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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스포트라이트

영화 ‘실미도’에서 북파공작원 역 맡아 호연 펼친 설경구

■ 글·이영래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1.05 14:18:00

한국영화의 열풍이 계속됐지만 지난 상영작 중에서 설경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는 지난 한해를 단 한편의 영화를 위해 보냈다. 북파공작 684부대를 소재로 한 영화 ‘실미도’가 바로 그 영화다. 북파공작원으로 1년여 사투를 끝낸 설경구를 만나보았다.
영화 ‘실미도’에서 북파공작원 역 맡아 호연 펼친 설경구

하늘은 꼭 파랗지는 않지만 그림 속에선 파래야 하늘 같다. 설경구만큼 광기를 내뿜는 인물은 현실에는 없을 듯싶지만, 영화 속에선 설경구처럼 해야 그 인물 같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꽃잎’으로 영화에 데뷔,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 역으로 한국영화의 히어로로 등장한 설경구(36). 그는 ‘공공의 적’ ‘오아시스’ ‘광복절 특사’ 등 출연하는 영화마다 깊이 있는 연기를 펼쳐 한국 최고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연기는 누군가를 그대로 베껴내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영화 속에서라면 짧은 대사 하나에도 캐릭터를 부각시킬 수 있는 카리스마가 더욱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설경구는 전형적인 영화배우다.
“찍기 전에 실화라는 것 때문에 부담이 많았어요. 과연 이랬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고. 그런데 원래 그런 거 가지고 크게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인물은 작가나 감독이 다 해석해놨으니까. 시나리오에 다 나와있으니까 저는 그 인물을 표현하는 거죠. 그래서 대사도 잘 안 외워요. 슛 들어가면 그냥 그 인물의 감정을 터뜨리는 거죠. 빨리 찍기로 유명한 강감독이 오죽 답답했겠어요. 어느 날 ‘나 4년 만에 영화 찍는 거거든. 나 좀 도와줄래?’ 이러시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 서로 익숙해졌어요.”
대사를 잘 외우지 않는 배우. 배우로서 무슨 불손한 직무유기인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일단 영화에 들어가면 설경구는 그 사람이 돼버리기 때문에 대사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천부적인 배우 설경구를 지난 한해 동안 스크린에서 전혀 볼 수 없었다. 그가 지난 1년여간을 ‘실미도’ 한편을 위해 바쳤던 탓이다. 현재 충무로 캐스팅 1순위의 톱스타인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의외다. 하지만 그의 답은 간단하다. 단지 “‘공공의 적’ 때 강감독과 알게 되었고 믿었다”는 게 이유의 전부다.
“영화 ‘실미도’는 말 그대로 실미도 사건을 다룬 거예요. 1968년 김신조 남파 간첩 사건 이후 ‘우리도 김일성 목을 따러 가자’는 발상에서 실미도 특수부대를 만들었죠. 그들이 섬을 탈출해 서울 대방동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해 죽을 때까지의 상황을 담았어요. 실미도 대원들이 원래 사형수였다는 얘기도 있고 서커스단에서 칼을 잘 던져서 차출된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확실하게 알려진 건 없어요. 솔직히 그 사람들이 투철한 애국심 때문에 움직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잘 살아보고 싶어서 그랬겠죠.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국가가 사기를 친 건죠.”
1971년 8월23일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인천시내버스를 타고 나타난 군인들이 군경합동진압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폭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실미도 사건. 사형수, 무기수, 일반 재소자들을 포함해 사회 밑바닥층의 사람들을 포섭해 만든 실미도 684부대는 작전 성공시 모든 형벌 취소 및 전과기록 말소 등 정부로부터 새 삶을 보장받고 실미도에서 지옥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대북관계가 호전되면서 이들은 정부로부터 버림받고 말았다.

영화 ‘실미도’에서 북파공작원 역 맡아 호연 펼친 설경구

설경구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31명 전원이다”며 동료들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전부터 사나이들끼리 어울려 만든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정부는 이 부대의 정체가 노출될 것을 염려, 기간병들에게 전원 사살 명령을 내렸다. 이 사실을 사전에 눈치챈 684부대원들은 기간병들을 죽이고 실미도를 탈출, 청와대를 향해 돌진하다 자폭했다. 31명의 대원 중 7명은 훈련 중 죽었고, 서울로 향하던 대원들은 버스 안에서 자폭해버렸다. 그중 4명이 살아남았지만 곧 총살당해 실미도 684대원 중 생존자는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어느 정도 픽션의 테두리에서 새로 인물들을 만들어야 했는데, 제가 맡은 강인찬은 최후의 순간에 수류탄을 던져 대원들을 처절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물이에요. 그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죽기 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비장하고, 억울해 울면서도 문득 ‘자장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설경구가 맡은 역은 실미도 684부대 제3조장 강인찬이다. 강인찬은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 때문에 30여년을 연좌제에 덜미잡힌 인생으로 뒷골목을 전전하다 범죄자가 되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이후 갑자기 들이닥친 기관요원들에 의해 실미도 부대원으로 차출된다. 임무에만 성공하면 연좌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사면과 함께 포상을 받아 어머니와 재회해 새 삶을 꾸릴 희망으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인물이다.
영화 ‘실미도’에서 북파공작원 역 맡아 호연 펼친 설경구

조폭 행동대장 출신답게 강인찬의 액션은 영화 속에서 눈부시다. 하지만 설경구의 실제 액션에 대한 강우석 감독의 평은 그 반대. 강감독은 “폭파 신 등 위험한 장면을 많이 촬영했는데 다행히 사고 한번 나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사고 한번 있었던 게 설경구씨였어요. 누가 바다에 빠져서 물먹고 있길래 건져내보니 설경구씨더라고(웃음)” 하며 설경구를 놀리기도 했다.
“3월부터 ‘역도산’을 촬영한 뒤 다시 강감독이 하는 ‘공공의 적 2’에 출연할 계획이에요. 뭐 연이어 실화·실존 인물을 맡게 됐는데 작정하고 하는 건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어차피 영화로 만드는 거니까 실화라는 걸 잊어야 해요. 온갖 자료와 상반되는 진술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아요. 역도산도 겉으론 영웅이었지만 사실은 난폭하고 허세에 가득 찬 보통 인물이었다고 생각해요.”
설경구는 최근 영화 ‘역도산’ 촬영을 앞두고 몸만들기와 일어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고역은 살을 찌우는 것. 15kg을 늘려달라는 게 감독의 요구였는데 사정해서 8kg만 늘리기로 했다고 한다. ‘공공의 적’ 당시 체중을 늘릴 때는 물살이어도 됐지만 배역 자체가 레슬링 스타 역도산인 터라 근육을 만들기 위해 연일 운동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작품마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그가 또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낼지 기대가 크다.

여성동아 2004년 1월 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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