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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민소매 원피스 도전하기

입력 2003.07.31 18:39:00

팔뚝이 굵어 느끼는 콤플렉스
때문인지 여름만 되면 다른 여자들의 팔에 시선이 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계절에 상관없이 자신있게 민소매 옷을 즐겨 입는 MC 정은아를 보면 배가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굵은 팔뚝, 뚱뚱한 체격에도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굳이 감추지 않아도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그를 그렇게 만든 이유를 알게 된 이상 나 역시 이번 여름엔 남이야 뭐라 하든 민소매 원피스에 도전해보리라.
민소매 원피스 도전하기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은 최신 유행 패션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초미니스커트가 유행해도, 속치마 같은 란제리패션이 거리를 휩쓸어도 초연한 표정을 고수하며 중년에 어울리는 클래식 무드를 고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최신 유행을 코웃음치며 무시할 수 있는 게 다행스러우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자유분방해지고 넉넉해지는 내 몸매가 평범한 옷조차도 소화하기 어려울 때, 특히 요즘 같은 여름철엔 서글프기까지 한다.
조금 더 젊고 철이 없었을 때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때론 용감하다 못해 무모하다고 할 만한 도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건 남의 시선보다 나의 자의식이었다.
2년 전, 그물모양의 스타킹이 유행했을 때 그것을 선물로 받아 착용한 적이 있다. 마침 그에 앞서 한 후배가 검정 망사 스타킹을 신었는데 마치 마릴린 먼로처럼 섹시하고, 훨씬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내가 신는 순간, 옆으로만 하염없이 늘어나는 그물코가 신경 쓰이더니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내 다리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머, 저 여자 다리 봐. 무를 그물에 담고 다니네” 하는 야유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도저히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어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평범한 스타킹을 사서 바꿔 신었다.
소매 없는 셔츠나 원피스 등도 절대 안 입는다. 가는 끈으로 연결된 드레스, 목 부분을 끈으로 묶은 홀터넥, 아주 단순하면서도 섹시해 보이는 검정 민소매 원피스 등은 내가 꿈꾸는 옷이지만 현실에선 입지 못한다. 대외적으로는 “집안이 엄격해서 그렇게 노출이 심한 옷은 입어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실 오로지 내 팔뚝이 너무 굵기 때문에 입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콤플렉스 때문인지 나는 여름만 되면 여성들의 팔에 주로 시선이 간다.

가늘고 긴 팔 가진 MC 정은아 볼 때마다 배가 아파
MC 정은아는 계절에 상관없이, 프로그램의 성격에 관계없이 민소매 옷을 즐겨 입는다. 그의 팔은 가늘고 길 뿐 아니라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까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병약하게 그저 맥없이 가늘기만 한 팔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그야 건강하고 멋진 팔뚝을 자랑하고 싶겠지만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배가 아프다.
가끔 해외출장 때 파티 드레스를 입어야 할 때가 있다. 요즘은 국내에서도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모임이 늘고 있다. 가슴과 등이 시원하게 파인 드레스, 인어처럼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난 옷을 입은 이들 사이에서 나는 조신하고 음전한 여성을 가장하며 재킷을 껴입거나 혹은 숄로 어깨와 팔뚝을 감추기 급급하다. 그럴 때 우아한 한복이라도 입으면 좋으련만 얼굴이나 체형이 한복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 애국심을 발휘할 수도 없다.

민소매 원피스 도전하기

그런데 얼마 전 내 눈에 꼭 드는 민소매 원피스를 발견했다. 함께 간 친구도 예쁘다며 적극 권했다. 보세 제품이라 가격도 흡족했다. 하지만 문제는 팔뚝. 할 수 없이 그 원피스에 덧입을 만한 비슷한 빛깔의 카디건도 샀다. 물론 민소매 원피스만의 심플한 매력은 느낄 수 없게 됐다.
“팔을 어깨 뒤로 넘기고 팔뚝 부분만 두드려주거나, 양팔을 앞으로 뻗어 손을 마구 흔들어주면 팔뚝이 가늘어져요. 한달만 꾸준히 하면 굉장히 효과가 있어요.”
아나운서 최은경이 내 팔뚝을 걱정하며 운동법을 알려주었지만 한 이틀 하다가 중단했다. 끝단에 예쁜 장식이 있는 바지도 내게는 그림의 떡이다. 요즘은 바지 끝단에 비즈 장식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은 상품들이 많은데 대부분 신장 165㎝ 정도를 기준으로 만든 제품이라 나는 바지 기장을 한뼘 정도 잘라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림은 중간에 끊기고, 비즈 장식도 줄줄이 끊어진다. 밑단에 포인트를 준 디자이너가 야속할 뿐이다.

굵은 팔뚝, 볼록한 허리도 아름답게 보이는 자연스러움
며칠 전 한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했다. 그집 여주인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여느 때처럼 팔뚝으로 시선이 갔다. ‘아∼!’ 그의 팔뚝은 나보다 훨씬 굵었다. 팔뚝만 굵은 게 아니라 허리도 굵은 뚱뚱한 체형이었다. 머리도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여 있는데 하나로 질끈 묶었다. 화장도 짙게 하지 않았다. 나는 ‘저 나이에, 저런 체격에 어떻게 저런 차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난 그의 팔뚝은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적당히 섞인 그의 흰머리도 너무나 근사하게 보였다. 전업주부인 그는 진짜 프로주부였다. 값비싼 것은 아니지만 정성껏 수집한 장식품들로 집안은 품위 있어 보였고 그가 준비한 음식은 모두 내 입에서 녹는 것처럼 훌륭했다. 무엇보다 유능한 남편의 그림자에 묻혀 자신의 빛깔을 죽이지 않고 자신의 생활과 삶을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수다쟁이는 아니지만 어떤 대화에도 막힘이 없었다.
“난 살림을 하는 게 참 즐거워요. 우리 집, 내 가정이 내게 가장 적합한 직장인 것 같아요. 물론 청소나 빨래가 항상 즐겁지만은 않고 나이가 드니 몸도 여기저기 아프긴 해요. 그런데 온전히 내 시간을 내가 관리하고, 내 아이디어로 요리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집을 꾸미는 게 참 좋아요.”
그의 매력은 무얼까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일부러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처음부터 팔뚝이 굵었던 건 아니다. 아이 낳고 키우면서 무거운 짐도 번쩍번쩍 들고, 수시로 걸레질을 하다보니 팔뚝이 두루뭉실하게 굵어진 것이다. 그래, 이번 휴가 때는 남이야 뭐라 하건 민소매 원피스에 도전해보리라. 내 굵은 팔뚝은 비만의 표시이긴 해도 그만큼 열심히, 무거운 삶의 무게를 들고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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