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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사랑을 나눠요

새내기 주부 윤선자씨 “한달에 두번 장애아들과의 만남 통해 삶의 보람 느껴요”

■ 정리·안소희 ■ 사진·박해윤 기자

2004. 02. 03

3년 전부터 격주로 토요일마다 장애우들의 보금자리인 ‘한사랑마을’을 찾아 사랑을 나누고 있는 윤선자씨(29). 새내기 주부로, 직장인으로 바쁘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과 행복을 새록새록 느낀다는 그가 말하는 ‘나눔의 기쁨’.

새내기 주부 윤선자씨 “한달에 두번 장애아들과의 만남 통해 삶의 보람 느껴요”

낮12시. 새벽 근무를 마치고 나면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새벽 4시부터 낮 12시까지 근무하고 난 직후인 이 시간이 가장 피곤한 때다. 하지만 토요일만큼은 피곤을 느낄 사이도 없이 마음이 바쁘다. 한사랑마을로 봉사를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반도체 회사는 특성상 24시간 가동을 해야 하므로 근무 형태가 4조3교대라는 특수한 형태로 운영된다. 따라서 주말에 쉬기 힘든데도 오늘처럼 가끔 있는 휴일을 즐기는 달콤함마저 포기하고 기꺼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모두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아이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한껏 들떠 있다. 나 역시 아직 결혼한 지 일년도 채 안된 신혼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토요일 오후만큼은 신혼 재미를 반납하고 있다.
드디어 한사랑마을을 향해 출발. 회사내 봉사동아리 ‘참손봉사팀’이 이곳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우리는 격주로 이곳을 찾아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식사도 돕고, 함께 산책과 나들이를 한다. 한사랑마을 아이들은 가족들조차도 외면한 중증 장애아들로, 스스로 앉아 있을 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신연령은 3∼4세에 머문 채 종일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아이, 머리가 너무 커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 손가락 하나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해 끊임없이 사지를 뒤트는 아이…. 이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이 천사 같은 눈망울을 한 아이들이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가진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끗이 씻어주며 먼저 다가와 주었다. 내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다리를 끌어안으며 해맑게 웃어주었다. 장애는 불편할 뿐이지 불행하지는 않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 것이다.
오후 3시 30분, 한사랑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벌써부터 밖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다. 소리 지르며 매달리는 아이들. 가장 먼저 달려오는 아이가 바로 ‘모세방’ 지혜다. 3년 전부터 꾸준히 만나온 지혜는 나를 친언니처럼 따른다. 내가 오늘 함께할 친구들 역시 ‘모세방’ 아이들이다.
아이들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가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다리가 휘어서 앉지도 못하고 누운 채 손짓으로 인사를 하는 수진이, 손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한쪽발로 의사를 표현하는 정민이. 정민이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지혜의 통역이 필요하다. 아직 근육발달이 계속될 희망이 있는 정민이는 마사지를 해주어야 하는데 막상 만져보면 근육이 거의 없어 안쓰럽기만 하다. 항상 누워서 지내는 미진이와 진경이도 욕창 때문에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먼저 장애에 대한 제 편견을 깨주었어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몸을 쓰다듬어준다. 그러면 아이들 얼굴에 천사 같은 미소가 번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뿌듯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이런 작은 일들뿐이라는 게 안타깝다.
특히 지혜는 성격이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가족처럼 지냈다. 얼마 전에는 지혜를 집으로 초대해 하룻밤을 같이 지냈는데 함께 이불을 덮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열여섯살에 들어선 지혜가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혜가 사춘기를 겪고 사랑의 감정을 키우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다. 나 스스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무의식에는 남아 있었구나 하는 자책을 느꼈다.

새내기 주부 윤선자씨 “한달에 두번 장애아들과의 만남 통해 삶의 보람 느껴요”

보호장애아 돌보는 시설에 가서 놀아주는 윤씨.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에서 사랑을 배운다고 한다.


그날 함께 짧은 외출을 마치고 지혜를 다시 한사랑마을에 데려다주던 때가 잊히지 않는다. 지혜의 그 원망하는 듯한 슬픈 눈빛…. 지혜를 두고 돌아서는 마음이 여간 무겁지 않았다. ‘내가 지혜를 위해서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혜는 오늘도 또 집으로 초대해달라고 조른다. “언니, 또 언제 갈 거야?” 묻는 지혜. “그래, 다음에 언니가 또 휴가 내서 함께 즐겁게 지내자.” 우선은 지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 생각해야겠다.
아이들을 주물러주며 노는 사이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보통사람들에겐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이지만 한사랑마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비장애인들의 평범한 하루가 이 아이들에게는 평생을 동경하는 하루인 것이다.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밥 먹는 것을 도와주고 설거지까지 마치니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해가 기울어 있었다. 담당 선생님들이 이부자리를 펴는 것을 도와드리고 아이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눈다.
“언니, 또 와.” “오빠 또 언제 올거야?” 언어장애 때문에 언뜻 들어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작별인사를 건네는 아이들. 어떤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은 울음이 유일한 의사표현 수단이다. 현관까지 따라나온 지혜는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려는 듯 아쉬운 기색을 보이지 않고 환하게 웃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욕심이 많아서 항상 아등바등 사는 내게 삶의 여유와 진정한 행복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이곳 아이들이 아닌가 한다. 봉사활동을 통해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과 순수한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채울 수 없는 욕심에 자신을 괴롭히고 있지 않았을까?
이곳 한사랑마을의 날개 잃은 천사들을 만나며 나는 오히려 큰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삶의 순수함을 얻고 마음의 양식을 얻어가는 길. 벌써부터 아이들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 하루 빨리 이 행복을 남편에게도 나누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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