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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weet home_독자 솜씨자랑

월성의 소문난 ‘퀼트여사’허재희 주부의 예쁜 작품 구경

“한땀 한땀의 정성으로 집안 가득 사랑을 채워요”

■ 글·장옥경 ■ 사진·조영철 기자

2003. 12. 12

경북 경주시 양남면 한국수력원자력 월성본부 사택에 살고 있는 허재희 주부. 8백여 가구가 공동체를 이루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곳에서 그는 ‘퀼트여사’로 통한다. 바늘 한 땀씩 정성껏 누벼 만든 작품을 이웃에 선물하며 정겹게 살고 있는 허재희씨네 집을 방문했다.

월성의 소문난 ‘퀼트여사’허재희 주부의 예쁜 작품 구경

남편과 성준, 동현 세 남자에 둘러싸여 하루 생활이 분주하기 이를 데 없지만, 바느질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


“요즘 퀼트는 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하나의 예술분야를 이루고 있지만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조각보나 누비이불 같은 것으로, 여인들의 섬세한 솜씨가 깃든 작품을 생활용품으로 썼지요.”
천과 천 사이에 천이나 솜 등을 넣어서 누벼가는 작업인 퀼트의 매력에 빠져든 지 5년째 되었다는 허재희씨(34). 한국수력원자력에 다니는 남편과 월성본부 사택에 살고 있는 그의 집엔 쿠션, 베개, 벽걸이, 소파 덮개, 창문 장식, 가방, 재킷에 이르기까지 그가 한땀씩 정성으로 만든 퀼트 제품들이 집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살림하랴, 남편(조태만씨·42) 내조하랴, 한창 개구쟁이짓을 할 나이의 성준(10), 동현(7) 형제를 키우기도 바쁠텐데 언제 저렇게 바느질을 할 새가 있을까. 그는 혼자 취미 수준으로 한 솜씨라 보잘것없다며 겸손해한다. 그러면서 시간을 잊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으며 만들고 나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퀼트가 주부들에게 아주 좋은 취미생활이라고 주저없이 권한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를 보고 그 매력에 푹 빠졌어요”
월성의 소문난 ‘퀼트여사’허재희 주부의 예쁜 작품 구경

퀼트를 할 때마다 퀼트가 가정생활과 너무 닮아 있다고 느낀다는 허재희씨. 각기 다른 천이 모여 아름다운 작품이 되듯, 가정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격체가 모여 하모니를 이룬다고 한다.


“이웃 분이 퀼트를 하고 계셔서 그분을 따라 울산의 한 퀼트 전문점에 가게 되었는데 숍에 있는 작품들이 어찌나 예쁜지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어요. 그리고 얼마 후 ‘아메리칸 퀼트’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한번쯤 해보고 싶은 취미’에서 ‘꼭하고 싶은 취미’로 바뀌게 되었어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눈썰미나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도를 닦는 수준의 인내력. 재봉틀로 ‘드르륵’ 박는 것이 아니라, 한땀 한땀 디자인과 색상에 맞춰 세심하게 누벼가는 과정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는 틈을 이용해 바늘을 잡으면 벽걸이 하나를 완성하는데 족히 한달은 걸릴 정도의 시간과 정성이 든다고.
월성의 소문난 ‘퀼트여사’허재희 주부의 예쁜 작품 구경

발전소에서 나온 온배수를 이용해 양식한 생선들을 무료로 직원들에게 나눠 주어 1년에 서너 번 생선회를 먹기도 한다고.


“흔히 주부들이 하는 얘기가 ‘결혼 전에는 안 그랬는데 주부가 되고 나니 멍청해졌다’는 말들을 하잖아요. 주부의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산만해지기 쉬워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은데 퀼트를 하다 보면 집중력이 높아져 옛날 머리로 돌아갈 수 있어요.(웃음)”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작품을 볼 때면 뿌듯한 마음도 들고 가족들에게 ‘우리 엄마 솜씨 최고’라고 인정을 받을 때는 기분이 하늘을 난다고 한다. 게다가 돈 주고 사면 몇 만원은 족히 되는 쿠션, 소파 덮개 같은 것을 자투리 천을 이용해 만드니 가계에도 보탬이 되고 명절이나 기념일에 작은 소품들을 만들어 주변에 선물하면 정성이 깃든 제품이라 모두 환영하여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월성의 소문난 ‘퀼트여사’허재희 주부의 예쁜 작품 구경

퀼트 소품으로 꾸민 허재희씨네 거실. 낡은 가죽 소파가 싫증나 퀼트로 소파덮개를 만들었다. 완성하기까지 꼬박 두달 이상이 걸렸지만,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제품이라 예술작품 보는 기분이라고. 하트 모양의 무늬를 넣은 벽걸이는 그가 가족에게 전하는 사랑의 상징.


“손위 형님께 퀼트로 만든 가방을 선물한 적이 있어요. 비싼 돈 주고 산 명품 가방보다 훨씬 좋다고 어찌나 기뻐하시던지요. 외출할 때 들고 다니기가 아까울 정도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저 역시 기쁘고 보람을 느꼈어요.”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월성 원자력본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같은 부서에 남편이 있었어요. 그때 남편에게 찍혀 미팅 한 번 못 해보고 결혼했어요.”
93년 스물넷의 꽃다운 나이에 서른둘의 노총각을 구제했다(?)는 허재희씨는 결혼한 이래 계속 이곳 사택에서 신혼을 보내고 두 아이를 낳아 키웠다. 99년에 남편이 노조지부위원장을 맡은 뒤로는 늦게 들어오는 날도 많아지고 사람들을 자주 몰고 와 손님 치르기엔 이력이 났다고 웃는다.
“아내 성격이 편안해요. 직원들이 ‘형수님 라면 좀 끓여주이소’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끓여주고 밥 먹다가도 손님이 오면 얼른 밥 한 공기 퍼들고 숟가락을 놓아주어, 모두 내 집처럼 편안해합니다.”
아내가 편하게 받아주니까, 동료나 후배직원들을 데리고 올 수 있다며 아내 자랑을 시작하는 남편 조태만씨. 아내가 퀼트 작업을 할 때 자신도 한번 해보려고 바늘을 잡고 홈질을 해봤는데 두툼한 손으로 바느질을 하려니 너무 힘이 들었다고 한다. 천을 자르거나 시접작업을 할 때면 가끔 도와주기도 한다고. 항상 ‘허허허’, ‘깔깔깔’ 웃음이 떠나지 않기에 허씨 커플은 소문난 잉꼬부부다.
월성의 소문난 ‘퀼트여사’허재희 주부의 예쁜 작품 구경

1. 동물 모양의 소품을 만들어 아이들 방문에 걸어두었다. 2,3 퀼트 가방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그녀의 또다른 행복이다.


처음 결혼할 때는 주위의 걱정도 많았다고. “월성 원자력본부에 근무를 하고 그 주변에 사니까 친구나 친척들이 ‘괜찮냐’고 우려를 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바깥에서 보는 것처럼 위험하지 않아요.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져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할까요.”
81년, 월성 1호기 건설 당시부터 일해왔다는 남편 조태만씨는 세계보건기구(WHO) 권장 기준에 맞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작업환경과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배정하기 때문에 이곳에 근무하는 근로자나 가족들은 건강에 대한 염려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발전소에서 나온 온배수를 이용해 양식한 생선들을 무료로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해 1년에 서너 번 생선회를 먹곤 한다고.
요즘에는 그림에도 취미를 붙이고 있다는 허씨.
“6개월 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미술을 좋아하는 주부 몇명이 선생님을 초빙해서 집집마다 돌아가며 공부를 하지요. 그림만 그리기보다는 육아에 대한 정보 교환에서부터 연애시절의 추억담, 신랑 흉보기 등 주제도 다양하게 이야기꽃을 피운답니다.”
옆집의 오늘 저녁 반찬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이웃과 친척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며 산다는 그는 앞으로도 퀼트에 쏟는 인내와 정성처럼 가족을 사랑하며 아끼고 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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