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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부부는 여행 동반자

대기업 그만두고 1백23일간 유럽 자동차여행 다녀온 조용진·조선민 부부

“사표 낼 때 ‘로또 당첨됐냐’는 말 들었지만, 그보다 더 큰 부부 사랑을 확인했어요”

■ 기획·조득진 기자 ■ 글·이윤원 ■ 사진·홍중식 기자

2004. 03. 10

삼성이라는 번듯한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4개월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용감한 부부가 있다. 조용진·조선민 커플이 바로 그들. 특이하게 자동차로 유럽 각지를 다녀온 이 부부에게서 듣는 재미있는 유럽 여행기와 여행지에서 발견한 부부의 사랑 이야기.

대기업 그만두고 1백23일간 유럽 자동차여행 다녀온 조용진·조선민 부부

누구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열망을 가슴 속에 품고 살지만 시간과 경제적인 이유에 늘 발목잡히는 게 현실. 생각하고 계획하기는 쉬우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보통 큰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런 어려움을 과감히 깨고 조용진(33), 조선민(29) 부부는 유럽여행에 나섰다. ‘우물 밖 개구리가 되자’ ‘모범답안같이 정해진 인생의 경로를 한번 바꿔보자’ ‘부부 팀워크를 만들자’는 세 가지를 여행의 목표로 잡았다.
“2002년 11월에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이 연애할 때보다 오히려 줄었다는 것을 느끼게 됐죠.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몇 마디 나누다가 잠자리에 드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까 어느 날 문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어서 열심히 돈 벌어서 집 넓히고 자식 낳아 기르고, 비로소 여행 할 여유가 생겼다 싶을 때는 이미 기력이 빠져버리고…. 그런 일반적인 인생의 경로를 한번 거꾸로 가보자는 거였죠.”
당시 삼성 SDS에서 자산관리 업무를 맡고 있던 용진씨와 삼성카드에서 근무하던 선민씨. 부부는 지난해 9월 의견일치를 보자마자 나란히 사표를 던졌다.
“당시 주변의 반응이 참 다양했어요. ‘로또에 당첨 됐냐’는 말도 들었고 ‘배부르니까 별짓 다 한다’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죠. 심지어는 ‘어디 한번 쓴맛 좀 봐라’ 하며 비꼬는 사람까지 있었다니까요.”

자신의 삶을 가꾸는 유럽인의 여유 부러워
대기업 그만두고 1백23일간 유럽 자동차여행 다녀온 조용진·조선민 부부

이번 여행은 뛰어난 경치와 유럽인 특유의 여유로움도 좋았지만 서로 더욱 많이 알게 되고, 소중함을 느낀 귀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격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과감히 저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부러움과 후원에 힘입어 이 부부는 2003년 9월2일 유럽을 향해 떠났다. 올해 1월2일에 돌아오기까지 유럽 15개국 45개 도시를 여행했는데 정확히 1백23일 간의 여정. 굳이 1백23일로 여행 일수를 정한 이유는 여행 초보자로서 하나, 둘 차근히 배우겠다는 의미에서라고.
이번 유럽 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차로 여행을 했다는 점. 푸조를 빌려 타고 유럽의 작은 도시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맨 적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유럽인들의 남다른 친절을 느꼈다고.
대기업 그만두고 1백23일간 유럽 자동차여행 다녀온 조용진·조선민 부부

“한번은 독일 뮌헨에서 펜션을 찾아가야 했는데 도저히 길을 못 찾겠더군요. 그때 마침 BMW를 타고 지나가는 한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는데 놀랍게도 본인이 모르니까 직접 우리의 ‘114’ 같은 곳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봐주는 거예요. 나중에는 직접 목적지까지 저희를 안내해주었죠.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여자가 길 한번 물으면 난리가 나요. 물어보는 그 순간 주변에 남자들이 스무명쯤 몰려들어 모르는 길이라도 물어가면서 목적지까지 에스코트(?) 해준다니까요(웃음).”

선민씨는 특히 여자라면 터키에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한다.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에게 몰리는 그 특혜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느냐”면서 그때 일이 생각나는지 빙그레 웃었다. 그런 유럽인 특유의(?) 친절함 때문이었을까. 부부는 직접 운전을 해야 한다는 점을 빼면 여행중 특별히 힘든 일이 없었다고 한다.

대기업 그만두고 1백23일간 유럽 자동차여행 다녀온 조용진·조선민 부부

이름만큼이나 외모도 무척 닮은 조용진·조선민 부부. 시종일관 들뜬 표정과 목소리로 여행담을 풀어놓는 모습이 아직도 여행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터키에서 삼촌같이 푸근한 한국인 아저씨를 만났어요. 동양호텔 사장님이었는데 저희를 마치 조카처럼 대해주셨죠. 나중에 그분의 호의와 아름다운 풍광를 잊지 못해 남은 일정을 바꿔가며 다시 터키로 향했어요. 그분 덕분에 극장의 가장 좋은 자리에서 정통 밸리댄스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죠. 댄서들이 어찌나 섹시하고 유연하던지 관절이 없는 사람 같더군요.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을 무대 위로 불러 밸리댄스 경연대회를 열었는데 그때 제가 나가서 선전(?)한 덕분에 이 메달을 땄어요.”
선민씨는 그때 찍은 사진과 메달을 쑥스러운 듯 내보였다. 마치 아리랑을 추고 있는 듯한 선민씨의 모습이 극장측에서 찍어준 사진에 잘 담겨 있었다.
“공개하기 창피한 일도 있었지만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많아요. 루마니아 브란에서 결혼기념일을 맞았어요. 체크인 할 때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라고 말한 걸 펜션 직원이 기억하고는 투숙객들을 모두 불러모아 계획에 없던 캠프파이어를 열어줬어요. 우리에게 한사람씩 다가와 축하한다고 말해주던 그 기억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밖에도 수십 가지 에피소드를 털어놓는 부부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강조한 것은 아름다운 풍광도 재미난 에피소드도 아니다. 자신들의 삶을 여유 있고 알차게 꾸리고 있는 유럽인들의 기질이다. 늘 여유를 가지고 살아서일까. 타인에 대한 배려가 그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특히 부러운 것은 그들의 주거환경이에요. 유흥업소가 공존하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공원과 녹지가 함께 어우러져 부부간에 또는 가족간에 늘 산책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이었죠. 또한 어딜 가나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독일의 맥주축제 현장에 갔을 때 잠실운동장만한 공간에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이 저마다 전통의상을 입고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는 모습을 보았는데, 10대 청소년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세대간의 격차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을 보며 그들만의 힘을 느꼈어요.”

잃은 것은 직장, 얻은 것은 성숙해진 부부관계
도시마다 잘 조성된 다양한 캠핑장을 경험하는 것도 새로운 일이었고, 자신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현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즐기는 것도 재미있었다고. 취사도구 일체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에 여행경비도 절감됐다고 한다.
“자동차 여행은 매력적이고 경제적이에요. 비싼 유레일패스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고, 오토캠핑장 이용료도 민박집의 3분의 1 수준이거든요. 그래서 전체 비용을 따져 봐도 대중교통 보다 자동차 여행 비용이 훨씬 저렴하죠. 출발 전 예상경비가 2천5백만원 정도였는데 결과적으로 총 1천3백만원이든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죠. 또 여행 도중 호기심 나는 곳에 마음대로 멈출 수 있고, 흥미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자동차 여행 덕분이죠.”
연애기간 1년과 결혼생활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여행을 통해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는 부부. 이번 여행은 대화도 많이 나누고 갈등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대기업 그만두고 1백23일간 유럽 자동차여행 다녀온 조용진·조선민 부부

부부는 홈페이지 ‘용진 선민의 자동차 유럽여행 123(www.autolian.com)’을 통해 자동차 여행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연애할 때도 그렇고 결혼하고 나서도 서로 좋은 점만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행하면서 하루 24시간을 붙어 있게 되니까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좀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서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여행한 지 두달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부부 핵전쟁’을 벌였죠. 그때 서로 더 심하게 할 수 있는 말도 의식적으로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낯선 땅에서 서로 의지할 곳은 부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누가 이겼는지는 말하지 않을래요(웃음).”
부부가 함께 여행을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배우자에 대해서 새로운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고 부부는 입을 모은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결국 기댈 사람은 부부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저희처럼 신혼부부가 아닌,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난 부부나 권태기에 있는 부부들도 여행을 떠난다면 돌아올 즈음엔 서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있을 거예요.”
이제 부부 팀워크에서는 고수가 되었다는 그들은 앞으로 무슨 일에서든 부부가 함께 한다면 문제없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지금 당장은 여행 때문에 놓아버린 생계가 문제이긴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 덕분인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며 그런 걱정들을 일축해버렸다.
대기업 그만두고 1백23일간 유럽 자동차여행 다녀온 조용진·조선민 부부

“여행 때문에 비록 경제력을 잃었지만 저희는 한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돈과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과 인생에서의 큰 깨달음, 그리고 상대를 새삼 발견하고 왔기 때문이죠.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진정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일까, 그들은 또 다른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해놓은 후의 일이다. 최소한의 여행경비는 필요하니까.
“일년에 한번씩은 여행을 할 생각이에요. 저희가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꼭 유럽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좀 더 다양한 문화와 느낌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다음 여행 코스는 아시아로 정했어요. 특히 인도에 꼭 가보고 싶어요.”

권태기 부부에겐 10월 뮌헨여행 권하고 싶어
인도로 향할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반 여행 전문가’가 된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행 계획서가 완성돼 있는 듯하다. 부부는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앞으로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살짝 들려주었다.
“부부만을 위한 여행상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여행사 상품을 뒤져보면 가족이나 연인을 위한 상품은 많은 데 반해 부부만을 위한 상품은 별로 없거든요. 일단 자동차 여행 관련 상품을 만들고 싶어요.”
부부는 현재 유럽여행에 대한 책을 집필중인데 자동차 여행의 노하우와 여행담을 담은 가이드 형식의 책이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용진씨는 자신과 같이 자동차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별로 없다며 앞으로도 자동차 여행과 관련한 일을 꾸준히 해나갈 것임을 밝혔다. 또 현재 부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autolian.com)를 활성화해 자동차 여행에 대한 정보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늘 여행을 갈망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자신들과 같이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부부는 이렇게 당부한다.
“무조건 저희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라는 게 아니에요. 그보다는 우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죠. 단 며칠을 다녀오더라도 돈 따지지 말고 진정한 여행자의 마음으로 떠났으면 좋겠어요.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잖아요. 있는 그대로 즐기세요.”
이제 ‘여행의 맛’과 함께 ‘인생의 멋’도 알아차린 듯한 조용진·조선민 부부. 끝으로 그들은 권태기를 맞은 부부가 가면 좋을 만한 여행지를 추천해주었다.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를 보러 가세요. 그곳의 캠핑장은 너무 추워서 오리털 파카를 입고도 둘이 꼭 껴안고 자야 해요. 권태기 극복을 위한 최고의 여행지라 생각합니다. 단 10월에 꼭 텐트를 치고 캠핑장에서 주무셔야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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