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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고아들의 ‘목욕 엄마’로 봉사하며 가족사랑 더욱 깊어졌다는 윤춘미씨 사연

■ 정리·안소희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4.01.05 13:39:00

6년째 경기남부 아동일시보호소에서 목욕봉사를 하고 있는 윤춘미씨(39).
그는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보호소를 찾아 아이들을 목욕시켜주는 ‘목욕엄마’다.
자원봉사를 계기로 사회복지학과에 입학까지 하는 등 보람 있게 제2의 인생을 산다는 그가 들려주는 ‘나눠서 행복한 삶.’
6년째 고아들의 ‘목욕 엄마’로 봉사하며 가족사랑 더욱 깊어졌다는 윤춘미씨 사연

매주 목요일은 아동일시보호소를 찾는 날이다. 매주 하는 일이지만 언제나 아침부터 긴장하게 된다. 오전 9시30분까지 보호소에 도착하려면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안일을 서둘러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골목길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급한 마음에 걸음을 늦출 수가 없다.
보호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와아∼” 소리를 지르며 매달리는 아이들. “아줌마, 안녕하세요?” “아줌마, 아줌마!” 순식간에 몰려든 아이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매달린다. 그 순간 여기에 오기까지의 고단함이 눈녹듯 사라진다.
“그래, 안녕, 안녕!” 아이들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쓸어준다. 한 아이도 빠짐없이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정이 그리운 아이들은 그 짧은 인사에도 소외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관에 들어서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듯 나누는 인사는 이곳을 찾는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준다.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마주칠 때의 반가움과 기쁨이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흐뭇한 일이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6년이 되어간다. 그전부터 막연히 ‘언젠가는 남을 돕는 일을 하며 살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남편 뒷바라지하며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기도 벅차 자원봉사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던 중 이웃 아주머니께서 이곳에서 함께 봉사를 하자며 나를 이끌어주셨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는 ‘목욕의 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나름대로 요령과 여유가 생겨 봉사자 둘이서 2시간이면 아이들을 모두 깨끗하게 씻길 수 있지만 처음에는 하루에 30∼40명의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일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두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어 남못지않게 자신했지만 갓난아이부터 초등학생까지 낯선 아이들을 씻기고 나면 볼펜을 쥘 수 없을 만큼 어깨가 아팠다. 봉사를 다녀온 날이면 파스를 붙이고 끙끙 앓는 나를 보며 남편은 걱정어린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몸이 고되어도 봉사를 마치고 보호소 문을 열고 나올 때 가슴 가득 밀려드는 뿌듯함은 몸의 고단함과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은 내게 아니, 우리 가족에게 참으로 많은 선물을 주었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 2학년인 아들 동기와 딸 예진이는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으레 보호소를 찾아 어린이날 행사에 참가한다. 그럴 때면 우리 부부는 동기와 예진이에게 “오늘만큼은 너희들 엄마, 아빠가 아니야. 너희들도 여기 있는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들이야. 그러니까 우리 찾지 말고 어리광피우지마” 하고 얘기한다. 동기와 예진이도 우리의 잔소리가 무색하도록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
동기와 예진이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나누는 기쁨을 알아가는 것 같다. 어린이날에도 놀이동산을 가자거나 선물타령을 하는 일이 없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남편의 지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던 남편도 이제는 직접 회사 차량까지 동원해주는 등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

6년째 고아들의 ‘목욕 엄마’로 봉사하며 가족사랑 더욱 깊어졌다는 윤춘미씨 사연

윤춘미씨는 이웃 아주머니의 권유로 아동보호소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연히 시작한 자원봉사활동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결혼 후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내가 열살배기 지은이를 만나면서 비로소 사회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전신이 마비되어 혼자 힘으로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 중증 장애아다. 안쓰럽게 사지가 비틀린 채 눈만 또렷이 뜨고 쳐다보던 지은이를 씻기며 속으로 내내 울었다. 이곳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지만 유독 몸이 불편한 지은이의 눈망울은 쉽게 잊혀지질 않았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도움이 절실한데 오히려 사회에서 더욱 소외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목욕이 끝난 후 해맑은 아이들 미소 보면 피곤이 말끔히 사라져
나는 이런 장애아들에게 좀더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급기야 올해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컴맹에 넷맹이던 내가 인터넷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봉사’라고 하지만 사실 내겐 베푼다는 의미보다는 선물을 받고 축복을 받은 시간들이다.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내 또래 사람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내겐 ‘나누는 삶’이 열어준 제2의 인생이 있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행복하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오늘은 처음 보는 얼굴이 더 늘었다. 새로 온 아이들은 낯선 환경이 두려운지 물을 피해 나에게 꼭 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은 꼭 안고 부드럽고 따스하게 어루만져주면 나를 금세 엄마처럼 따른다. 나도 이 순간만큼은 이 아이들의 엄마가 된다.
개구쟁이들은 신나게 물장난을 친다. 그러면 나는 거품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자 폭포다!” 소리를 치며 맞장구를 쳐준다. 녀석들과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모든 아이들이 깨끗하게 씻겨져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이제 볼이 발그레해진 아이들과 언제나 가족처럼 살갑고 따스하게 맞아주시는 복지사 선생님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다. 작은 용기로 시작한 ‘나눔’이 준 선물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오늘도 뿌듯한 마음으로 현관을 나선다. 아이들에게 다음주에 다시 만나자고 손 인사를 하며.





여성동아 2004년 1월 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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