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동욱(저동초3)과 엄마 여은주(36), 문준석(호곡초3)과 엄마 김이나(37), 김서로(와동초3)와 엄마 강미선(36).
준석엄마 준석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1학년 2학기 때부터예요. 그때는 1주일에 3번 정도 썼는데 2학년이 되니까 무조건 매일 쓰는 상황이 됐어요. 아이가 일기 쓰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죠. 일기를 쓰라고 하면 즐거운 기억이 없어서 못 쓰겠다는 거예요. 사실 어른도 매일 일기를 쓰는 게 힘들잖아요. 아이에게 매일 적당한 양의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좋지만 의무적인 일이 되니까 (웃으며) 아이가 지겹다고 싫어해요.
서로엄마 (웃으며) 일기숙제를 위해서라도 매일 재미있는 거리를 만들어줘야 겠어요.
동욱엄마 동욱이는 1학년 때 형이 엄마와 일기 쓰기를 놓고 씨름하는 걸 많이 봤어요. 그걸 옆에서 보며 주워들은 게 많은지 최소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것 같아요. 그래서 심심한 날은 심심한 이야기만 써요. 그런데 진짜 쓰기 싫은 날은 글씨고 문장이고 전부 엉망이에요.
서로엄마 저는 무조건 매일 일기를 쓰게 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봐요. 서로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일기 제목을 주는데 그 제목대로 해도 되고 안해도 돼요. 매일 쓰지 않아도 되고요.
준석엄마 아이가 일기를 안 써가면 혼나니까 매일 저녁 난리를 치르게 돼요. 주제가 있는 날은 있는 대로 쓰는데 없는 날은 머리를 싸매요. “몇시에 학교 갔다와서 학원에 갔다”고 쓸 수도 없고. 그날 특별히 한 일이 없으면 쓸 게 없어요.
동욱이는 어디 갔다온 얘기를 쓸 때는 일기 쓰기가 재미있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지겹다고 말한다.
동욱엄마 저는 아이가 셋이에요. 6학년인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일기 지도를 할 때만 해도 엄한 ‘글짓기 교사’ 노릇을 톡톡히 했어요. 큰아이가 쓴 일기가 맘에 들지 않을 때면 그 자리에서 몇 차례씩 다시 쓰게 하고, 의욕이 앞서 직접 고쳐 써주기도 했고요. 사실만을 자세히 나열하면 “왜 네 일기에는 생각과 느낌이 없냐”며 혼을 낸 적도 여러 번 있죠. 일기 지도할 때 해서는 안되는 것들만 골라서 한 셈이지요(웃음).
서로엄마 맞아요. 아이가 글자를 쓸 때마다 엄마가 옆에서 ‘이거 틀렸잖아’ 하고 지적하면 막 짜증을 내요. “엄마는 저리 가” 하며.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맞춤법이나 문장이 틀렸을 때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아요(웃음).
동욱엄마 큰아이랑은 만날 싸우다가 두 살 아래인 둘째가 일기를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지도 방법을 바꿨어요. 우선 아이 일기를 뜯어고치는 일부터 그만뒀어요.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장 구성이 엉망이더라도 다그치지 않았어요.
준석엄마 대단한 인내력이 필요했겠어요(웃음).
동욱엄마 (끄덕이며) 대신 나중에 적당한 때를 골라 자주 틀리는 글자를 자연스럽게 바로잡을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 엄마는 네 글을 검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네 일기가 재미있어 새 글을 기다리는 독자라는 느낌이 들도록 애썼다고 할까요.
서로는 학교에서 일기 제목을 주지만 다른 내용을 써도 되고 매일 쓰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서로엄마 서로는 처음에 아주 통상적인 일기를 썼어요. 아침에 무얼 했고 점심에 무얼 했고 하는 식으로. 그래서 제가 편집을 해주었어요. 안 써도 되는 것은 빼고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뒤바꿔 옮겨주어 보았어요. 그리고 서로가 쓴 거랑 비교해보니 제가 쓴 게 훨씬 재미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한번 해주니까 서로가 다음에는 일기를 쓸 때 그런 방식이 있구나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준석엄마 일기를 쓸 때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의 하나가 ‘쓸 게 없다’는 거잖아요.
동욱엄마 그렇지요. 그런데 제가 세 아이와 일기 쓰기 씨름을 하며 깨달은 게 있어요. 큰아이가 저학년이었을 때 쓸 거리를 찾지 못해 투정을 부리게 한 원인이 ‘특별한 사건’만을 일깃감으로 찾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에요.
서로엄마 일기는 특별한 사건만이 아니라 아이가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이나 주변에서 일어난 일 등 늘 겪는 일을 소재로 삼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저도 처음엔 그런 것을 잘 몰랐어요.
일기 쓰기가 싫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준석이는 다행히 3학년이 되고 나서 학교에서 주제를 줘 일기 쓰기가 편해졌다고 한다.
준석엄마 (끄덕이며) 사실 일기는 거창한 글이 아닌데 엄마나 아이 모두 그걸 잊어버리게 돼요, 의욕이 너무 앞서서.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나 양치질하며 느낀 점도 소재가 될 수 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준석이는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세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좀 서툰 것 같아요.
서로엄마 그날 있었던 일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해본 것이 효과를 봤어요. 학교를 오가면서 무엇을 보았는지, 교실이나 학원에서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를 얘기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아이가 ‘아, 그거! 그거 써야지’ 해요. 그런 날은 일기 쓰기가 한결 수월해요. 자연스럽게 아이의 생활을 알 수도 있고요.
동욱엄마 그래도 아이가 매일 비슷한 내용의 일기를 되풀이해서 쓰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는 또래의 일기 모음집을 구해서 다른 아이의 일기 글을 골라 아이와 함께 읽어보기도 했는데 이 방법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동욱이는 삼촌이 군대를 가면 군대 가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쭉 쓰거나 날씨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만 가지고도 일기를 써요.
서로엄마 서로는 가끔 아빠의 옛날 일기를 훔쳐 볼 때가 있는데 재미있대요. ‘나도 나중에 아빠처럼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쓴 일기를 보여줘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서로가 일기 쓰기를 싫어하는 날은 일기가 없다면 나중에 네가 ‘어떻게 옛날 일을 다 기억할 수 있겠니?’ 하고 말해줘요.
서로와 동욱이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연필만 잡으면 잠이 온다며 아이다운(?) 고민을 토로했다.
동욱엄마 동욱이는 일기를 쓸 때 제목을 붙이고 쓰는데 제목 붙인 것을 보면 신기할 때가 있어요. ‘신나게 놀자’라고 붙이거나 ‘외식’이라고 안하고 ‘오랜만에 밖에서 먹는다’ 하고 달아요. 또 ‘먹물 저주를 피함’ ‘나밖에 못 걸어온 인생’ ‘지적은 그만 칭찬은 OK’ 같은 제목을 다는데 내용보다 제목이 더 눈길을 끌 때가 있어요.
서로엄마 서로도 ‘버스를 세 번 놓치다’ ‘경찰아저씨 거기서 뭐 하세요’ 하는 식으로 제목을 재미있게 쓸 때가 있어요.
준석엄마 우리는 제목이 주어져서 오기 때문에 단조로워요. 그런데 선생님이 일기 숙제를 내주는 것과 검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있어요.
서로엄마 어떤 선생님은 일기 검사를 하면서 일기에 점수를 주어 아이들끼리 “너 몇점 맞았니?” 하고 묻기도 한대요.
준석엄마 그렇게 되면 엄마나 아이가 일기 쓰기 숙제를 무심하게 할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거나, 일기를 보고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을 가져주면 좋은데 야한 생각이나 나쁜 생각을 한다고 야단을 치거나 맞춤법을 지적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엄마 솔직하게 써야 아이의 솔직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건데 남을 의식하면 솔직하게 써지지 않잖아요. 솔직하게 쓴 글 때문에 혼이 나면 절대 솔직하게 쓸 수가 없지요.
동욱엄마 저는 일기 쓰는 형식이 좀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어떤 아이들은 노트에 쓰는 것보다 컴퓨터 워드로 치는 걸 더 좋아해요.
준석엄마 동감이에요.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든, 만화 형식으로 쓰든, 자기가 꾸며서 표도 붙이고 했으면 좋겠어요. 방학 때만이라도요. 관찰보고서나 체험학습 기록장도 따로 쓰도록 하지 말고 일기 하나에 녹아들도록 한다면 훨씬 부담이 적을 것 같아요.
서로엄마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나 생각을 정리하는 게 일기인 만큼 방학중 일기숙제는 필요하다고 봐요. 하지만 아이에게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잖아요. 일기숙제가 너무 괴로운 작업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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