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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부부가 사는 법

억대 연봉의 CEO 그만두고 심심산골에 북 & 베이커리 카페 연 김종헌·이형숙 부부

■ 글·이승희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10.10 18:21:00

한국의 대표적인 속옷업체인 (주)남영L&F(구 비비안) 사장이었던 김종헌씨.
그가 지난 8월초 억대 연봉의 CEO 자리를 박차고 아내와 함께 강원도 홍천의 산골짜기에 북&베이커리 카페인 ‘Peace of Mind’를 차려 화제다.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함께 지내고, 아내는 늦게 배운 제빵 기술을 살려 빵을 굽는 부부의 평화로운 삶.
억대 연봉의 CEO 그만두고 심심산골에 북 & 베이커리 카페 연 김종헌·이형숙 부부

북&베이커리 카페인 ‘Peace of Mind’는 강원도 홍천 공작산 자락에 있다. 공작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찻집 어디에 앉아도 날개를 펼친 듯 겹겹의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아홉겹까지 보인다는 경치가 그야말로 절경이다.
더구나 카페가 3만평이나 되는 허브동산 안에 있어서 카페에 오르다 보면 허브향이 몸에 밸 정도다. 계곡 입구에 핀 보라색 라벤더를 시작으로 눈 닿는 곳 어디든 허브 천지다. 가을비에 젖은 꽃들은 절정의 향을 보태고 있었다.
그뿐인가? 찻집 안은 오래 된 책들이 내뿜는 그윽한 향기로 가득했다. 목판본 부터 금속활자본 춘향전 딱지본인 까지 빼곡하게 찬 고서들은 제니스 라디오, 축음기, 타자기 등 손때 묻은 골동품과 어울려 옛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문을 연 지 한달 정도 되었다는 이곳은 마치 편안하고 넓은 응접실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씨 부부가 서울 집에서 쓰던 소파며 식탁, 책장까지 고스란히 옮겨왔기 때문이다.
“우린 그냥 서재를 넓힌 것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이 찾아오면 차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고, 혼자 있을 때는 쉬기도 하고 책도 읽는, 그런 공간이요. 이제 서재를 사람들에게 오픈했으니 더 많은 사람들과 그런 행복을 나눠야겠지요.”
김종헌씨(56)는 종로 토박이다. 종로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도 모두 종로에서 다녔다. 중학교 때 그는 종로5가 집에서 신문로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다녔는데, 다리가 아프면 잠시 쉬어가는 장소로 서점을 택했다고 한다. 당시 종로3가 단성사 부근에 있던 서점 세창서관이 그의 쉼터였다.
“처음엔 천자문이었지요. 그걸 떼고는 동몽선습, 계몽편, 소학도 읽고 나중엔 당나라 시까지 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서에 눈이 많이 갔지요. 어느날 고서점에서 삽화가 그려진 를 찾아냈는데 그때 기쁨은 말로 다 못합니다.”
용돈을 받으면 받는 대로 책을 사거나 음반을 사들였다. 아직도 그는 바둑이나 당구는 물론 화투에도 문외한이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글씨(서예)를 쓰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이들 부부가 이런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맘먹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여년 전부터 준비해온 꿈이라고 한다.
이 일을 하기 전까지 그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속옷업체인 비비안(현재 (주)남영L&F)의 사장이었다. 80년대 초 독일 뒤셀도르프의 지사장으로 있으면서 그곳에서도 고서들을 찾아다녔는데, 오래된 성(城)의 레스토랑들 가운데 성주가 쓰던 서재를 리노베이션한 곳을 보고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하루 착실하게 준비를 해온 것이다.
그렇게 20여년을 준비한 후 ‘북카페를 내기 위해’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제출했다. 집도 미리 내놓았다. 그런 다음, 좋은 장소를 고르기 위해 여러 곳을 답사하다 이곳 공작산 풍경에 취해 정착을 했다고 한다.
김씨가 지금까지 모은 고서는 1만여권에 이른다. 그 고서들 속에는 우리나라 10대 미서(美書)의 하나로 꼽히는 금속활자본 도 있다.
“독일 지사장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서는 국내 지점장을 맡았습니다. 지방 출장이 잦았는데, 일이 끝나면 곧장 그 지방의 고서점을 찾아다녔습니다. 서점 주인들은 저를 좋아했지요. 절대 책값을 깎지 않으니까요.”
고서들 외에도 그들의 찻집에는 귀한 것들이 많다. 그림이며, 글씨, 음반 등 눈길 닿는 곳 어디든 볼거리가 있다. 여기저기 놓여 있는 작품들을 진지하게 소개하던 그가, 투박한 토기 앞에서 갑자기 환한 얼굴로 바뀌었다.
“저는 저런 걸 좋아합니다. 반짝거리며 빛나지 않고 모든 빛을 흡수하지요. 울퉁불퉁 못생겼지만 저는 그게 무척 좋습니다. 아주 듬직하고 푸근하잖아요.”
그가 손끝으로 가리킨 책장 위에는 세월의 더께를 초월한 듯 의젓한 토기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가 왜 고서 수집에 몰두했는지, 헐고 낡은 것들을 왜 닦아주고 안아주는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억대 연봉의 CEO 그만두고 심심산골에 북 & 베이커리 카페 연 김종헌·이형숙 부부

남편 김씨가 치열한 열정을 꼿꼿하게 지켜내는 데는 아내 이형숙씨(51)의 협조가 컸다. 그는 남편이 그 많은 고서를 수집하는 동안 책값을 물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생활에 여유가 있어서도 관심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남편을 믿었고 남편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그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이씨는 쉰하나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남편과 대화할 때도 손님을 맞이할 때도 그는 항상 같은 표정, 같은 말씨였다. 남편 김씨는 아내가 화를 내는 일도 큰소리를 내는 법도 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에 이씨는 활짝 웃었다.
“서로 부딪칠 일이 생기면 나를 빼고 융화하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어머니를 떠올려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지요. 어머니 얼굴에서 한번도 찡그린 표정을 보지 못했어요. 살아계신 동안 동네 어려운 노인들을 가족처럼 거두셨어요. 어머니는 제 삶의 모델이셨죠.”
부인 이씨는 지금 남편에게 주급을 받는다고 한다. 월급을 통째로 주면 어려운 사람을 만나 주머니에 있는 대로 도와주고 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린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하며 웃는 그는 ‘선한 끝은 있다’는 옛말을 믿는다고 했다. 내가 조금 덜 먹고 나누고, 불편한 건 참고 나면 기쁨이 온다는 것이다.
그가 빵을 굽게 된 건 남편을 따라 독일에 가면서부터다. 남편 회사의 직원에게 물었더니 자기가 들르는 단골집이라며 뒤셀도르프에 있는 ‘헤라클레스’라는 빵집을 알려줬다. 그는 거기에서 빵굽기 도제수업에 들어갔다. 빵집에서는 키 작은 동양여성이 독일 빵을 배우겠다고 하자 반가워하며 선뜻 응해줬다.
처음엔 설거지와 파이에 들어갈 사과를 깎는 게 수업의 전부였다. 거기다 금요일엔 ‘출근금지’ 부탁을 받기도 했다. 손님이 너무 많아 오히려 거추장스럽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묵묵히 일을 했고 이내 야무진 솜씨에 반한 주인은 금요일에도 나와달라는 ‘출근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취미삼아 빵 만들기에 뛰어들었던 그는 내친 김에 미국으로 건너가 A.I.B(American Institute of Baking Science & Technology) 코스를 졸업했다. 그리고 윌튼 데코레이션 스쿨에서 케이크 데코레이션과 슈가 아트 과정도 공부했다.
억대 연봉의 CEO 그만두고 심심산골에 북 & 베이커리 카페 연 김종헌·이형숙 부부

함께 빵을 구우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김씨 부부.


지금은 여러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반가(班家) 상차림과 전통 떡, 한과 연구자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곳 홍천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는 ‘허브를 이용한 건강 빵과 건강 떡’ 만들기에 더 분주해졌다. 찻집 이름이 ‘이형숙 허브빵+떡 연구소’인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새벽 4시. 이들 부부는 일어나 108배를 하고 경을 읽고 참선을 한다. 그리고 아침해가 뜨기도 전에 허브동산 속 ‘Peace of Mind’로 출근한다. 아내가 바구니를 들고 싱그러운 허브 잎과 꽃들을 따는 사이 남편은 창문을 열고 정갈한 숲의 향과 허브향을 카페 안으로 들여놓는다. 그리고 밤새 쌓인 책먼지를 털어낸다. 아내의 바구니에 들꽃과 허브잎이 가득해지고 찻집 안에 향이 스며들면 부부는 마주 앉아 차를 마신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 순간이다.(홈페이지 www.peaceofmind.co.kr)

여성동아 2003년 10월 4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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