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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시트콤처럼 사는 부부

미국인 남편에게 한국말 가르치며 겪은 ‘엽기 체험’책으로 펴낸 재미교포 니나

“남편은 우리 이야기가 ‘엽기적인 그녀’처럼 영화로 만들어지는 줄 알고 좋아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3.08.29 16:51:00

13년 전 미국으로 유학간 니나는 일본계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재미교포.
영화배우 지망생인 남편은 한국말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개의 엽기적인 한국말을 만들어내는 ‘한국말 제조기’.
최근 인터넷상에 시트콤 같은 니나와 폴의 유머러스한 한국말 레슨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인터넷 작가 니나와 만나 이들 부부의 알콩달콩 한국말 레슨 노하우를 들어보았다.
미국인 남편에게 한국말 가르치며 겪은 ‘엽기 체험’책으로 펴낸 재미교포 니나

“렐콜릴리(얼레리꼴레리)∼ 왕엉덩기쑤니(왕엉덩이순이)∼”최근 ‘니나와 폴의 한국말 레슨’이란 책을 펴낸 인터넷 작가 니나(29)는 미국인 남편 폴(27)과 결혼한 재미교포로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니나와 폴의…’은 그가 남편을 상대로 시작한 재기발랄한 한국말 레슨 과정을 담은 책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니나랑 폴이랑’(cafe.daum.net/ ninapaul)에 직접 연재하던 글들이다. 네티즌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책으로까지 출간된 것.
“남편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줬더니 대뜸 제 별명부터 짓더군요. 제 별명은 ‘왕엉덩기쑤니’인데요. 남편이 크다는 의미의 ‘왕’과 여자를 칭하는 ‘순이’를 제멋대로 조합해 매일 저를 ‘왕엉덩기쑤니’라고 놀려대요.”
지난해 3월 인터넷에 문을 연 카페 ‘니나랑 폴이랑’의 회원수는 현재 약 3만6천명. 남편의 한국말 레슨 과정을 실은 ‘읽어줘요∼ 니나얘기’ 코너의 게시물 평균 조회수가 2만회를 육박할 정도로 외국인 남편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니나의 시트콤 같은 이야기는 네티즌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원래 인터넷 한 유머 사이트에 ‘외국인 남편에게 한국말 가르치기’라는 제목을 달고 한국과 미국이라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올려놓았는데 회원들의 반응이 좋아서 올리는 글마다 히트를 치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카페를 새로 만들어 남편을 상대로 한 한국말 레슨 과정에서 일어난 재미난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리게 되었죠.”

조교로 일하다 학생인 남편 보고 ‘찜’해서 결혼해
니나가 13년 전, 미국 유학을 결행할 당시만 해도 그의 꿈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다 보니 자신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에는 재능과 끈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과감하게 피아노 뚜껑을 덮고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워싱톤주립대학에서 저는 조교, 남편은 학생으로 처음 만났어요. 저는 똑똑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남편의 첫인상은 그렇지가 못해서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죠. 남편이 매일 럭비를 하느라 옷에 진흙을 묻히고 다니니까 공부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꽤 공부를 잘하더라고요. 제가 찍었죠. 데이트 신청도 먼저 했고요.”
지난 98년에 만난 니나와 폴은 2년의 열애 끝에 결혼, 폴의 고향인 하와이에서 일본인 시아버지, 미국인 시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 둘만의 공간을 꾸몄다.
“폴과 첫 데이트할 때부터 ‘가나다’를 가르쳤는데 제법 잘해요. 외우기, 쓰기는 물론 나름대로 응용도 잘해요. ‘코끼리’라는 단어가 코끼리가 코가 크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저를 ‘엉덩기키리’라고 부르질 않나, ‘ㄱ’과 ‘ㅋ’ 발음을 구별하지 못해서 농구공을 ‘농구콩’, ‘공주’를 ‘콩주’, 심지어 ‘곰’도 ‘콤’이라고 발음해요.”
니나의 남편 폴은 한국말이라면 뭐든지 ‘콩’만 붙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있고, 하루에 한개씩 니나의 별명을 늘려가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얻게 된 니나의 별명은 엉덩기키리를 비롯해 ‘놀푸(놀부)’ ‘왕첨쑤니(왕점순이)’ ‘진덩기(진드기)’ 등 다양하다.

미국인 남편에게 한국말 가르치며 겪은 ‘엽기 체험’책으로 펴낸 재미교포 니나

미국에서 만나 결혼한 폴과 니나 부부.


“미국에서 드라마 ‘올인’을 보는데 탤런트 이병헌이 화투치는 장면이 나오니까 갑자기 남편이 ‘캉하구 벨트하고 동물이 높아. 다른 거는 점수가 없어’ 그러는 거예요. ‘캉’은 ‘광’을, ‘벨트’는 ‘띠’를 말하는데 순간 깜짝 놀랐죠. 남편이 도박 천재가 아닌가 싶어서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친정어머니가 저 몰래 남편에게 민화투를 가르쳤더라고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장모의 지도편달을 받은 폴은 민화투를 통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인터넷 고스톱에 도전하는 ‘타짜’가 되어가고 있다.
“제가 며칠 전에 고스톱을 치려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로그인을 해보니까 돈이 67만원이 있는 거예요. 제가 분명히 돈을 다 잃어서 겨우 20만원 충전해 놓고 나갔는데 말이죠. 알고 보니 남편이 제 어깨너머로 고스톱을 배웠더라고요. 이젠 인터넷에서 좀 배웠다고 스승인 저를 무시하고 교만함이 하늘을 찌를 정도죠. 제가 인터넷 고스톱을 치려고 하면 뒤에 서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요.”

장모에게 민화투 배워 고스톱까지 치는 남편 폴
폴은 영화배우 지망생으로 행인, 전쟁터의 군인 등 다양한 엑스트라로 영화배우 경력을 쌓아가고 있고, 간혹 잡지 광고 모델로도 활동한다.
“인터넷에서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제 남편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요. 미국인인데다 영화배우라고 하니까 10∼20대층의 젊은 회원들이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죠. 팬들로부터 하루 평균 20통의 이메일을 받는데, 젊은 여성들은 ‘외국인 남자와 결혼에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궁금해해요. 심지어 어떤 여성은 자기 사진을 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얼굴이 미국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얼굴인가 아닌가 봐달라는 엉뚱한 부탁을 하기도 해요.”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니나와 폴의 한국말 레슨은 네티즌들의 감성에 맞는 웃음의 소재일 뿐만 아니라 국제결혼에 대한 환상도 덤으로 퍼뜨리면서 ‘니나 신드롬’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니나 자신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외국인 남자와 결혼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사실 미국에서도 미국 남자와 결혼할 작정을 하고 어학원에 다니는 한국 여성들이 더러 있어요. 외국인들은 그런 여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특수한 상황에 대한 호기심은 그냥 호기심으로 그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니나는 한국 여성들이 국제결혼뿐만 아니라 재미교포에 대한 환상도 버렸으면 좋겠다고 충고한다.
“재미교포 남성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십수년 전 한국을 떠나올 때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한국사회가 빨리 변모하는데 비해서 미국에 사는 한국 남성들은 오히려 더 변화하지 않아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죠.”
국제결혼을 선택한 니나인 만큼 한국의 결혼제도에 대해 못 마땅한 점도 많은 모양이다.
“외국에 살면서 외국 남자들과 한국 남자들을 비교해보면 한국남자들의 외모나 매너가 다른 나라 남자들한테 결코 뒤지지 않아요. 외국 여성들에게 한국 남자들 인기가 많거든요. 그런데 한국 남자들은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가면 비합리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결혼 시스템에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미국인 남편에게 한국말 가르치며 겪은 ‘엽기 체험’책으로 펴낸 재미교포 니나

니나의 시집 식구들. 니나는 시집에 살 때 시아버지부터 남편까지 돌아가며 설거지를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니나는 남편 폴과 사랑싸움을 할지언정 가사분담을 놓고 부부싸움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한다.
“제가 밥을 하면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남편이 빨래를 하면 저는 그 시간에 집안 청소를 해요. 결혼하고 1년 넘게 하와이에 있는 시댁에서 살 때는 제가 1주일에 딱 한번만 밥을 했어요. 하루는 시아버지가 밥을 하고 또 하루는 시어머니가, 그리고 그 다음날은 남편, 시누이, 저 이런 순서대로 집안일을 공평하게 분담했거든요. 그러니까 고부갈등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죠.”
니나의 주변에서는 국제결혼을 놓고 문화적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의견이 분분했다지만 정작 니나는 다국적인 시댁 문화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합리성’을 일찌감치 터득하고 나름의 질서를 잡아갔다고 한다.
“남편은 책에 자기 이야기가 멋있게 소개되는 줄 알고 영화 ‘엽기적인 그녀’처럼 저희 부부의 이야기가 영화화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 글을 보고 사람들이 많이 웃어주면 그것 자체로 만족할 뿐이에요.”
인터넷이 작가로 데뷔하는 쉽고 빠른 통로가 된 시대. 니나는 “저마저 ‘귀여니 신드롬’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이 되지만 앞으로 좀더 진지한 자세로 소설 창작에 도전하면서 작가의 영역을 넓히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여성동아 2003년 9월 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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