들었어요. 아마도 저희 남매에겐 그런 피가 흐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나 갑작스러운 진로 변경으로 그는 대학 시험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처음 한해 두해는 가족들도 어떻게든 되겠지 했는데 그가 20대 후반으로 접어들도록 제자리를 찾지 못하자 점점 애물단지 취급했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뿐 어느 쪽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몰랐어요. 누가 뭐 해서 먹고살 거냐고 하면 말로만 ‘배우 되겠다’고 했지 사실은 아무것도 안하며 지낸 날들이 많아요. 느지막이 일어나 비디오테이프 빌려다 보는 게 전부였죠. 지금도 저희 어머니가 간혹 그러세요.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 한번 하고, 해외 여행 가려고 공사장에서 일한 것말고는 일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애’라고요(웃음). 이제와 하는 생각이지만 일찍 성공한 사람들은 다 그만한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엄정화의 동생’이라는 사실 뒤늦게 알려져 화제 모은 ‘실미도’ 조연 엄태웅

실미도’에서 엄태웅은 반항적인 훈련병 ‘재용’을 연기했다.


대책 없이 백수생활을 하는 동안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아픔도 겪었다. 가수와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던 누나 엄정화에게 도움을 청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도 같은데 그는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저도 사람인데 그러고 싶었죠. 그런데 그럴 수 없었어요. 누나는 제가 혼자 힘으로 해내길 원했어요. 저 역시 자존심 같은 게 있어서 누나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고요.”
그는 스물여섯살이 되어서야 경민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고, TV 드라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여고시절’,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등에 얼굴을 내밀었다. ‘실미도’에 합류하기 위해 오디션을 거치면서도 그는 엄정화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배우의 길을 고집할 수 있었던 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준 누나 덕분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제가 이 나이가 되도록 배우가 되겠다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다 누나 덕분이죠. 1남3녀중 정화 누나가 둘째, 제가 막내인데 누나가 가장 노릇을 해줘 집안 생활비 걱정은 안해도 됐으니까요.”
더욱이 두 사람은 고민이 있을 때면 소주잔을 기울이며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다정한 남매 사이다. 그는 “누나가 연예계에서 쌓아놓은 이미지가 워낙 좋기 때문에 내가 엄정화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따뜻한 눈길로 봐준다”며 누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촬영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보라매 액션스쿨에서 액션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자신에게 잘 맞는 액션 연기에 필요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엄정화의 동생’이라는 사실 뒤늦게 알려져 화제 모은 ‘실미도’ 조연 엄태웅

“‘실미도’를 찍고 난 뒤 성격이 강한 역할 제의가 많이 들어와요. 사실은 여리고 감성적인 멜로 연기를 해보고 싶은데 일단 제가 하고 싶은 역할보다 관객이 볼 때 잘 어울리는 역할을 열심히 하기로 했어요.”
긴 방황과 무명의 터널을 지나온 그는 ‘실미도’를 촬영하며 강우석 감독으로부터 ‘타고난 연기자’라는 칭찬을 들었을 정도로 진짜 배우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감독님이 참 예뻐해주셨어요. 저더러 ‘넌 연기에 한이 맺혔구나’ 하시더라고요. 촬영감독님에게서 ‘눈빛이 살아 있는 배우’라는 칭찬을 들었을 때는 어려서 배우가 되지 못한 게 어쩌면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배우가 됐더라면 영 아니었을 것 같거든요(웃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 묻자 한참 고민하더니 “머릿속에 든 생각은 많은데 정답을 잘 모르겠어요. 관객들에게 ‘진짜 배우다’ 하는 인상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해야 할까요” 하며 웃는다. 엄정화의 동생이 아닌 ‘배우 엄태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기 위해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여성동아 2004년 3월 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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