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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원 고료 제36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경숙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엄마의 모습 보여줘 너무 기뻐요”

■ 글·최호열 기자

입력 2004.02.10 15:36:00

올해로 36회를 맞는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이경숙씨의 ‘475번 도로 위에서’가 당선되었다. 그의 작품은 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의 다양한 삶과 그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나그네로서의 한’을 담은 것이다. 그 자신이 30년째 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인 이경숙씨의 벅찬 당선 소감을 들었다.
2천만원 고료 제36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경숙

심사 결과가 나온 직후인 1월10일 오후 3시경, 당선소식을 알리기 위해 응모자 프로필에 나와 있는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이에게 “이경숙씨죠, 여성동아인데요, 장편소설…”이라고 하는 순간 짧은 비명이 터졌다. “어머, 당선되었어요? 경숙이가 당선되었어요?” 하며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전화 목소리의 주인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을 이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은 이경숙씨(54)의 언니이고, 이씨는 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재미교포가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기는 이번이 두번째다.
다음날 미국에서 이경숙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오하이오주의 톨리도라는 작은 도시로 한국과는 13시간의 시차가 난다고 했다. 전화 인터뷰를 한 시각이 오후 2시경이었으니 그곳은 새벽 1시경일 터였다.
“자다가 새벽에 언니에게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얼떨떨하더라고요. 솔직히 마음속으로 ‘발표할 때가 지났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아시죠? 잠을 이룰 수 없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편과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하니까 무척 좋아했어요. 특히 LA에 사는 딸은 전화를 받자마자 ‘당선되었구나’ 하더라고요.”
이씨는 72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3년 정도 일요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75년 유학생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올해로 벌써 이민 생활이 30년째인 그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는데 딸은 결혼해서 LA에서 출판기획자로 일하고 있고, 아들은 시카고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다.
그는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기 전에도 2000년 해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에 가작으로 뽑힌 데 이어 지난해엔 미주한국일보문학상 단편소설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제대로 된 문학수업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 기자를 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미주통신원을 했어요. 그래서 조금씩 기사를 쓰기는 했지만 문학을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가 문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번역을 하면서부터다. 그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가발가게를 하던 그는 심심할 때 책을 읽고 싶어도 한인들이 적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 한국어로 된 책은 구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아이들이 읽는 영어동화를 보았다. 그러면서 영어에 자신이 붙어 어른책까지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음에 쏙 드는 책을 한권 발견하고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 왔을 때 번역원고를 출판사에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90년대 초에 출간된 ‘축복의 기쁨’이다. 그후에도 그는 몇권의 책을 더 번역했다. 그의 번역서를 본 사람들은 글재주가 있다며 소설을 써보라고 했지만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만 하다 뒤늦게 용기를 내어 99년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어휘가 생각나지 않아 가장 힘들었어요. 여기선 한국말을 쓸 기회가 적으니까 다 잃어버렸거든요. 번역을 하면서도 적절한 우리말이 떠오르지 않아 고생했죠. 한국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 어휘가 참 풍부해 부럽더라고요.”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의식적으로 영어책을 보지 않고 한국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를 비디오로 보면서 어휘를 공부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잃어버렸던 어휘가 되살아났다고 한다.
“도대체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막막하더라고요. 다 쓰고 나서도 이게 제대로 된 것인지 모르니까 답답하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고 주위 사람에게 보여주었어요.”

2천만원 고료 제36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경숙

이경숙씨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재미교포다. 사진은 이씨 가족. 앞줄 외국인은 사위다.


이번 수상작인 ‘475번 도로 위에서’는 한인 이민자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가 그동안 쓴 단편들도 대부분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제는 그가 살아온 세월 중에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미국에서 산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느 곳에든 희로애락이 있잖아요. 이곳도 마찬가지예요. 미국 이민자 사회 내부에서도 아름다운 삶도 있고 눈물겨운 삶도 있죠.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미국 이민자들의 삶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바로 나그네의 한이죠. 고국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조금씩 슬퍼요.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될지 모르는데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그 밑바닥에는 나그네라는 서글픔이 깔려 있어요. 그 한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의 소설은 미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민자들은 모두 나그네예요. 한국을 떠나 미국에 와서도 나그네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나그네예요. 저도 가끔 한국에 가면 내 나라이고 말이 통하는데도 낯설어요. 물론 이민 1세들은 몸은 이곳에 살고 있어도 항상 더 늙기 전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하죠. 하지만 한국에 돌아간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자식들과 이별하고 또다시 나그네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차츰차츰 마음이 이쪽으로 더 기우는 거예요.”
그에겐 하나의 바람이 있다. 앞으로 좋은 작품을 써서 그것을 딸이 영어로 번역해 출간하는 것이다.
“이번 당선으로 가장 기쁜 게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저의 가장 가까운 독자는 아이들이에요. 앞으로도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걱정스러운 게 있다고 했다.
“제 소설에서 주인공의 아들이 게이로 나와요. 그걸 보고 저를 아는 사람들이나 독자들이 제 아들이 실제 게이라고 오해하지 않을까 우려가 돼요. 여기서 밝혀두고 싶은 게 우리 아이는 게이가 아니에요. 여자친구도 있어요. 아들이 소설을 보고 이 사실을 알기 전에 미리 자백을 해야겠어요(웃음).”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즐거움이 가득했다. 앞으로 더 정진해서 우리 문학의 새로운 소재로 이민자들의 한을 아우르는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2천만원 고료 제36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경숙

“‘475번 도로 위에서’는 미국 이민자의 눈으로 한인사회 그려 소설의 소재 확장”
예선에서 올라온 작품은 ‘소설 정평구’ ‘475번 도로 위에서’ ‘오리나무의 여자’ ‘인도로 가는 길’ 4편이다. 4편 모두 흥미로운 소재와 무난한 서사구조를 가진 작품들이어서 읽는 재미가 컸다.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만약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데 이순신 장군이 밥상에서 새빨간 김치를 집어먹었다고 쓰면 소설로서 실격이라고. 김치에 고추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기 때문이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 역사적인 사실에서 소재를 빌어온 것이 두편 있는데, 두편 다 ‘새빨간 김치’의 실수를 범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이미혜의 ‘소설 정평구’는 임진왜란 때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를 발명한 정평구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러나 초반부터 비거가 가능한가 하는 의문으로 소설의 설득력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역사 소설은 철저한 고증이 기본이며, 역사적 사실들이 정치하게 짜맞춰지고 남는 공간에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고증의 안이함은 하회탈을 만드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미경의 ‘오리나무의 여자’에서도 발견된다. 이 소설은 하회탈을 만드는 여자의 기구한 반생과 그의 연인이 이라크전에 참전하는 것, 하회탈의 전설 세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하회탈의 발생과 그 역사적 의의를 잘못 알고 있는 것과 하회탈의 전설이 나머지 두 이야기와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흠으로 꼽혔다.
장편은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는 서사구조로 충분히 여유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분야지만 그렇다고 일관된 맥락-하나의 이야기로 뭉뚱그려지는 주제의식, 혹은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갖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논의된 두 작품 중 한유진의 ‘인도로 가는 길’ 역시 일관된 맥락을 놓치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인도로 가는 길’은 인도여행과 주인공의 삼각관계에 빠진 연애담, 두 축으로 번갈아가며 전개되고 있는데, 두 이야기의 접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인도여행 부분은 단순한 견문록으로 주인공의 연애문제에 대한 고민에 별다른 공헌을 하고 있지 못하다. 배경이 인도가 아닌 아프리카나 미국이어도 고민이 달라질 것이 없었던 것이고 보면 굳이 ‘인도로 가는 길’이어야 했는가. 이왕이면 E.M. 포스터의 동명 소설이 서양인과 피식민지 주민과의 관계라든지 오리엔탈리즘의 문제 등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어떤 문제의식을 인도여행에서 이끌어낼 수는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경숙의 ‘475번 국도에서’는 미국 이민사회를 이민자 내부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우선 눈에 띄었다. 우리 소설의 소재가 확장되었다는 것이 강점으로 돋보였으며, 일종의 이민사회의 집합적 자서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설을 갖게 된 것이 반가웠다. 더구나 이민자들의 고민과 방황이 한국으로 귀환(역이민)이 아닌 그 땅 그 사회에서 적응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으로 강조한 점도 신선하였다. 그러나 구성의 허술함이며, 다수의 인물이 등장한 결과 인물묘사가 평면적이라는 점, 그리고 이민 사회 내부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다 보니 그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사회, 즉 미국사회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소재의 신선함이나 이야기를 해준다는 소설 본연의 성격에 충실한 점을 높이 사서 무리 없이 당선작으로 뽑았다.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탄탄한 내러티브 기술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이 작가의 왕성한 활동이 기대된다.
이남희(소설가)
당선작을 뽑기까지…
제36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는 총 33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예심은 문학평론가 백지연씨가 맡아 4편을 본심에 올렸고, 최원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국문과 교수), 이남희 두 심사위원이 지난 1월10일 열린 최종심에서 이경숙씨의 ‘475번 도로 위에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응모자(가나다 순)
강말숙 김기은 김미정 김영숙 김인 김재희 김정희 김지운 김진희 김희정 류 담 문용숙 박마리 박미아 박수진 신윤수 신현순 엄현주 오희수 유수분 이경숙 이도원 이미경 이미혜 이소여 이현숙 자운영 정은자 지무 최예은 한유진 황보정순 홍정순

여성동아 2004년 2월 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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