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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가슴 아픈 사연

부친상 당한 탤런트 ‘인어아가씨’ 최재호의 애틋한 사부곡

■ 글·최숙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9.04 18:38:00

MBC ‘인어아가씨’에서 이재은의 상대역인 안형선 PD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던 탤런트 최재호가 부친상을 당했다. 가족들이 이민을 가고 연예활동을 하느라 국내에 혼자 남았던 최재호는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장례를 치르면서 그가 흘린 눈물 & 부친상을 당한 이후 달라진 요즘 생활.
부친상 당한 탤런트 ‘인어아가씨’ 최재호의 애틋한 사부곡

‘호사다마’ 라는 말이 있잖아요. 데뷔 10년 만에 ‘인어아가씨’로 주목 받고 연기자로 보람을 느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살아계셨을 때 잘해드리는 건데 효도 한번 못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게 가슴이 아프네요.”
최재호(37)는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말하는 도중에도 말 끝을 흐리며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버지 최시웅씨(74)는 지난 6월30일 미국 볼티모어 자택을 떠나 새크라멘토를 여행하던 중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져 혼수 상태에 빠진 뒤 7월2일 세상을 떠났다. 미국으로 이민 간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국내에 남았던 그는, 결국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7월1일 새벽에 미국에 있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거예요. 그렇찮아도 3년 전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빨리 응급처치를 해서 회생하실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또 쓰러지신 거예요. 7월2일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다음날 미국행 비행기를 탔죠.”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막상 비행기에 몸을 싣고 보니까 아버지의 죽음이 가슴에 와 닿더라고 한다. 순간 뼈저린 회한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지금도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아버지가 쓰러지기 4~5일 전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어머니하고만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은 일이다. 아버지하고 통화를 하면 “빨리 정신 차리고 미국으로 들어와서 동생이랑 사업을 하라”고 호통을 칠까봐 그랬다는 것이다. 국내에 혼자 남아 연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이 아버지의 눈에는 탐탁치 않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때는 아버지의 호통과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빨리 전화를 끊었던 건데 이제와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고 한다. ‘그때 왜 그랬을까… 아버지하고 통화를 했더라면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데…’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듯이 아프다고 한다.

부친상 당한 탤런트 ‘인어아가씨’ 최재호의 애틋한 사부곡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미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학교에 다닐 때도 제가 말썽을 피워서 아버지 속을 썩여드렸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아버지는 저한테 손찌검 한번 하지 않았죠. 가족들이 이민간 뒤 서울에 혼자 남은 저는 86년 대학에 들어갔고 같은해 MBC 공채 17기 탤런트 시험에 합격을 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했어요. 톱스타의 꿈을 안고 뛰어들었지만 조연생활만 하게 되자 좌절을 느꼈던 거죠. 그래서 한국 생활을 접고 이민간 가족들을 따라 미국에 갔는데 그때도 아버지는 저를 야단치지 않으셨어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조언만 해주셨죠.”
미국에 간지 일주일만에 집을 나온 그는, 곧바로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거기서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인의 소개로 카지노에 입사하고 2년6개월 동안 딜러로 일하다가 프로도박사로 전업을 했는데 2년 뒤 프로도박사의 생활에도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그만두고 잠시 여행차 한국에 들렀는데 우연찮게도 ‘모래시계’의 출연제의를 받게 됐다고 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서 본격적으로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운은 따르지 않았다. 연기자 생활을 위해 영주권도 포기했지만 그해 IMF가 터지는 바람에 생활하기조차 힘들었다. 방송국에서 경비 절감의 차원에서 출연료를 삭감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도 아버지가 미국에서 생활비를 송금해주셨다”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니까 잘 못해드린 것만 생각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장남인데도 장남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요. 연기자로 좀더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면 부모님을 모시고 살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그럴 기회도 없어진 셈이네요. 그래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 하라는 말이 있나봐요. 그나마 ‘인어아가씨’로 제가 자리잡은 모습을 아버지가 보시고 돌아가셔서 다행인 것 같아요. 저 세상에 가서도 제 걱정은 이제 안 하실 것 아니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잘 못 느꼈는데 이제는 조심하게 되고 장남으로서의 책임감도 뼈저리게 느낀다고 한다. 혼자가 되신 어머니한테도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 동생들은 모두 결혼했지만, 그래도 잘 챙겨줘야겠다는 마음도 생긴다고.
최재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한달간 미국 집에 머물다가 8월1일 귀국했다. 이제는 작은 역할이라도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어떤 굳은 의지 같은 것이 엿보였다.
“지금도 매일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게 나요. 꼭 살아계시는 것만 같고 미국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장례까지 치르고 돌아왔는데도 아버지의 죽음이 완전히 실감나지 않지만, 살아 생전에 아버지가 제게 해주셨던 말을 교훈으로 삼아 열심히 살 거예요. 이제는 후회없는 삶을 살 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최재호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지만 어느새 그의 눈가가 붉어지고 있었다.

여성동아 2003년 9월 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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