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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 파문 이후 10년 동안 마음고생한 마광수 첫 심경고백

“문화가 발전하려면 창조적 변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 없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진숙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4.02.10 13:38:00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 교수는 소설 한편으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 큰 고초를 겪었다.
법정에 섰는가 하면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했다. 한동안 폐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피했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심경과 문학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즐거운 사라’ 파문 이후 10년 동안 마음고생한 마광수 첫 심경고백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설 ‘즐거운 사라’는 마광수 교수(52)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지난 10여년 동안 음란물을 쓴 혐의로 법정에 서야 했는가 하면 평생 업으로 삼았던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등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연세대 교수로 복직하기는 했지만 그는 이미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으로 극도로 건강이 악화돼 한때 ‘중병설’이 나돌 만큼 폐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마교수를 살리기 위해 지식인들이 뭉쳐 ‘마광수 살리기’라는 책을 펴냈다. 10년 만에 다시 화려한 외출을 한 ‘즐거운 사라’의 마광수 교수를 만났다.
원래 마른 체형의 마교수는 하고 싶어하던 강의를 다시 시작한 탓인지 혈색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줄담배를 피우는 손은 조금씩 떨렸고, 기운이 없는지 걸음도 위태로워 보였다. 아직도 신경성 위염으로 하루 2끼 식사만 하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그는 느릿느릿하면서도 어눌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즐거운 사라’ 사건 때문에 후유증이 컸어요. 사실 지금도 억울해요. 나 같은 사람 하나쯤 그냥 두면 안되는지….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했어요. 그 사건을 겪은 뒤로는 매사에 겁이 나고 조심스럽기만 해요.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머리가 빠질 정도로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최근에 ‘즐거운 사라’를 영화화하자는 제의도 거절했고, 일간지에 연재했던 소설도 겁이 나서 아직 출판을 못 했어요. 연재하면서 좀 시끄러웠거든요.”
그는 인터뷰 내내 “겁이 난다” “조심스럽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90년대 초반 문단과 사회에 거센 폭풍을 몰고 왔던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즐거운 사라’는 93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교수의 소설이다. 주인공 ‘사라’가 스스로 남성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파격적인 줄거리와 대학교수의 신분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될 정도의 낯뜨거운 용어, 화장실 낙서에나 나올 법한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성행위 묘사를 했다’는 이유로 95년 대법원으로부터 문란문서로 규정되어 지금까지 판매가 금지되고 있다. 마교수 역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후 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교수는 온갖 풍파를 겪어야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유죄 판결 직후 그는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조교수직에서 쫓겨났다가 98년 사면복권이 되어 복직되었다. 하지만 2000년 6월 국문학과 교수들로 구성된 학과 인사위원회가 재임용 부적격 판정을 내렸고, 마교수는 이에 불복해 대학 중앙인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중앙인사위는 심사결과 1년 유예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마교수는 강단 복귀를 시도했다. 하지만 뜻이 이뤄지지 않자 사직서를 제출한 뒤 3년 동안 칩거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9월 다시 모교에 복귀해 한 학기 강의를 마쳤다. 이처럼 학교에서 쫓겨나고 다시 복직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마교수는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인 ‘40대’에서 흰머리가 성성한 ‘50대’가 되어버렸다.

동료 교수들의 재임용 탈락 건의에 충격 받아

그는 ‘즐거운 사라’의 유죄 판결보다도 동료 교수들이 자신의 재임용 탈락을 건의한 데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오랫동안 믿었던 동료들에 대한 배신감이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그뒤 마교수는 모든 연락을 끊은 채 술과 담배에 의존해 살았다. 또 극심한 우울증으로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힘든 나날을 보냈다.
“세상에서 버려졌다는 소외감과 배신감으로 한동안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한마디로 죽지 못해 살았죠. 처음엔 울화병이 나서 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도 했어요. 그 후 계속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겨우 버틴 거죠. 그것도 일년 넘게 먹으니까 내성이 생겨서인지 더는 안 먹히더라고요. 지난 3년3개월 동안 감옥살이하는 것처럼 많이 힘들었어요.”
‘있는 돈 까먹으면서’ 팔순 노모와 단둘이 살던 그는 병원과 집만 오가며 살았다. ‘즐거운 사라’ 사건 직후, 수많은 비난과 언론의 ‘집중폭격’을 받았을 때도 왕성한 집필활동과 그림 작업을 해 개인전까지 열 정도로 꿋꿋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즐거운 사라’ 파문 이후 10년 동안 마음고생한 마광수 첫 심경고백

“자꾸만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애인을 사귈 자신도 없어요. 하지만 올해는 성교가 아니더라도 성희를 즐기도록 노력을 기울여봐야겠어요. 이제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말고, 나이를 먹었지만 야한 작품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어요.”


“견디다 못해 사표를 냈는데 지난해 8월에 학교로부터 뜻밖의 연락이 왔어요. 사표를 반려했으니 강의를 하라고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시 잘리더라도 나가보자는 결심으로 가을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했어요. 막상 3년 동안 쉬었다가 다시 강의하려니까 처음에는 떨리더라고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재미있는 강의도 잘 안되고요. 다행히 학생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에요.”
예전 마교수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교양과목의 경우 연세대학교 전체에서 청강생이 모여들 정도였다. 또 강의중에 담배를 피우거나 ‘솔직하게 써오기’라는 주제로 리포트를 내는 등 독특하고 자유분방한 마교수 특유의 개성이 물씬 묻어나는 강의를 했었다.
“이제는 그렇게 안해요.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강의 중에 담배도 못 피우겠어요. 옛날 같지 않아서 말도 마음대로 못하겠고, 그러니 전보다 재미가 덜 하죠. 지난해 12월에 실시한 교수재임용 심사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통과해서 올해도 강단에 설 수 있게 됐어요.”
98년 복직했을 때와 사뭇 다른 태도였다. 당시 그는 6년 만에 다시 강단에 선 소감을 “오랜만에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외로워서 정말 ‘찐한’ 연애를 하고 싶다”고 밝히며 즐거워했었다.
‘즐거운 사라’는 그의 인생에 큰 시련을 주었지만 그 소설을 쓴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여전히 ‘즐거운 사라’에 애착을 느낀다는 것. 남성으로서 여성인 ‘사라’이야기를 쓰는 게 쉽지 않아 학생들에게 도움을 받고, 취재를 하는 등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기 때문에 치료도 할 겸해서 20대 때부터 한의학을 동양철학과 결부시켜 공부했어요. 한의학에서는 음양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따져보니까 음양의 뿌리는 결국 섹스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외제만 난무했지 고유의 ‘성 문학’이 없어요. 왜 그럴까 궁금했어요. 제가 일찍부터 성에 대해 눈을 떴거든요. 명나라의 대표적인 섹스소설 ‘금병매’를 초등학교 때 읽었고, 중학교 때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성 문학을 접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성에 대해 고민하고, 알고 싶었던 것들을 직접 글로 써보고 싶었어요.”
마교수는 이런 생각을 ‘즐거운 사라’ 이전에 이미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소설 ‘권태’를 통해 유감없이 표현하였다. 하지만 검열에 걸려 판매금지된 것은 ‘즐거운 사라’ 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즐거운 사라’에 표현된 성행위 장면은 전체 분량의 3%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히려 야한 것으로 치자면 소설 ‘권태’가 훨씬 더하다는 것. 마교수는 이를 ‘쉽게 쓰면 우습게 보는’ 우리나라 문학의 엄숙주의와 체면치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벼운 문학과 무거운 문학이 함께 가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가벼운 문학을 안 쳐줘요. ‘즐거운 사라’는 일상어, 비속어를 많이 쓰다 보니까 거슬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훨씬 야하지만 무겁게 썼던 ‘권태’는 검열에 걸리지 않았던 거죠. 문학은 오로지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또 문학작품에 성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이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터부시하죠. 그래서 ‘즐거운 사라’에서는 의도된 천박성을 추구했고, 우리나라 문학의 엄숙주의를 깨려고 했던 건데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성적 만족 추구 위한 ‘대리 배설의 문화’ 필요
그러나 엄연히 ‘즐거운 사라’에는 팬티를 입은 채 정사를 치르는 장면이나 여러 명의 남자를 매일매일 바꿔가며 섹스를 즐기는 프리섹스와 동성애, 남자 한명과 여자 두명이 함께 하는 트리플섹스 등 ‘변태적인 것’이 담겨 있다. 또한 인터넷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성에 대한 금기가 하루가 다르게 깨지고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성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한 여성의 모습이 충격 그 자체였다.
“가장 큰 비난이 ‘변태’를 다뤘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저는 변태는 없다고 생각해요. 변태라는 말보다 ‘개성적인 성적 취향’이란 말이 더 적합하지요. 문화가 발전하려면 ‘창조적인 변태’가 사회에서 용납되어야 해요. 저는 다만 성을 다룬 소설을 통해 이중적 성 관념에서 벗어나 솔직한 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의 섹스문화는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중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갇혀 있는 성이 해방돼야 음성적인 성문제도 해결된다는 게 마교수의 지론이다. 그는 남녀간의 사랑이나 쾌락을 속으로 동경하면서도 겉으로 멸시하는 이중적 성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문화는 이미 개방의 물결을 탔기 때문에 더는 물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던 짓도 멍석 깔면 안한다’는 옛말처럼 오히려 개방을 해야 성문화도 밝아지며 “무조건 막을 게 아니라 면역이 되도록 하는 게 낫다”고 그는 강조했다.
“과거 사람들은 생식을 위한 성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관능미나 성적인 유희는 귀족들만 누렸죠.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관능미를 추구할 수 있고 성적인 쾌락을 누릴 수 있어요. 개인들이 누구나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세상, 이게 바로 인간 해방이지요. 그런데 이 행복에는 성적 만족이라는 게 아주 중요해요.”



‘즐거운 사라’ 파문 이후 10년 동안 마음고생한 마광수 첫 심경고백

그는 성적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에로티시즘 문학이나 포르노 영화 같은 ‘대리배설의 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돈을 주고 육체를 거래하는 성매매 문화가 줄어든다는 것. 그래서 마교수는 ‘즐거운 사라’를 지금 다시 쓴다면 “훨씬 더 야하게 쓸 것”이라고 했다. 사회가 예전보다 더 야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더는 법적 논란을 일으키는 작품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예술가가 하는 누드 퍼포먼스는 안되고, 외국무용수가 누드로 춤을 추는 건 괜찮다는 성문화의 두서 없는 잣대 때문이다. 그래서 마교수는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성문제를 놓고 싶지 않지만 ‘이건 괜찮을까’라는 자기검열과 피해의식을 벗어 던지지 못해서다. 그는 아예 성장소설로 눈을 돌려볼까 생각중이라고 한다. 과거 자신을 ‘광마(狂馬)’라고 불렀던 마교수의 혈기는 영영 사라진 것일까.
“성 문학을 계속 하고 싶지만 저를 따라다니는 문제들이 누적되니까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와요. 89년에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발언 때문에 2학기 전공과목 강의권을 박탈당하기 시작해서 오늘까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 점점 지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부쩍 외로움을 타요. 이혼한 것도 후회되고요. 나이 탓인지 더욱 그러네요. 제가 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이니까 서운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자꾸 외로운 걸 어쩌겠어요.”

다시 애인을 사귈 자신이 없어
마교수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 만연된 ‘내숭’이나 ‘튀면 당하는 문화’ 앞에서 솔직하다. 앞에서는 성문화를 비난하면서도 뒤로는 성매매와 인터넷 음란 사이트를 뒤지며 음성적인 성문화를 즐기는 이중적인 사람들보다는 솔직한 셈이다. 그는 이중적인 생활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마교수는 성문제말고도 ‘운명’ ‘인간’ 등 여러 책을 썼다. 그러나 한번 그에게 덧씌워진 ‘성’의 굴레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곤혹스럽다고 했다. 학자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아무도 하지 않던 이야기를 처음 꺼낸 ‘죄’가 컸던 탓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마치 성의 노예나 카사노바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가 괴로웠다. ‘즐거운 사라’ 사건만 아니었다면 벌써 정교수가 됐을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 ‘즐거운 사라’가 해금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란다고 했다.
“‘즐거운 사라’가 해금되려면 재심을 해야 하는데 재판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서 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자꾸만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애인을 사귈 자신도 없고요. 하지만 올해는 성교가 아니더라도 성희를 즐기도록 노력을 기울여봐야겠어요(웃음). 이제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말고, 겁먹지 말고, 나이를 먹었지만 야한 작품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어요.”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인지 마교수 얼굴에는 비로소 웃음기가 묻어났다. 그동안의 세월을 더듬어 기억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버거웠던 모양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마교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마교수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길 바란다.

여성동아 2004년 2월 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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