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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자신의 BMW로 납치당했던 인기 방송인 A양 사건의 숨겨진 내막

‘당초 없다고 밝혔던 나체사진 15장 찍은 것으로 드러나’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12.10 18:08:00

지난 6월 발생한 방송인 A양 납치사건은 당시 많은 의문점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최근 당초 경찰에서 없다고 발표했던 A양의 나체사진이 존재했음이 납치범 김씨의 1심 판결문과 2심 공판을 통해 새롭게 밝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 & 납치범 김씨의 옥중 심경.
지난 6월 자신의 BMW로 납치당했던 인기 방송인 A양 사건의 숨겨진 내막

지난 6월1일 밤 서울 하얏트호텔 주차장에서 인기 방송인 A양이 납치된 뒤 6시간 만에 풀려난 사건이 발생, 세간에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A양 납치극’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최근 SBS 시트콤 ‘형사’의 1회 이야기 ‘추락하는 새의 마지막 몸짓’의 소재가 되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건 당시 경찰에서는 이례적으로 A양의 신원을 철저하게 함구해 그 이유를 놓고 기자들 사이에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더욱이 경찰이 사건 발생 사흘만에 납치범 김씨(41)를 체포한 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도 피해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자 세간에서는 ‘말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며 ‘과연 단순 납치일까?’ ‘납치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등등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의혹만 남긴 채 납치범 김씨가 의정부교도소로 송치되면서 ‘A양 사건’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지난 9월18일, 납치범 김씨가 서울지법 고양지원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씨에게 15년형을 구형한 검찰 역시 형량이 너무 적다며 항소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실 단순 납치사건의 경우 초범에게 징역 6년의 형량이 너무 적다며 검찰이 항소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뭔가 중대한 범죄사실이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 이외의 숨겨진 사건의 내막을 알기 위해 11월6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 재판정에서 열린 김씨의 항소심 첫 공판 현장을 찾았다.

김씨 “내가 범죄 저지른 건 정신질환 때문”
재판정에 선 김씨는 납치범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키 178cm에 건장한 체구의 호남형 얼굴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나는 81년부터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현재도 환각, 환청에 시달린다”며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약물치료를 받고 싶다. 정신감정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어떤 이미지가 보이고,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르도록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환청에 이끌려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그는 A양 납치사건 역시 환각제인 러미날을 복용한 후 환각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체포 당시 그는 다량의 러미날을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약물중독이라는 주장과 달리 그의 말투는 또렷했고 조리 있었다. 행동거지 또한 멀쩡해 보였다. 재판부도 그가 훔친 승용차의 번호판을 바꿔 다는 등 치밀한 범행을 한 것으로 보아 환각상태에서 저지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의 국선 변호인은 재판 후 기자에게 “이미 경찰에서 마약검사를 했는데,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자꾸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모발검사를 하면 최소 3개월 전에 마약을 한 것까지 검출이 된다. 그는 “김씨가 계속 그렇게 주장을 하면 재판부에서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판결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지난 6월 자신의 BMW로 납치당했던 인기 방송인 A양 사건의 숨겨진 내막

어쨌든 그는 재판 내내 A양을 납치한 것은 사전에 계획한 것이 아니라 하얏트호텔 지하 바에 술을 마시러 갔다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BMW를 보는 순간 ‘훔치라’는 환청을 들었고, 20분을 갈등하는 동안에도 차가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어 결국 범행을 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A양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범행을 했다는 것이다.
한편 재판중에 경찰이 ‘A양의 나체사진은 없다’고 한 것과 달리 김씨가 A양의 나체사진을 찍었음이 확인되었다. 판사는 김씨가 A양을 납치한 후 카메라로 나체사진을 찍었던 것을 염두에 둔 듯 “카메라는 왜 갖고 다녔느냐”고 추궁했다. 나체사진의 존재는 1심 판결문에서도 확인되었다. 그의 죄명 중에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이라는 부분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1심 판결문과 김씨가 재판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사건 당시를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6월1일 밤 11시경, A양은 하얏트호텔 커피숍에서 몇달 후 막이 오를 뮤지컬 관계자를 밤 1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각까지 여유가 있자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운전석에서 혼자 앉아 실내등을 켠 채 차량 작동법이 적혀 있는 사용설명서를 보고 있었다. 그가 BMW 승용차를 장만한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 차를 지나가던 김씨가 범행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차 뒷문을 열고 들어간 김씨는 맥가이버칼로 A양을 위협해 납치했다. 그는 A양을 보는 순간 연예인임을 알아보았다. A양을 뒷자리로 밀어넣고 자신이 BMW를 운전해 김포 쪽으로 향하던 김씨는 A양으로부터 지갑을 통째로 건네받은 후 신용카드를 꺼내 일일이 전화로 인출 가능액을 조회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리고 새벽 1시30분경 동대문 밀리오레 쇼핑몰 앞에 차를 주차시킨 후 인근 편의점에 가서 A양의 신용카드로 1백60만원을 찾았다.
여기에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납치를 당할 때는 인적이 드문 지하주차장이었고, 흉기를 가지고 있어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갈 수 없었다 하더라도 김씨가 신용카드로 돈을 찾기 위해 자리를 비운 20분 동안 왜 탈출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20여분이면 탈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뒷문이 자동잠금장치가 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앞자리로 와서 잠금을 해제하면 쉽게 문을 열고 도망칠 수 있었다.
더구나 동대문 밀리오레 쇼핑몰 일대는 새벽 쇼핑객들로 붐비는 곳이라 지나가는 행인에게 구조를 요청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차안에 그대로 있었다. 물론 A양이 당시 극도의 심리적 공황상태였다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겠지만 A양은 경찰에서 “납치 시간 동안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신용카드로 돈을 찾은 김씨는 다시 A양을 데리고 김포, 남양주 일대를 돌아다니다 오전 3시경 남양주 부근 야산에서 다시 맥가이버칼로 A양을 위협해 옷을 벗으라고 강요한 후 자신의 디지털 카메라로 11차례, A양의 차 안에 있던 자동카메라로 4차례에 걸쳐 전신 나체사진을 찍었다. 경찰은 디지털 카메라와 자동 카메라를 김씨 내연녀의 오피스텔에서 찾아냈다. 그가 A양의 나체사진을 찍은 이유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 거액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6월 자신의 BMW로 납치당했던 인기 방송인 A양 사건의 숨겨진 내막

그리고 새벽 5시경 하얏트호텔로 돌아온 그는 “오늘 정오까지 5천만원을 가지고 약속장소로 나오라”고 했고, A양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자 풀어주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A양이 경찰에 신고하자 김씨는 그때부터 노골적으로 협박하기 시작했고, 액수도 1억원으로 올려 요구했다. 그는 A양에게 “나는 깔끔하게 끝내고 싶다. 가족들도 있다고 그랬지. 사진 죽이던데, 1억원 내놓아라. 돈을 주지 않으면 이제 인터넷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너는 끝장이다”고 협박했다.
이날 재판에서 피해자 A양의 실명은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양을 지칭할 때 ‘그녀’라고 표현했고, 김씨 역시 ‘그 여자’로 표현하는 등 A양의 신변보장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1심 재판 때도 마찬가지였다. 1심 판결문엔 피해자 이름이 윤선아란 가명으로 되어 있다. 김씨의 변호인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법정에서는 피해자 이름이 공개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검사가 재판 과정에서 실명이 공개될 경우 향후 파장이 클 것을 우려해 기소할 때부터 피해자의 이니셜을 사용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 김씨마저도 A양의 실명을 재판에서 한번도 거론하지 않았던 것일까? 김씨를 옥중 면회하는 자리에서 그 이유를 묻자 “A양이 또 다른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뒤이어 “조금만 기다려달라. 선고가 내려지면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이 A양이 1심 때 김씨의 선처를 바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김씨가 내게 ‘A양에게 진정서를 또 내라고 할까요’라고 했다”고 확인해주었다. 남자친구를 통해 신고까지 한 A양이, 더구나 추후 협박수단이 될 수 있는 나체사진까지 경찰에 의해 회수된 상태에서 무엇 때문에 진정서까지 낸 것일까. 김씨의 변호인은 “어떻게든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으로 추측했다.
이날 항소심 1차 공판에서 검사는 1심대로 징역 15년형을 구형했다. 한편,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87년 파라과이로 영주권을 취득해 이민을 가 그곳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이혼 후 2000년에 귀국해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등지에서 의류도매업을 해왔다. 하지만 이 사업마저 실패한 후 별다른 직업 없이 내연녀와 함께 지내왔다.


여성동아 2003년 12월 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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