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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 합격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주인공 장승수

“공부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 글·이남희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4.02.10 14:46:00

“공부가 가장 쉽다”고 말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남학생. 막노동판 일꾼에서 서울대 법대 수석 합격자로 눈길을 끌었던 장승수씨가 이번엔 사법시험 합격자로 거듭났다. 7년 만에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그가 자신의 대학 생활과 법조인으로서의 포부를 털어놓았다.
사법고시 합격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주인공 장승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로 잘 알려진 장승수씨(32)가 지난해 12월23일 제25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96년 막노동판 일꾼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합격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가 7년 후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해 다시 화제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합격 소식이 알려진 이틀 후인 성탄절에 그를 만났다. 159㎝의 작은 키에 가무잡잡한 얼굴, 왜소하지만 단단한 그의 체구에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막노동판 일꾼에서 서울대 법대 수석 합격자로, 권투선수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로 인생역전을 거듭한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합격 소감을 밝혔다.
“시험에 붙어서 다행입니다. 99년 공부를 시작한 후, 사법시험 세번째 도전이었거든요. 예순이 훌쩍 넘으신 어머니가 많이 염려하셨는데 걱정을 덜어드리게 됐고, 2년 앞서 행정고시에 합격한 동생에게도 이제 면목이 섭니다.”
진솔하게 소감을 털어놓는 그의 말투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읽을 수 있었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그이지만, 사법시험의 방대한 공부량과 두번의 실패에 대한 부담은 그를 괴롭혔을 법도 하다. 하지만 ‘탁월한 승부사’답게 그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다.
“2002년 2차 사법시험 불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퍼져 있는 제 자신을 보는 게 싫어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지요. 고등학교 공부와 달리 사법시험 공부는 정말 양이 방대합니다. 힘들긴 했지만, 모르는 걸 알아가는 공부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됐어요.”
그가 여느 서울대 법대 수석 합격자보다 더 화제가 된 이유는 ‘드라마 같은 인생역정’ 때문이다. 열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90년 대구 경신고를 졸업하자마자 공사장 막노동, 택시운전, 가스통 배달, 식당 물수건 배달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공부를 시작한 그는 고교 졸업 6년 만에 서울대 진학의 꿈을 이뤘다. 그 흔한 입시 학원의 문턱조차 가보지 않고, 3∼4년간 홀로 주경야독한 결과였다. 가난과 싸우며 공부에 빠졌던 20대 시절이 그에겐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사실 20대 초반엔 ‘꿈’이란 걸 꿀 수조차 없는 처지였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제가 공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어요. 부계와 모계를 통틀어 대학 문턱에 가본 사람도 없었고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곧잘 했던 동생이 우리 집안에서 ‘대학생 1호’가 됐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사판 인부와 같은 막노동일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일들만으론 가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무조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겠다던 결심은 6년 만에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것도 수석 합격이란 결과로. 그는 96년 2월 공사판에서 서울대 수석 합격 소식을 전해들었던 그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희망이라곤 보일 것 같지 않은 환경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그의 의지는 고난을 겪는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됐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물론이다.

사법고시 합격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주인공 장승수

장승수씨는 법조인의 길을 걷다가도 자신이 원하면 건설직 노동자나 트럭운전사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수험생활을 담은 책,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는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기본원리와 교과서에 충실한 그의 학습법은 사교육을 맹신하는 교육풍토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당시 입시를 준비하던 학생치고, 그가 쓴 책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도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서울 신림동의 학원 수업에 의존해 요령껏 공부하는 것과 달리, ‘원리 위주 학습법’을 택해 효과를 보았다.
“학교 전공 수업 위주로 공부했어요. 저는 학원을 혐오해요. 대부분의 법대생은 학원에 의존하면서 법 원문은 읽지 않고 요약본 판례를 읽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판례를 찾아 읽는 공부 방법을 택했어요. 법원공보를 꼼꼼히 찾아 읽고, 교재 각주에 달린 판례도 거의 다 찾아 읽었습니다. 법원 도서관 판례 모음집 CD도 구입해 읽었고요.”
사실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된 이후,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잊혀졌다. 그의 대학생활은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과 보낸 대학 생활은 어땠을까. 시험을 준비하느라 대학생활의 낭만을 누릴 여유도 없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절 잘 챙겨준 동기들 덕분에 MT도 가보고, 술도 마시고, 실연당한 친구들 위로도 해주고…. 대학생활에서 누려야 할 것들은 모두 경험해본 편입니다. 미팅 자리에도 친구들이 꼭 절 데리고 나갔어요. 아, 근데 미팅에 나온 여성들이 처음엔 유명한 사람이라고 관심을 갖더니 후엔 자기 또래의 잘생긴 친구들과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두번 이상 만나본 여자가 없어요(웃음).”
유명세를 탄 덕택에 호기심을 갖고 접근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제대로 된 연애는 못해봤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심지어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엔 항상 도서관에 있었다는 푸념이 이어진다. 그래도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동고동락한 동기들이 있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처음엔 자신을 나이 많은 인생 선배로 깍듯이 모시던 동기들이 이제는 ‘야, 자’ 하고 부를 만큼 친밀해졌다고.
그러나 대학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고난의 순간마다 강인한 의지를 발휘해온 그이지만 다가온 위기에 맞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학교 2학년이던 97년 가을, 폐결핵과 늑막염 진단을 받고 1년을 휴학해야 했던 것. 폐결핵에서 회복하는 데만 3년의 시간이 걸렸고, 체력적 한계에 직면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오전 9시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고 저녁 11시까지 제 자리를 지키는 생활을 이어갔다. 도서관에서 집까지 2㎞의 거리를 달리며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공부가 아무리 재미있다지만, 두번 실패한 사법고시를 포기하고픈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수한 실패’와 ‘고난’에 이미 면역이 된 듯했다.
힘든 순간에 처할수록 더 빛을 발하는 그의 근성은 권투선수 생활에서도 드러난다.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돼 그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대원체육관에 다니며 권투를 시작했다. 2000년엔 프로복싱 슈퍼플라이급 테스트를 통과하며 ‘프로 복서’로 인정받았다. 지난 1월 중순엔 신인왕전의 출전 여부를 놓고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법시험 합격 후 주변의 축하 인사와 언론의 인터뷰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인대까지 다쳐 그의 신인왕 출전은 무산되었다. 이젠 권투에만 전력투구할 수 없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8년 권투 사랑이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진 않다.

“권투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이었어요. 집 근처 체육관을 발견하고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지요. 권투는 인생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줬어요. 8년간 권투선수로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사법고시 합격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주인공 장승수

장승수씨는 프로복싱 테스트를 통과한 프로 권투선수이기도 하다.


그의 사법고시 합격기는 다시 한번 화제가 될 듯하다. 책 출간 의향이 없느냐는 말에 그는 이미 출판사의 집필 제의를 받은 상태라고 했다. 아직 책을 쓸지 결심하지는 못했으나, 과거 자신의 책을 읽어준 독자들에게는 꼭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책의 인세 덕분에 경제적 걱정 없이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용기를 얻었다는 독자들의 편지가 그에게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후 7년 전과 마찬가지로 인터뷰 공세에 시달린 그는 ‘서울법대 수석’이라는 꼬리표가 자신의 삶을 한정짓는 것이 가장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대학 시절 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던 꼬리표 때문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했다는 것.
그런데 이젠 ‘사시 합격생’이란 꼬리표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부터 “그 꼬리표에서 자유롭게 살겠다”고 했다. 이는 법조인의 길을 걷다가도 자신이 원하면 건설직 노동자나 트럭 운전사로 돌아갈 수도 있음을 뜻한다고 했다.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30대 초반의 나이. 사법시험 합격의 목표를 이뤘으니 이젠 ‘결혼하라’는 주변의 채근이 더 심해질 법도 하다. 예순이 넘은 어머니의 간곡한 뜻도 있을 텐데, 결혼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결혼이 필수라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말 이 사람’이란 감이 오지 않는 한 결혼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앞으로 그가 어떤 길을 갈지 궁금하다. 제2의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나 제2의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그는 아직 어떤 길을 택할지 결심하지 못했지만, 3월 시작하게 될 치열한 연수원 생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보인다.
“성격에 양면성이 있어서 법률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도 좋고, 검사처럼 활동적으로 사건을 수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열심히 공부하면서 갈 길을 고민해봐야겠죠. 요즘 사법고시 합격생들의 면면을 보면 성장 과정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저는 가난한 삶을 체험한 만큼 약자의 삶을 이해하는, 균형감각을 지닌 법률가가 될 수 있겠죠.”
인터뷰 내내 겸손함과 당당함을 잃지 않은 장승수씨. 자기 감내와 단련의 묘를 터득한 그는 이제 더 큰 도전을 앞두고 세상을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있다.

여성동아 2004년 2월 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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