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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엄마, 안녕히 가세요

입력 2003.12.03 13:38:00

이제 곧 팔순이 되는 엄마는 두달을 못 참고 눈을 감았다.
유난히 햇빛 좋던 가을날 낙엽 하나 떨어지듯 소리 없이 떠나셨다.
10년간 치매를 앓는 바람에 가족도 몰라보고 인공 젖꼭지를 빠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를 붙잡고 싶었다.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나의 방패막이요 수호천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내딸의 철없는 욕심이 세상과 작별하고픈 엄마를 억지로 붙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 새벽 잠든 엄마 얼굴을 보며 이제 엄마 편한대로 해도 좋다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하고 집을 나섰다.
그날 오후 엄마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떠나셨다.
“만약 하느님이 허락한다면 다음 생에는 내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 내가 엄마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안녕히 가세요

난 이제 고아다. 지난 11월3일에 엄마가 세상을 뜨신 바람에 마흔 넘어 고아가 됐다. 돌아가시기 전 엄마는 10년 동안이나 치매를 앓으셨다. 그동안 엄마랑 제대로 된 대화도 못 나누고, 새벽같이 뛰어나와 밤늦게 들어가는 날에는 엄마 얼굴조차 못 보고 잠이 들었지만 그래도 항상 엄마가 내 곁에 계시다는 생각에 고아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난 10여년간 촛불처럼 서서히 자신을 태우던 엄마는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일어나 앉아 계시다가 조금 힘들어하시더니 마지막 순간도 촛불이 꺼지듯 편안하게, 평화롭게, 최선을 다해 살아온 79세의 생을 마무리하셨다. 유난히 따스하던 가을날에 낙엽이 살짝 떨어지듯 그렇게 가볍게 가셨다. 뇌혈전으로 치매에 걸리신 후 엄마는 차근차근 치매환자의 경로를 밟아오셨다. 기억력이 흐려지고 집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상한 음식을 드시고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러다 대소변을 못 가리게 되고, 가족은 물론 당신 자신도 못 알아보더니 끝내는 틀니를 못 끼셔서 죽 같은 유동식만 드셨다. 마지막 몇달 동안은 엄마가 아기처럼 손가락을 빠는 통에 인공 젖꼭지와 빨아먹어도 되는 유아용 장난감을 사면서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팔순을 앞둔 엄마에게 젖꼭지 선물이라니….
시계를 거꾸로 돌리듯 아이가 되고 기력도 줄어드는 엄마를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엄마가 늙고 약해지는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홍삼, 공진단 등 보약에 기력을 보강한다는 건강보조식품을 해드려도 엄마는 눈에 띌 만큼 회복되진 않았다. 목욕을 시켜드릴 때마다 납작해진 가슴, 아프리카 어린이처럼 뼈만 남은 앙상한 팔다리를 보면서도 난 엄마를 포기할 수 없었다.

마지막 10년간 치매로 가족도 못 알아보고, 인공 젖꼭지를 빨며 어린 아기로 돌아갔던 엄마
평소 도우미 아주머니 뒤를 따라다니시던 엄마가 갑자기 가만히 앉아 병든 닭처럼 졸기만 하셨다. 병원으로 모셔야 할까, 간호사를 불러 영양제라도 놓아드려야 할까, 겨울 동안만이라도 치매전문 요양원에 맡길까…. 이런 궁리로 마음만 복잡해질 뿐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형제들은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남편은 “이제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 뭘 그리 안달복달하냐”며 날 나무랐다. 난 그래도 엄마를 붙잡고 싶었다. 엄마는 내 종교고 수호천사며 나의 방패막이기도 했으니까 어떻게든 함께 있고 싶었다. 적어도 두달만 버티시면 팔순인데, 그럼 평균 수명은 다하시는데….
월요일 아침. 아침방송을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서며 잠든 엄마 얼굴을 확인하고 결심을 했다. 이젠 엄마를 좀 편안하게 놓아드려야겠다고. 내 욕심만으로 엄마를 붙잡고 있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불편했을까. 엄마에게 밀려 내겐 아이도 남편도 늘 2순위였다. 다른 형제들은 막내에게 엄마를 도맡겼다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릴 테고, 일을 봐주시는 아주머니도 엄마 때문에 여간 고생이 아니다. 무엇보다 엄마가 나 때문에 육신이 그렇게 남루해졌는데도 이세상과 작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의 이기심과 지나친 집착이 너무 많은 이들을 괴롭힌 셈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 안녕히 가세요

“엄마. 이젠 엄마 마음대로 하세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가셔도 돼요.”
이렇게 마음속으로 인사를 했는데 내 마음을 읽으셨나 보다. 엄마는, 그날 낮에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회사에서 급히 달려온 내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시고 눈을 감으셨다. 마치 “이제 나 마음 편히 가도 되는 거지” 하고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떠나셨다.
장례식을 치르고 엄마를 화장해 절에 모셨다. 그런데 아직까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누군가 “지금까지 몰래 카메라였습니다!” 하고 말해줄 것만 같고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엄마 방에 누워 계실 것만 같다.

“다음 생에는 내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 받기만 한 사랑 돌려주고 싶어요”
신기한 것은 엄마가 죽으면 따라 죽거나 적어도 기절이라도 할 줄 알았던 내가 꿋꿋하게 잘 버틴다는 것이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 입원하거나 장기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는데 막상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고, 언니오빠들에게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그것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온을 유지하는 것, 가능하면 조용히 아름답게 마무리짓는 것이 엄마의 바람인 것 같아서다. 많이 울면 엄마가 자꾸 뒤돌아보시느라 하늘나라에 못 간다는 말에 착한 어린이처럼 잘 울지도 않는다.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잘 적응하시는지 꿈속에도 한번 나타나지 않으신다.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내 생일엔 엄마에게 항상 감사의 뽀뽀를 해드리곤 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내 곁에 계셔서 너무 고맙다는 뜻에서다. 엄마는 유난히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셨는데 이번 생일엔 케이크를 사지 않았다. 그 케이크를 보면 또 울고, 내가 울면 엄마가 슬퍼하실 테니까.
“엄마, 전 잘 있어요. 제 걱정은 마세요. 이젠 초라하고 남루한 육신, 훨훨 벗어나서 엄마 본연의 아름답고 고운 모습 찾으세요. 엄마가 제 엄마이셨다는 것, 너무 축복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엄마의 딸이어서 행복했고 너무 감사했어요. 만약 하느님이 다시 인연을 허락한다면 다음 생에서는 내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서 내가 엄마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요.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삶은 지속된다’는 영화 제목처럼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태연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게 엄마에게 남은 효도를 하는 것이고 나를 걱정해주고 위해주는 분들에 대한 보답인 것 같다. 너무 많은 분들이 나보다 더 안쓰러워하시고 걱정해주셔서 새삼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마지막까지 내게 정말 좋은 교훈을 남긴 셈이다.


여성동아 2003년 12월 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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