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7일 오후 3시53분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그토록 기다려온 아이가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온 것이다. 아빠 나이 마흔둘, 엄마 나이 서른여덟. 남들 같으면 벌써 학부모가 되었을 나이에 부부는 너무도 소중한 첫아이를 얻었다.
“아내가 노산이라 걱정을 많이 했죠. 게다가 지난해 한번 유산의 아픔이 있어서 불안감이 더 컸어요. 하지만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나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니 아이가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워요.”
아이는 예정일보다 4주 빨리 태어났다. 촬영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고 있던 그의 귀에 아내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고.
“전날 저녁으로 오리고기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그게 안 좋은가 보다 생각했죠.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양수가 터졌어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아이가 태어난다는 기대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양수가 터져도 ‘아기문’이 열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며 “촬영하고 와도 충분하다”고 등을 떼미는 간호사에게 밀려 촬영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아이를 볼 기대감으로 복잡했다.
“남편을 그렇게 보내고 사실 조금 겁이 나더군요. 소리도 못 지르고, 입만 악물고 있었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오시고 병원에서도 ‘힘을 좀 줘 봐라’고 했지만 아기아빠가 오기 전에는 낳을 수 없다고 고집했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아내 한복희씨의 전화를 받은 김형일은 촬영 도중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양가 어머니와 남편이 함께한 ‘가족분만’이 시작됐다.
아내의 임신 후 잦은 입원, 저체중으로 걱정하기도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친정어머니의 기도를 듣고 있었지만 남편만큼 든든한 사람은 없더라고요. 출산 내내 남편은 저를 주물러주었어요. 다음날 병실 보호자 침대에 곯아떨어진 걸 보면 나름대로 꽤 긴장하고 힘들었나 봐요.”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가 바로 딸 ‘이쁜이’(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다고). 다음날 프랑스로 보름 동안 해외 촬영을 떠나는 아빠를 보기 위해, 아빠가 없는 동안 엄마 혼자 출산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무려 4주나 먼저 태어난 ‘효녀’다.
아내 임신 후 야밤 심부름, 집안일 등으로 몸무게가 부쩍 빠진 김형일.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사실 부부는 임신 기간 내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노산에 따른 조산기가 있었던 것. 임신 5개월부터는 병원에 자주 입원해야만 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답답하고 불안했죠. 병원에서도 아기가 저체중에다 언제 나올지 모른다고 겁을 주었고. 하지만 저희 부부는 희망을 놓지 않았어요. 출산 당시 아기의 몸무게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하는 2.21㎏ 정도로 저체중이었지만 건강상태가 좋아 인큐베이터는 물론, 링거주사 한번 맞지 않고 퇴원했어요.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아기가 태어난 것을 보고 남편은 다시 촬영장으로 향했다. 기다림이 컸던 만큼 기쁨도 커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랑을 했고, 결국 ‘득녀주’를 사라는 주위의 권유에 늦게까지 술자리를 했다.
“기분 좋게 취해서 왔더군요. 한손엔 전복죽을 사들고. 그런데 그 전복죽은 다음날 아기아빠가 다 먹었어요. 술 때문에 속이 안 좋다나. 간호사들이 ‘산모와 보호자가 바뀐 것 아니에요?’하면서 놀려댔죠.”
2.21kg의 저체중아로 태어났지만 요즘 또래 아기들보다 더 건강하다. 11월14일은 아기가 태어난 지 꼭 1백일 되는 날. 가까운 친지들과 함께 아기의 건강을 빌 계획이다.
정신을 차린 남편은 오후에 프랑스로 떠났다. 몇 달 전부터 약속해놓은 일정이라 조정할 수 없었던 것. 아내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체념했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 산후조리원의 서비스가 얼마나 좋은지 복도에 출산을 축하한다는 현수막과 알록달록한 풍선이 걸려 있더군요. 제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폭죽과 케이크까지 준비되어 있는 거예요. ‘참 좋은 곳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비디오를 트시더군요. 깜짝 놀랐어요. 아기아빠가 나와 ‘고생했다. 우리 아이 잘 키우자. 사랑한다’고 하는 거예요. 미리 이벤트 회사에 준비를 시켜둔 모양이에요. 저 그날 얼마나 감동했는데요.”
그런 남편이었으니 귀국 후 아내와 아기에 대한 정성이야 오죽했을까. 평소에도 가계부를 손수 쓰고 아내와 집안일을 분담하는 등 ‘가정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는 아기가 태어난 이후 더욱 가정적으로 변했다. 촬영이 끝나면 ‘술 한잔하자’는 동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집으로 내달렸다. 그러곤 동네 어귀 시장에서 꼭 전화를 한다고. “이쁜이 엄마, 오늘 저녁 뭐 해 줄까?”
아빠 목소리로 태교, 벌써 둘째 계획?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추석을 맞았어요. 아기아빠가 장남이라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제가 산후조리 중이니 고민이었죠. 약소하게라도 준비하려고 추석 연휴 전에 퇴원을 했는데 집에 가보니 모든 제수 준비를 다 끝내놓은 거예요. 아기방도 예쁘게 꾸며 놓고요. 너무나 고마워 눈물이 났어요. 여자들은 임신과 출산 때 남편에게 많이 서운해하고 또 그런 감정이 평생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전 오히려 남편에게 더 고마움을 느꼈어요.”
아기는 아빠를 꼭 빼닮았다. 아기를 보러온 가까운 친척들은 물론, 가끔 햇볕이라도 쐬어주려고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제 아빠랑 붕어빵’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 이름을 못 지었어요. 예원, 희서, 서희, 윤서, 재희, 연우, 서현 등 ‘후보’는 많은데 아직 정하지를 못했죠. 드라마 주인공들의 이름이 많다고요? 올해 양띠 해에는 ‘서’자 들어가는 이름이 좋다고 해서 짓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하하.”
아기는 요즘 한창 옹알이를 하며 재롱을 부린다.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 배냇짓처럼 팔다리를 흔들면 방긋방긋 웃는다고.
“조산기가 있어 자주 병원에 다니느라 태교를 꾸준하게 못했어요. 대신 아빠가 나오는 방송을 보고, 라디오를 들으며 태담을 나누었죠.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 아기가 태동을 하더라고요. 아빠가 프랑스 갔을 때도 전화 통화하며 아이를 부르자 눈이 커지고 소리를 내며 웃는 거예요. 이런 말하면 ‘누가 아기엄마 아니랄까봐 벌써부터 거짓말이냐’고 하겠지만 사실인데….”
오랜 기다림 끝에 아기를 얻었지만 부부는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느끼고,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
“예쁘고 공부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은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뱃속에 있는 동안 엄마 아빠를 불안하게 만들어서인지 그냥 건강하고 성격 좋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주위 분들이 자주 물어요.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자신이 원한다면 해야죠. 엄마 아빠는 아이가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고요.”
촬영 일정이 없는 저녁 시간이면 부부가 함께 아기와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나지막이 노래도 부른다. 어느 날인가 문득 ‘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귀한 선물을 했는데 나도 뭔가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아내, “내게 줄 선물 없어?” 하고 물었더니 남편의 대답이 걸작이다.
“음, 기다려봐. 당신 몸 좀 회복되면 둘째 만들어 줄게!”
요즘 부부는 연년생으로 나아야 기를 때 편하다는 주변의 이야기에 힘입어 둘째 계획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럴 때면 딸아이도 방긋방긋 웃으며 엄마 아빠를 응원(?)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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