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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족집게 강사’에서 수학 동화 저자로 변신한 수학 박사 안재찬의 흥미진진 수학교육법

“일상생활에서 수학을 활용해 재미 붙일 수 있도록 엄마들이 도와줘야 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3.05 17:56:00

지난 97년 서울 강남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던 유명 수학학원의 문을 닫고, 수학교육의 흐름을 바꾸는 책을 쓰겠다며 집필작업에 몰두했던 안재찬씨. 그가 지난 6년간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을 연구하고, 정리한 끝에 숫자보다 글과 그림이 많은, 동화 형식을 빌린 총 54권의 교재를 완성했다.
학원강사 시절 독특한 강의 방식 때문에 ‘괴짜’로 통했던 그가 말하는 흥미진진 수학교육법.
강남 ‘족집게 강사’에서 수학 동화 저자로 변신한 수학 박사 안재찬의 흥미진진 수학교육법

경기도 분당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한채를 개조한 연구실에 들어서니 두 벽을 가득 채운 디스켓 상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반 가정이라면 안방으로 쓰였을 만한 창이 넓은 방에는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한 책꽂이에 각종 수학 관련 서적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디스켓 총 1만2천4백장, 1백20쪽짜리 책 1천80권 분량의 프린트물. 90년대 중반,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수학강사로 이름을 날렸던 안재찬씨(42)가 지난 6년간 작업한 방대한 분량의 수학 자료들이다.
그의 연구실 바닥 한 귀퉁이에 놓인 액자의 “수학은 시요 문학이요 그리고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입니다”라는 문장은 수학에 대한 그의 신념을 잘 보여준다.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수학 박사과정을 밟던 시절, 지도교수가 했던 표현이라는 이 문장처럼 그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단원의 수학적 원리와 공식들을 마치 한편의 동화를 읽듯 흥미롭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6년 동안 공들인 결과 그는 지난해말 초중고교 수학 전과정을 4백24편의 동화로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교과과정에 맞게 정리한 초중학생용 수학교재 ‘명품수학’ 시리즈를 완성했다. 앞서 출간된 고등학생용 ‘수학거미’ 시리즈와 함께 초중고 수학 과정을 총 54권에 담은 그의 책은 언뜻 보기에도 이야기책과 수학 문제집을 합해놓은 듯한 구성이 눈길을 끈다.

교수 꿈 접은 후 강남 학원가로 진출, 수능 문제 적중시키며 ‘족집게 강사’로 불려
“수학책 같지 않아요. 수학을 왜 배워야 하고, 공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요.”
그의 책은 먼저 각 단원에 등장하는 이론을 만들어낸 수학자가 어떤 배경에서 나고 자랐는지, 어떤 계기로 그러한 이론을 만들어내게 됐는지, 다른 수학자들의 도전이나 학문적 논쟁은 없었는지, 실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일러스트와 함께 이야기 형식으로 설명한다. 이렇다 보니 초등학교 수학은 2학년부터 한 학년에 6권씩, 중고등학교 과정은 한 학년에 4권씩이나 된다.
그렇다고 그의 책을 읽기만 해서 저절로 수학이 이해되는 건 아니다. 기초부터 경시대회 수준까지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들도 담겨 있다. 그와 교류해온 일선 교사들과 학생들이 “수학을 재미있게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시험도 잘 봐야 하지 않겠냐”고 주문해온 것. ‘수학에 필요한 논리적인 사고와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읽는 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동화책을 쓰는 데 집중해온 그는 “듣고 보니 동화책만 쓸게 아니라 ‘족집게’ 노릇도 해야 하더라고요” 하며 허허 웃었다.
그에겐 실제 ‘족집게 강사’로 불렸던 시절이 있다. 지난 97년 11월 수능시험 직후, 갑작스레 학원 문을 닫기 전까지 그는 매달 수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유명 강사였다. 월평균 수강생이 1천2백명에 달했다고 하니 고액 과외가 아니라 하더라도 매달 수억원의 수입을 올렸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가 강남의 학원가로 진출한 건 95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1년 만이다. 안씨는 대학에서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한때 ‘희곡작가’를 꿈꾸는 문학소년이었다는 그는 틈틈이 문학잡지에 시와 소설을 써보낸 결과 한 잡지에서 주최한 소설 공모에 당선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수학과 인연을 맺은 건 영국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공부할 때였다. 거시경제학 시간에 한 일본인 교수가 수학 하나로 거시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설명해내는 것을 보고 수학에 푹 빠져버린 것. 그는 곧 전공을 수학으로 바꿔 프랑스 파리 제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라 처음엔 힘이 들었지만 정말 신나게 공부했다고 한다.

강남 ‘족집게 강사’에서 수학 동화 저자로 변신한 수학 박사 안재찬의 흥미진진 수학교육법

안재찬씨가 직원과 함께 연구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다.


“집합을 왜 배우는지, 학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론을 만들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수수께끼를 맞추듯,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듯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자신이 신나게 배운 것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꿈을 안고 94년 귀국한 그는 그러나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대학 강단에 서고 싶었지만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 데도 없었다. 오히려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뒤늦게 수학으로 학위를 받은 그에게 번번이 “왜 이랬다저랬다 했냐”는 비아냥이 들려왔다.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던 그는 생계를 위해 강남의 학원가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와서 학원강사를 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이력서에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그가 처음 맡은 강의는 고등학교 불어와 중학교 수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고3 서울대 입시반 강사가 결근을 하는 바람에 누군가 대신 수업을 맡아야 했던 것. 마침 유일하게 교무실에 앉아 있던 그에게 원장이 수업을 맡겼다. 그런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대개는 ‘이 문제는 시험에 꼭 나오니까 밑줄 쳐라, 별표 해둬라’ 하며 문제풀이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저는 어떤 문제가 시험에 나올 수밖에 없는 학문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가르쳤거든요. 예를 들면 비례식을 설명하기 위해 ‘탈레스’라는 수학자가 지팡이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거예요. 탈레스는 무슨 이유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야 했고, 어떻게 해서 모든 빛이 직선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지팡이를 이용하게 됐는지, 비례식은 왜 그런 모양으로 표현하게 됐는지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던지며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요.”

“컴퓨터 보안장치, CT촬영기기, 게놈 프로젝트 모두 수학에서 출발했어요”
그는 3개월 만에 최고 인기 강사가 됐다. 수학적 원리의 탄생 배경과 활용 목적을 설명하고, 국내외 수학 자료들에서 각 단원을 학습하는 목적에 맞는 문제들을 골라 제공하는 그의 강의는 그해 수능시험에서 다수의 문제를 적중시켰고, 급기야 ‘족집게 강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스타 강사가 된 그는 높은 수입을 올려 이듬해 바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안재찬 수학클리닉’을 열었다. 그러고는 ‘플러스 수학시리즈’ ‘길잡이 수능 수학’ ‘스코어링 수학시리즈’ 등을 집필하고, 상위권 학생들을 상대로 고난이도의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푸는 교수법으로 고수익을 올렸다.
“수학의 다양한 쓰임새를 알려주면 아이들의 꿈이 구체화될 수 있어요.”
그는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학원강사 노릇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강의가 인기를 얻자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국세청과 검찰의 집중 단속 대상이 되었고, 경쟁 학원들의 견제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사교육 현장에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왜곡된 선행학습 행태 때문이라고 한다.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고, 특목고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중고등학생용 수학 교재를 들고 다니는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서글픔을 느꼈다고. 그는 결국 98학년도 수능시험이 끝나자 “입시학원은 비뚤어진 교육현장의 단면을 나타낼 뿐 국가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학원 문을 닫았다.

강남 ‘족집게 강사’에서 수학 동화 저자로 변신한 수학 박사 안재찬의 흥미진진 수학교육법

안씨는 앞으로 수학적 원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외고나 과학고, 그리고 서울대 입시까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건 결정적으로 수학에 달려 있어요.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수학에 매달리지만 정작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학생들은 거의 없어요. 초등학생들 중에도 공부를 잘한다고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선행학습을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푸는 해법만 가르칠 뿐 수학적 원리와 개념을 설명해주는 선생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 수학을 잘한다는 아이들이 죄다 의대만을 목표로 하죠. 인간의 비밀을 풀어낸다는 게놈 프로젝트의 기초가 바로 수학의 4진법이고, 병원에서 쓰이는 CT촬영기기에 연립방정식의 원리가 응용됐다는 걸 알려주면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는 미국의 빌 게이츠를 예로 들기도 했다. 매년 미국 유명 대학에서 배출되는 수학박사 5백여명을 최고 대우로 영입하는 빌 게이츠의 경영 방식만 봐도 수학이 얼마만큼 유용한 것인지를 증명해준다는 것.
“빌 게이츠가 수학자들을 그만큼 대우하는 건 결과적으로 수학이 IT 산업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죠.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하면 전산정보학자들을 떠올리지만 보안 프로그램들은 사실 수학자들이 만들어냅니다.”
그는 수학을 잘 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 수학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설명해주지 않는 한 수학은 단순한 계산으로밖에 활용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수학자들이 공식을 만들어낸 계기와 과정, 시각적 표현 방법 등을 이해하면 결국 시험도 잘 보고, 아이들의 꿈도 구체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많은 학생들이 의대를 고집하더라도 신약 개발 등에 관심을 갖는 폭넓은 사고를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스로 “어설픈 수학자에서 교육자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그는 수학 동화 시리즈 완성을 계기로 좀더 적극적인 활동을 할 계획이다. 그가 펴낸 교재들이 올 9월부터 중국에서 출간될 예정이고, 미국 프랑스 말레이시아 등의 출판사들과도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다. 그는 또 자신이 직접 강의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온라인으로 제공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교사들을 위한 강연회를 종종 열고, 재미있는 수학의 원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여성동아 2004년 3월 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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