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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오랜만입니다

라디오 진행자로 방송 복귀한 왕영은

“남편 뒷바라지, 두 아이 키우며 야무진 주부로 살아온 16년 결혼생활 첫 공개”

■ 글·최숙영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 헤어&메이크업·美by이설희

입력 2003.10.31 10:17:00

80년대 가수, 탤런트, MC, DJ로 많은 사랑을 받은 왕영은이 10년 만에 라디오 DJ로 복귀했다. 빈틈없고 적극적인 자세, 깜찍한 외모, 상냥한 웃음까지 세월은 흘렀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다. 열성 엄마, 살림꾼 아내로 살아온 왕영은이 처음 공개한 지난 10년 결혼생활&남매 교육법.
라디오 진행자로 방송 복귀한 왕영은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말을 하려는 순간 입가의 근육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는 약간 당황하는 것 같다. 자신도 속으로 ‘천하의 왕영은이 이처럼 긴장을 하다니…’ 하고 놀라는 것 같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왕년의 모습을 되찾는다. 방송을 중단하고 평범하게 ‘주부’로 살았던 지난 10년 동안의 삶을 적절한 단어와 어휘를 사용하면서 털어놓는다. 그동안 방송은 하지 않았지만 순발력과 프로 근성, 재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한양대 재학시절 그룹‘징검다리’로 데뷔한 왕영은(43)은 81년 5월 MBC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로 방송활동을 시작해 초대 ‘뽀미 언니’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가수, 탤런트, MC, DJ로 맹활약을 하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오다 87년 중앙일보 이연홍 기자(현재 정치부장)와 결혼하고 연예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93년 SBS 일요아침드라마 ‘우리식구 열다섯’을 통해 탤런트로 복귀했으나 이듬해인 94년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끝으로 다시 활동을 접고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그런 까닭에 그의 근황에 대해 사람들이 몹시 궁금해했다.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할 때마다 왕영은은 “이제 방송을 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평범한 주부일 뿐”이라는 말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라디오 DJ로 복귀했다. 10월20일 첫방송된 KBS 라디오 ‘안녕하세요 노주현 왕영은입니다’(오전 9시5분) 진행자로 나선 것이다.
지난 10월9일 만났을 때, 왕영은은 그동안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깐깐하고 적극적인 자세, 재치있는 말투, 웃으면 반달이 되는 눈매, 상냥한 웃음까지 그대로였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현재 중학교 3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둔 학부형인데도 처녀 때처럼 몸매가 가냘펐다.
“저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닌가 봐요.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몸무게가 처녀 때와 비슷한 걸 보면요.”
그 말과 함께 짓는 웃음, 그의 눈매가 또 반달이 된다. 10년 만에 방송 복귀를 결심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방송을 중단하고 쉴 때는 좋았어요. 그동안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아이들 학교 보내면 방송에 복귀할 생각이었는데 쉬는 게 익숙해지니까 좋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쉬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이번에는 나가서 방송하기가 두려운 거예요. 방송사에서 출연 섭외가 들어오면 나를 잊지 않고 불러주는 게 고마웠지만 사양을 했죠. 그러던 차에 지난해 아는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겁을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튕기다’가는 나중에 일하고 싶을 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요. 스쳐지나가는 말이었지만 그 말은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어요.”

라디오 진행자로 방송 복귀한 왕영은

방송을 중단하고 보낸 지난 10년은 평범한 주부로 산 세월이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그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점점 해를 거듭할수록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 헛헛함도 느꼈다. 이렇게 늙는구나 싶을 때는 갑자기 인생이 쓸쓸해지고, 지금 방송을 다시 하지 않으면 더 늙어서 후회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이번에 라디오 DJ로 방송 복귀를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왕영은은 남편 이씨에게 사전에 암시를 주었다고 한다. 그동안은 연예계 활동을 반대하는 남편을 꺾을 배짱도 없고, 또 집안에 변화를 주면서까지 일하고 싶은 욕심도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반대에 주저앉고, 주저앉고 했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섭외가 들어오면 할 거다” 하고 미리 선전포고를 했고, 나중에는 “한다, 한다, 그러니까 말리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
“아이들은 반대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썩 반기지 않는 눈치였어요.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제가 방송을 했기 때문에 방송이 어떤 건지 알고 있거든요. 그때는 아침프로그램을 해서 매일 새벽에 나갔는데 아이가 눈떠보면 엄마가 없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안 좋았나 봐요. 딸은 좀 달라요. 엄마가 방송하는 것을 못 봐서 그런지 신기해해요. 전에도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아들은 ‘안한다고 그래’ 하고 남편처럼 말했지만 딸은 ‘해라, 해라’ 하면서 저를 부추겼어요. 그때마다 아들이 좀 컸다고 어른스러운 척, ‘엄마가 TV에 나가면 뭐가 좋냐, 피곤하기만 하지’라고 면박을 주었는데 그래도 엄마가 다시 방송을 시작한 것이 싫지 않은 모양이에요. 어제는 ‘엄마, 신동엽 김제동 아저씨 사인 좀 받아다주세요’라고 말하더군요. 딸은 방송에 나가면 자기 얘기를 많이 하라는 둥, 똑똑하고 예쁘다는 말도 하라는 둥 벌써부터 난리예요.”
막상 10년 만에 방송을 하려니까 마음의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CF 섭외까지 들어와 전화를 받기에도 바쁘다. 그동안 한 프로그램이라도 계속 했더라면 이토록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을 텐데 오랜만에 출연하다 보니 한꺼번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그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왕영은은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하는 자신을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볼까도 걱정되는 모양이다. 결혼한 여자연예인들이 한동안 안 나왔다가 방송에 출연하면 ‘혹시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하고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데 “나를 그런 시각으로 볼까봐 솔직히 두렵다”는 말도 털어놓았다.
“10년 동안 방송을 안해서 충전은 넘치게 한 것 같아요.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살아오지도 않았고, 그래서 제가 살아온 삶이 특별한 건 없지만, 오히려 방송을 하는 데는 그런 평범한 얘기들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제도 동네 엄마들을 만났는데 그중의 한 엄마가 하는 말이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더래요. 그래서 ‘남이 해주는 밥’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주부들이라면 그 말에 모두 공감할 거예요. 만날 식구들한테 밥을 해주는 입장이다 보니까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것이 주부들의 소원이잖아요.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저는 방송에서 할 거고요, 이를 통해서 재미와 감동을 주고 싶어요.”
오랜만에 다시 방송을 한다는 것이 한편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가슴이 설레기도 하는 것 같다. 얼굴에 생기가 돈다.
왕영은은 이번 프로그램에서 탤런트 노주현과 함께 진행을 맡게 됐는데 그하고도 인연이 깊다. 중학교 때 좋아하던 미술선생님이 바로 노주현의 누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하고 토를 달면서 그는 조심스럽게 그 시절을 떠올렸다.

라디오 진행자로 방송 복귀한 왕영은

10년 만에 방송에 복귀하게 돼서 한편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는 왕영은.


“미술선생님 성함이 ‘노숙자’이셨어요. 그때는 참 예쁜 이름이었는데 요즘은 노숙자들이 하도 많으니까 노숙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 선생님이 생각나요(웃음). 현재 화가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참 미인이셨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어느 날 노주현씨가 우리 학교를 왔어요. 당시 군인이었는데 휴가 받아서 누님을 만나려고 왔던 것 같아요. 학교가 발칵 뒤집혔지요. 당시 노주현씨는 청춘스타였거든요. 그때 저도 교정에서 보았는데 군복을 입은 모습이 멋지고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아, 저렇게 생긴 사람들이 TV에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세월이 흐른 후에 이렇게 같이 방송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인 ‘프로 주부’로 살아온 왕영은. 그는 지난 10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후딱 지나갔다고 한다. 30대 때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보낸다는 말은, 그러고 보면 맞는 것 같다. 그도 그랬으니까.
“아이들이 불쑥 자란 걸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그만큼 난 늙어가는구나…’라는 생각에 슬프기도 해요. 저는 아이들을 아무 규제 없이 키우고 싶은데,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엄마인가 봐요. 공부하라고 스트레스를 줄 때도 있거든요. 내가 너무 심했나 싶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이들한테 엄마로서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를 하기도 해요. 야단칠 일이 있으면 호되게 야단도 치는데 그럴 때마다 이 선에서 끝내야 하나, 뿌리를 뽑아야 하나, 갈등을 하죠. 저는 그러면서 아이들을 키웠어요. 고맙게도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잘 커주고 있고요.”
이제부턴 일부러라도 아이들하고 ‘거리’를 좀 두려고 한다. 아이들 옆에 엄마가 꼭 붙어 있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외출을 했다가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허겁지겁 집에 왔고 오후시간은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서 썼다.
그게 아이들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하루는 아들이 “우리 엄마는 집에 너무 붙어 있어요”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말에 그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곧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제 더 이상 일일이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동안 두 아이를 키우면서 자식에 대해서 조금씩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 성적에 욕심을 내지만 그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서울대를 나왔다고 다 출세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겠지만 반드시 사회적으로 보장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아요. 딸아이는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키운 것 같은데 아들은 그렇치가 못했어요. 첫아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여자아이지만 남자아이 같은 면이 더 많다고 한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고집도 셀 뿐 아니라 개성도 강하다.
왕영은은 그런 딸이 미술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1년간 가르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다. 아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부담이 됐는지 미술을 한 뒤로는 키가 안 크고 머리도 아프다고 자주 호소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림은 커서도 그릴 수가 있지만 키는 성장기에 안 크면 영영 안 크기 때문에 미술을 그만두게 하고, 대신 체력을 키워주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한다. 덕분에 딸은 농구도 잘하고 인라인스케이트도 잘 타고 못하는 운동이 없다.

라디오 진행자로 방송 복귀한 왕영은

반면에 아들은 영락없는 ‘범생이’ 스타일이라서 딸아이만큼 활달하진 못하지만 사고의 폭이 넓고 진지할 뿐 아니라 성격도 좋아서 친구들도 많은 편이다. 운동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아서 이번 겨울방학에는 취미삼아 할 수 있는 운동을 가르칠 계획이라고 한다.
“‘‘뽀뽀뽀’를 진행했던 솜씨로 아이들도 그렇게 키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는 그렇게 키울 수가 없잖아요. 입시제도도 그렇고 아이들에게 정서교육을 시키고 싶어도 그럴 여건이 안되니까 시간이 나면 가족끼리 여행을 가고, 시험이 끝나면 영화 구경을 가는 게 전부예요. 아들은 이제 좀 컸다고 친구들끼리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하는데 저는 아들 친구들도 다 오라고 해서 같이 가요. 엄마랑 같이 가는 게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가족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게 해주고 싶어서죠. 어차피 크면 곁을 떠날 테니까요.”

급한 성격 탓에 자주 토닥거리지만 5분을 못 넘기고 화해하는 부부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속상해할 때면 남편 이연홍씨는 아이들 때문에 너무 힘 빼지 말라고, 결국 나이 들면 우리 둘이 남는 것이라고 위로를 해준다.
그렇다고 그가 아이들에게 무심한 아빠는 아니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아이들과 같이 보내는 남편은 골프도 안 치는 이유가 “지금도 바쁜데 골프까지 치면 아이들 얼굴조차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 정도로 아이들을 끔찍이 여기지만 남편은 언제나 왕영은의 편이다.
“제가 특별히 남편한테 내조를 해주는 건 없어요. 워낙 자기 일을 알아서 잘하니까요. 남편은 술이 암만 취해서 들어와도 옷걸이에다 옷을 딱 걸어놓고 자는 사람이에요. 밖에서 일이 많아도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집에다 전화를 하고, 기자라는 직업이 늦게 집에 들어오는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밤 12시 넘어 들어온 적이 없어요. 남편이 그러는데 자기 별명이 ‘남자 신데렐라’래요. 술을 마시다가도 밤 12시가 되어 ‘땡!’ 치면 화들짝 놀라서 집에 가니까 사람들이 그런 별명을 지어주었나 봐요. 저는 전적으로 남편한테 의지하면서 살아요. 시시콜콜히 다 얘기하고, 심지어 아이들 학원에 보내는 문제까지 상의를 하니까, 다른 집 남자들에 비해 집안일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을 거예요.”
남편하고 나란히 누워 있다가도 왕영은은 벌떡 일어나서 “우리, 사이 좋은 거지?” 하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남편은 “그러엄~ 우리보다 사이 좋은 부부 나와 보라고 해” 하고 답하는 ‘닭살’ 부부라고 한다.
“우리는 둘다 편안하게 살아요. 성격이 급해서 자주 토닥거리지만 싸우고 난 후에도 5분을 못 넘겨요. 한번 타다닥 말다툼을 하고 나면 금방 화해를 하거든요. 싸운 뒤에 남편이 뚱하니 있으면 내가 먼저 ‘자기야~’하고 말을 붙일 텐데 남편이 나보다 성격이 더 급하다 보니까 ‘ 커피 한잔 하자’며 말을 먼저 걸어와요. 시어머니는 그런 우리를 보고 ‘닭싸움한다’고 그러세요 ‘니네는 속도 없냐? 싸웠다가 금방 화해하게’ 그런 말도 하시죠. 우리는 남부럽지 않게(?) 다투지만 16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크게 부부싸움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라디오 진행자로 방송 복귀한 왕영은

전적으로 남편한테 의지하면서 산다는 왕영은. 16년 결혼생활에 불만이 없었기 때문에 방송을 쉬고 살림만 했을 때도 행복했다고 한다.


항간에는 “왕영은 남편이 정치에 뜻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 얘기는 올봄 이연홍씨가 중앙일보 정치부장으로 승진하면서 더욱 불거졌다.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손사래부터 친다.
“우리는 평범하게 소시민으로 살아가기를 원해요. 큰 욕심이 없어요. 요란하지 않게 잔잔하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남편도 자기 소원이 ‘빨리 늙었으면…’ 하는 거래요. 아이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나중에 늙으면 우리 같이 제주도에 가서 살자는 말도 해요. ‘제주도에 가서 뭐하면서 살 거냐?’고 내가 물으면 자기가 나의 운전기사를 해주겠대요. 슈퍼에 갈 때도 둘이서 같이 손잡고 가고 제가 물건 사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겠다면서요. 그렇게 남편은 평범하게 살고 싶어해요.”
자상한 남편 때문일까. 지난 10년 동안 방송을 안할 수 있었던 것도 결혼생활에 불만을 못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잔잔하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 남편은 나이 들면 제주도에서 살재요”
“답답함은 별로 못 느꼈어요. 사람들은 나보고 ‘천하의 왕영은’이라고 말했지만 제가 의외로 고지식해서 그런지 새로운 세상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는 편이에요.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살림하는 것과 방송하는 것밖에는 없어서 방송을 안했던 지난 10년 동안에도 특별히 한 일이 없어요.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포크아트를 조금 배운 것하고 영어회화학원을 다닌 것밖에는요. 요즘은 그나마 동네 엄마들하고 많이 친해졌지만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한달에 한두 번 정도 학부형 모임이 있을 때만 옷을 차려 입고 나가는 것이 고작이었어요. 그래도 살림하는 게 좋았어요.”
하지만 이제 방송을 시작한 이상 라디오 DJ로 잘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고 한다. 그동안 주부로 살면서 느꼈던 점을 방송에서 풀어놓으며 거창하지는 않지만 정감 있고 따뜻하면서도 편안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각오도 단단히 하고 있다. 어쩌면 그는 지금 ‘주부’에서 다시 ‘천하의 왕영은’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 아줌마들이 그러는데 40대가 가장 좋은 때래요. 30대 때는 아이 키우라고 정신없이 지나가고 50대 때는 아이들의 미래 사돈을 의식해서 행동거지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자유롭지가 않대요. 이에 비해 40대 때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서 좋다는 거예요. 저도 그 말이 조금씩 실감이 되는데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 다시 방송을 하게 돼서 기뻐요. 앞으로 열심히 할 테니까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왕영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기 스타로 살건, 평범한 주부로 살건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는 여자, 왕영은은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늦가을의 햇살 속으로 경쾌하게 퍼져나갔다.

여성동아 2003년 11월 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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