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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아들과 살아온 지난 10여년 털어놓은 ‘엄마의 일기’작가 허순봉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든 게 미안해 과잉반응하며 키운 아들에게 이제 ‘잘 자라줘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 기획·이한경 기자 ■ 글·조은주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3.08.08 14:34:00

부부 3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하는 세상이라지만 이혼은 여전히 어려운 결정이다. 이혼을 실패로 생각하는 세상의 잣대 때문이다.
최근 동화작가 허순봉씨가 펴낸 ‘엄마의 일기’는 90년 이혼하고 아들과 단둘이 살아온 지난날을 솔직히 담아낸 자전적인 동화책. 사회적인 편견의 당사자로 살아온 그가 되돌아본 지난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이혼 후 아들과 살아온 지난 10여년 털어놓은 ‘엄마의 일기’작가 허순봉

이혼할 때는 모든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허순봉씨.


‘아,쌤통이다’ ‘수지는 멋쟁이’ ‘넌 너무 엉뚱해’ 등의 작품을 쓴 동화작가 허순봉씨(47). 최근 그는 어느날 이혼을 하면서 사회적인 편견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이야기를 동화로 엮은 책 ‘엄마의 일기’를 펴냈다.
엄마는 매일 늦잠만 자고 아들의 운동회날 도시락도 안 싸주며 걸핏하면 빨래를 삶다가 태워 먹는다. 아이들 싸움에 흥분하여 ‘정의사회 구현’을 외쳐대는 엄마, 오래된 세탁기를 끌고 나가 결국 강냉이로 바꿔오는 아들. 엄마와 아들이 티격태격 살아가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지만 가슴 찡한 여운을 남긴다.
“오랫동안 망설였어요. 원고 청탁을 받고 그간 써온 일기들을 훑어보고 정리하다가 덮어버린 적도 많았지요. 솔직해야 하는데 내가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잖아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문을 여는 그의 목소리에서 만만치 않았을 지난 시간들의 무게가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뭘 모르는 너무 이른 나이의 결혼이었다. 대학 졸업과 함께 여덟살 많은 남편과 시작한 결혼생활.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남편의 경제력을 믿고 살림만 하며 살기엔 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결혼 전엔 남편 말만 믿고 남편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결혼하고 나서 우스갯소리로 ‘서로 속았다’는 얘기를 하곤 했죠.”
시작부터 위태로웠다. 어쩌면 상대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이 필요했던 그에게 다행히 기회가 쉽게 찾아왔다. KBS 작가 연수생 1기로 시작한 코미디 방송작가 생활. 일은 재미있었고 벌이도 좋았다. 하지만 그가 일에 몰두할수록 남편과의 갈등은 깊어졌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부부간의 갈등은 점점 커졌다. 도박 빚은 갚아도 끝이 없었고 그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이혼을 결심했다.

남편 도박 빚 감당 못해 결혼 10년 만에 이혼 결정
“이혼할 당시엔 모든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에게도 책임은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가 자신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게다가 아내라는 사람이 매일 원고 쓴다고 집안 일엔 신경도 안 쓰고…. 지금이었다면 그렇게 상황을 악화시키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죠. 하지만 그때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엔 너무 어리고 여유가 없었어요.”
그가 이혼하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홀가분함이었다고 한다. 더는 빚 독촉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잘못하는 게 없으면 잘못될 게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혼 후 아들과 살아온 지난 10여년 털어놓은 ‘엄마의 일기’작가 허순봉

그는 아들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방황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 준이를 생각하면 이기적인 선택이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앞으로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 외롭고 힘들지도 모른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식을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든 것이 아들에게 미안하고 자존심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어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색을 안한 건지 다행히 아빠와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걱정한 것보다는 아들이 순순히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해서 아들과 함께 인천에서 13평짜리 한 철거민 아파트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아들을 위해,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듯한 낡은 아파트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일을 했다. 다행히 어린이물 만화 의뢰가 계속 들어와 생활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어찌 보면 행운이지요. 이혼 후에 가장 큰 문제가 생계문제, 자식문제인데 저는 다행히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워낙 낙천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일이 계속 들어왔으니까요. 제가 낸 책 중엔 어린이 만화물이 많아요. 생계문제 때문에 동화보단 만화물을 더 많이 써온 거죠. 결혼하고 나서 시작한 8년 정도의 코미디 방송작가 생활이 만화나 동화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러나 만화든, 동화든 글을 써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했다. 그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일의 연속이었다.
“이혼 후에 나 자신과 결심한 것이 있었어요. 내가 당당해져야 한다고,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선 엄마가 반듯해야 한다고요.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더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그런 생각을 그는 어린 아들에게도 끊임없이 얘기했다. 세뇌시키듯이. 이혼했다는 사실이 자랑일 수는 없지만 불행이거나 좌절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위축되거나 부끄러워한다면 아이도 그럴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아빠가 없어도 당당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과 아들에게 끊임없이 되뇌며 살았다.
다행히 그의 아들은 엄마가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데도 착하고 씩씩하게 잘 커주었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아빠가 있는 다른 아이들 못지않게 잘해줘야 된다는 생각에서 물질적인 것들로 보상해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반성도 많이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과잉반응을 많이 보였어요.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일에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항상 있으니까 오히려 화를 내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그 모든 걸 잘 참고 자라준 아들이 고마워요.”

“이혼하고 혼자 사는 건 이혼하지 않고 사는 것만큼이나 힘들어요”
언제부터인가 엄마와 아들 사이에는 아빠에 대한 얘기는 하면 안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마치 금기사항처럼. 그렇지만 아비와 아들의 질긴 핏줄의 연이 드러내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혼 후에도 전 남편을 계속 만났어요. 어쨌든 아들을 함께 낳은 부모니까요. 사실 아들을 위해 재결합해보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친아버지만큼 아들을 사랑하고 마음 써줄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요? 제게 말은 안했지만 아들도 아빠와 함께 살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힘들더라고요. 도박이라는 게 그래서 무서운 거죠.”
하지만 이제 그 남편은 없다.
“전남편이 죽고 나서 아들이 처음으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빠가 돌아가시니까 차라리 더 편하다고.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이나 학교에서 ‘아빠가 뭐하시냐’고 물어볼 때 가장 힘들었는데 이젠 그냥 돌아가셨다고 얘기하면 된다면서요.”
내내 담담하게 얘기하던 그의 눈이 붉어졌다. 말하지 않는다고, 표 내지 않는다고 자식의 아픔을 모르는 어미가 어디 있으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자식의 아픔은 여전히 아물지 않는 어미의 생채기인 것이다.

사춘기였을까? 잘 자라주던 그의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어긋나는 모습을 보였다. 학교 공부에는 도대체 관심을 갖지 않고 놀기만 하려고 했다. 엄하게 야단쳐줄 아빠도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아들에게 신경도 써주지 못하고 일만 해온 엄마로서는 아들을 바로잡아줄 방법이 없었다. “엄마가 너무 똑똑해서 싫다”고 말하는 아들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지금껏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써왔던 것이 오히려 아들에겐 반발심을 갖게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아들은 친구들과 가출도 했다. 그리고 가출은 곧 자퇴로 이어졌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아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아들을 보면서도 마음속엔 항상 아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믿는 만큼 아이들은 커준다고 했던가? 다행히 아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만둔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대학에도 진학했다.
“이제는 좀 편하게 지난 날을 돌아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고 걱정하던 아들도 잘 자라주었으니까요. 그러나 여전히 아들을 생각하면 후회와 반성이 많아요. 제가 아들을 다른 방식으로 대했다면 아들이나 저나 훨씬 편하고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무리 부모가 바란다고 해도 아이들에겐 아이들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들이 있다고 했던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욕심과 바람이 아니라 믿음과 애정에서 우러나는 관심이어야 한다는 걸 부모들은 알면서도 자꾸만 잊어버린다. 어쩌면 지금 아들의 모습이 결코 그가 원했던 아들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아들이 원하고 행복해한다면 이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정은 지킬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이혼이 해결책은 아니거든요. 이혼을 해서 혼자 산다는 것은 이혼을 하지 않고 사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에요. 금전적인 문제도 그렇고 아이들 문제도 그렇고 여러 편견과 유혹들도 만만치 않죠.”
아들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 결코 만만치 않아서일까?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이혼한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고 한다.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동화 쓰는 일에 매달리고 싶어요. 지금도 준비중인 책이 있어요. 60년대가 배경인 이야기죠. 소외되고 사회적 편견 속에 내던져진 아이들을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 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한겨울에 연탄 보일러가 고장나 전기장판 신세를 져야 했던 철거민 아파트에서 살던 그와 아들은 ‘5년 뒤에 동네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로 이사하자’고 약속했던 대로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은 이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25세 청년으로 훌쩍 커버렸다. 그 아들 곁에는 6년 동안 그 아들을 또 다르게 지켜준 예비 며느리도 있다. 늘 고맙고 미안하기만 한 아들에게 엄마는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사랑의 마음을 이제야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하여 나는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 동안 한번도 하지 못했던 말, 상처 주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이젠 하고 싶습니다. 그 동안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어쩐지 쑥스러워서, 자존심 상하고 창피해서 못했다고….’ -‘엄마의 일기’에서-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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