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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60주년 맞아 회혼례 올린 코오롱 이동찬 신덕진 명예회장 부부

■ 글·이영래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2.10 11:05:00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이 부인 신덕진 여사와 결혼한지 올해로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올렸다. 회혼례는 단순히 결혼 60주년이라고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식들이 모두 온전해야 올릴 수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누구보다 축복받은 삶을 살아온 이 노부부의 지난 삶을 살펴보았다.
결혼 60주년 맞아 회혼례 올린 코오롱 이동찬 신덕진 명예회장 부부

회혼례 축하연에서 소감을 피력하고 있는 이동찬·신덕진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부부.


지난 1월13일 오후 6시,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선 코오롱그룹 이동찬(82) 신덕진(81) 명예회장 부부의 회혼례 축하연이 열렸다. 이날 오전 자택에서 가족들만 모여 조용히 회혼례를 치른 후 자녀들 주도로 하객들을 초청해 별도의 잔치를 연 것.
이동찬 명예회장은 슬하에 1남5녀를 두었는데 현재 코오롱그룹 경영은 다섯째이자 유일한 아들인 이웅렬 회장(48)이 맡고 있다. 딸인 경숙, 상희, 혜숙, 은주, 경주 등 다섯 자매는 모두 교수, 재미 의사, 고려해운·파이롯트 등 준 재벌가의 자제들과 결혼해 잘 살고 있다. 친손자 이규호씨 등을 포함, 직계 자손만 29명에 달한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 이 부부의 지난 60여년을 재현한 영상물 상영이었다. ‘아름다운 세월 특별한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이날 행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영상물에는 이 부부의 지난 삶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지난 1944년 1월13일. 당시 이동찬 회장은 일주일 후면 학도병으로 전선에 끌려갈 상태에서 신덕진 여사와 혼례를 올렸다. 신여사는 언젠가 학도병으로 끌려갈 줄은 알았지만 소집영장을 받아둔지는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혼례를 치르자마자 학도병으로 간다고 고백했을 때는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회장은 “내일모레면 학도병으로 전선에 나가는데 누가 딸을 주겠나? 어머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만 항상 그에 대한 죄의식을 느꼈다”며 변명했다.
집안에서 부랴부랴 서둘러 진행한 결혼이라 선도 안 보고 혼례를 치른 두 사람은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를 다니느라 제대로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학도병 소집을 위해 부산항으로 가야 했던 이회장은 부인과 함께 해운대에서 1박2일의 짧은 신혼여행을 마친 뒤 바로 일본행 연락선에 올랐다. 이회장은 “헤어지기 전 사진을 찍어주면서 집사람 얼굴을 처음 제대로 봤다”고 한다.
신여사는 “당시는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떠나보냈어요. 남편이 훈련받다 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안에 들국화하고 나뭇잎 말린 걸 보내줬던 기억만 선명해요. ‘훈련을 받던 중 서쪽 하늘을 보다 당신과 어머니 생각이 나서 꺾었다. 냄새라도 맡아보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렇게 1년8개월. 해방 후 한달 뒤 이회장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사 한 집을 친척집에 수소문해 찾아갔는데 밤이 늦었어요. 집엔 어머니하고 집사람만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둘 다 맨발로 뛰어나오더라고. 어머니만 껴안고 울었어요. 어머니 보는 데서 집사람을 껴안을 순 없으니까(웃음).”
그날 신여사는 남편의 군복과 그간의 편지들을 모두 태웠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심정에서였다고 한다.
이후 사업을 시작한 이회장은 승승장구하며 지금의 코오롱그룹을 이뤘다. 살아오면서 이들 부부가 겪었던 가장 큰 애환은 다름 아닌 아들 문제였다. 신여사는 “처음에 딸을 낳았을 때는 예쁘고 귀여워서 잘 키워야지 했어요. 둘째, 셋째도 예쁘고 귀여웠는데 계속 딸만 낳으니까 내가 아들 얻을 팔자가 못되나 보다 하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넷째까지 딸을 낳고 나니 하늘이 깜깜했는데 용케 다섯번째에 아들을 낳았죠(웃음)” 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다고 이동찬 회장이 딸들에게 소홀한 것은 아니다. 다섯 딸들은 모두 이회장이 “자상하고 훌륭한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큰딸 이경숙씨는 “사업상 바빠 여섯 남매의 학교 입학식, 졸업식에 단 한번도 참가 못한 아버지는 그걸 갚아주겠다며 가족 모두를 데리고 여행을 가셨다”며 웃었다.

결혼 60주년 맞아 회혼례 올린 코오롱 이동찬 신덕진 명예회장 부부

이동찬 명예회장은 슬하에 이웅렬 현 회장을 포함해 1남5녀를 두었는데, 이들 6남매는 이날 직접 십자수를 놓아 완성한 부모 초상을 선물했다.


자녀들이 어린 시절, 당시로선 쉽게 가 볼 수 없었던 아프리카 케냐로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났던 기억은 자녀들에게 모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둘째딸 상희씨는 “케냐에서 얼룩말 잘 그린 사람에게 상품을 준다고 했을 때, 그림을 잘 못 그리는 나를 위해 요령을 귀띔해주실 정도로 아버지는 자상한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사실 이회장은 20여년간 직접 그림을 그려온 화가이자 미술 애호가. 그 영향인 듯 며느리와 딸들 대부분이 미대 출신이다.
이회장은 이날 식장을 찾은 하객들에게 “나는 집사람 먹여살리느라 시꺼메졌는데 이리 보니 집사람은 하얗지 않습니까? 내가 정말 이 사람한테 봉사 많이 했구나 하는 걸 여기서 절실히 느낍니다(웃음). 우리 전세대들은 일찍 죽으니까 회혼식이라는 걸 하기 힘들었을 거고, 우리 다음 세대는 서른 남짓한 늦은 나이에 결혼하니까 역시 회혼식을 하기 힘들 텐데 이렇게 제가 회혼식을 하게 되니까 복이 참 많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딸들은 내가 학병 가서도 살아오고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게 다 집사람 복이라고 합디다. 점쟁이가 그랬다니까 맞겠죠(웃음). 어찌됐건 결혼할 때 내가 거짓말 한 것도 있고 여러가지로 미안한 것도 많아 반드시 지키겠다고 결심한 게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집사람하고 각방을 쓰지 않겠다는 거였고, 싸워도 다음날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거였는데 그 결심을 잘 지켜온 덕에 이렇게 잘 살아오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 이혼률이 급증하고 있다고 하는데, 부부란 혼과 혼이 맺어지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육체는 따로여도 혼은 이어져서 부부라는 새로운 인격체를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며 회혼식을 맞는 감상을 밝혔다.
이날 회혼식장에는 강영훈 전 국무총리,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전 회장 등 수백여명의 하객이 참석, 축하했는데 이날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자녀들이 이회장 내외에게 드린 선물이었다. 이날 여섯 남매가 마련한 선물은 십자수를 놓아 만든 부모님 초상. 여섯 남매가 지난 한달여간 부분부분을 나눠 직접 십자수를 놓았다고 하는데, 이는 실과 바늘이 부부를 상징하는데다 코오롱그룹의 원천이 실에서 나왔다는 의미에서라고 한다. 이어 코오롱그룹 사장단도 직계 자손 29명의 탄생석으로 장식한 소나무 문양의 순금세공 장식물을 선물했다. 이 부부는 선물을 받으며 쑥스럽게 웃기만 했는데, 나란히 선 그 모습이 마치 피로연에 나선 신혼부부 같아 흐뭇한 미소를 자아냈다.

여성동아 2004년 2월 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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