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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무 스승 김수악 선생이 얘기하는 강금실 법무부장관 춤 배운 사연

“강장관은 얼굴도 예쁘고 춤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겸손하고 소탈했지”

■ 기획·조득진 기자 ■ 글·감명국 ■ 사진·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입력 2003.07.31 17:41:00

춤의 명인이 있었다. 마치 수양버들이 하늘거리듯이 그의 춤은 미려하면서도 은근했다.
그러나 그 역시 세월의 흐름은 피해갈 순 없었다. 어느덧 환갑을 넘긴 명인의 숨은 가쁘기만 했다.
그때 홀연히 한 30대의 여성이 스스로 제자를 청했다. 명인은 그 재목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에게서 명인은 천부적인 ‘춤씨’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 제자가 더 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스승은 그렇게 아쉬움 속에 제자를 떠나보냈다.
전통무 스승 김수악 선생이 얘기하는 강금실 법무부장관 춤 배운 사연

올해 우리 나이로 꼭 여든을 채운 인간문화재 김수악(본명 김순녀) 선생. 전통 진주검무와 교방굿거리춤의 마지막 보유자인 그는 우리 국악의 산 역사라 할 수 있는 분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악계의 얼마 남지 않은 명인 가운데 하나이건만 부끄럽게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지 오래다.
진주의 어느 한 골방에서 혼자 쓸쓸히 생활하던 김선생을 다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것은 바로 그 15년 전의 제자였던 강금실 법무장관(46)이다. 인간문화재 김선생은 강장관에 대한 궁금증을 묻는 기자들의 인터뷰 상대가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자는 강장관 취임 이후인 지난 3월부터 심심찮게 김선생에게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김선생은 “찾아오지 마소. 난 절대 인터뷰는 안해. 어디 한 군데라도 나온 데가 없잖는가” 하며 한사코 마다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8일 갑작스레 들려온 명창 박동진의 타계 소식은 기자를 다시 한번 갈등하게 만들었다. 결국 무례를 범하기로 하고 진주행을 택했다. 막무가내식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오지 말라 캤는데, 뭐 하러 여기까지 왔노?”
실제 듣는 김수악 선생의 목소리는 훨씬 더 카랑카랑했다. 얼마전 경남 진주시 평거동 주공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김선생의 집을 어렵게 찾았건만, 그는 기자를 한참이나 현관 문 앞에 세워놓고는 들어오라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이렇게 그냥 문전박대를 당하는 건가’ 난감해하고 있는데 20여분이 지나자 문이 열렸다.
그는 “내가 지금 씻지도 못해 모양도 엉망이고, 집도 이렇게 콧구멍만 해서 앉을 자리도 없는데…” 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얼마전 모 방송국에서 찾아온 것도 안 찍겠다고 그냥 돌려보냈다는 그에게서는 비록 세월은 흘렀을망정 항상 단아하고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픈 전통무용가의 자존심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8세에 권번 입적, 전통무 계승 7평 서민아파트에 사는 인간문화재

난데없는 불청객의 방문에 당황한 김선생은 서둘러 집을 좀 치우고, 간단하게나마 옷매무새를 가다듬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그의 말처럼 7평 남짓한 서민 아파트의 협소함은 기자가 민망할 정도였다. 여든 해의 세월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곱고 청아한 자태를 지니고 있는 할머니는 그토록 수줍어하면서 기자에게 방석을 건넸다. 두 사람이 무릎을 맞대자 이미 거실은 꽉 차버렸다. 자연스럽게 이틀 전 타계한 명창 박동진에 대한 김선생의 추억으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참 재미있는 양반이셨지. 전혀 악의가 없는 욕지거리도 그렇게 구수했고. 그래도 우리들끼리야 상관없지만, 잘 모르는 높은 양반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욕을 하기에 내가 기겁을 해서 ‘선생, 제발 욕 좀 하지말고 얘기하시오’라고 사정하기도 했어.”
두 사람은 판소리의 대가인 고 유성준 선생을 사사한 인연을 갖고 있다.

전통무 스승 김수악 선생이 얘기하는 강금실 법무부장관 춤 배운 사연

지난 88년 강금실 장관의 부산 자택에서 전통무 교습 중 찍은 사진. 당시 강장관은 부산지법 판사였다. 오른쪽은 김수악 선생의 최근 모습.


김선생은 경남 함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국악을 좋아한 부친과 숙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타고난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했다. 어린 김순녀는 8세에 진주권번에 입적한 후 여기서 시조 한문 일본어 춤 소리 기악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또래 중에 단연 돋보였던 딸의 재능을 높이 산 부친은 따로 유명한 독선생을 초빙하여 가르치기에 이른다.
“권번이라고 하니까 기생학교 다녔구나 하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어. 예술학교지, 기생학교가 아냐. 당시엔 권번이 아니면 그런 예술을 배울 곳이 없었어. 하물며 우리 집안 어른들 중에서도 똑똑한 아이를 신식 교육은 안 가르치고 왜 기생을 만들려고 하느냐고 야단이셨지. 하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으시고 춤과 소리 기악에 이름 높으신 스승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내 재주를 발굴해주시고자 하셨어.”
옛날 얘기를 하는 김선생의 눈에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다른 잇속 챙길 줄 모르고 그저 소리와 춤이 좋아서 거기에만 온 정열을 바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내 한평생은 후회 없이 지내왔지만 아들딸에게 참으로 미안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참 속상한 것은, 당시엔 ‘감히 저것들도 소위 예술을 한다는 작자들이냐’ 싶었던 자들은 지금 집도 몇채씩 사고 행세를 하니 밑에 사람들도 따르고 하는데, 오히려 예술에만 온 정신을 쏟고 제자들 아끼고 가르친다고 있던 집도 팔고 하던 사람들은 지금 와선 남은 것 하나 없고. 가진 게 없다 보니 남들이 깔보고, 이러다간 앞으로 인간문화재니 명인이니 하는 것도 다 돈으로 해결되는 게 아닌가 싶어. 큰일이야.”
며칠 전에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보일러를 손보기 위해 온 몇몇이 “명인을 이렇게 처박아놓다니” 하며 자기들끼리 혀를 끌끌 차며 가더라고 했다. 우연히 자기들끼리 한 말을 듣고 김선생은 슬프기보다는 참으로 창피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제자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강금실 장관 얘기를 꺼내자 김선생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왜 자꾸, 강장관 얘기를 꺼내고 그래. 아, 전통무가 우리 춤이지, 어디 서양 춤인가. 우리의 춤은 장관이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도 배워야 하는 것이지. 어디 많이 배우는 것이 나쁜 건가.”
김선생이 갑자기 날카로운 반응을 보여 순간 기자는 당황했다. 평생을 국악에 바쳐온 그에게도 항간의 편견은 못내 부담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법원서 일한다”는 강장관 말에 춤 배우던 동료 “타이프 쳐요?” 되물어



오히려 무안해진 기자가 며칠 전 보도된 한 일간지의 강장관 인터뷰 기사를 읽어주었다. 강장관은 그 인터뷰에서 “법의 철학과 한국 전통문화의 세계관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전통이 있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40세 이전까지 무용가가 될까 고민했을 정도다. 지금까지 6∼7년 동안 정식으로 전통 춤을 익혔다. 특히 전통무용 가운데 살풀이춤을 그 방면의 권위자인 진주의 김수악 선생을 사사해 일가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제야 김선생은 강장관과의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서울 올림픽 할 무렵, 하루는 제자 중의 한명인 부산의 손심심이가 여자를 한명 데리고 왔어. ‘선생님 명성은 TV를 통해서 봤다’며 ‘춤을 배우고 싶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라고. 배우고 싶다고 청하는데 내칠 이유가 있나. 그래서 가르쳐줬지. 그런데 곧잘 배우더라고. 언뜻 따라하는 품이 제법 익힌 솜씨였어. 물론 그땐 그 여자가 판사인지 뭔지도 몰랐지.”
바로 전에 제자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던 김선생이었건만 강장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에 대한 진한 애정과 애착이 남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딸보다 더 어린 나이의 강장관을 단 한번도 하대하는 호칭을 쓰지 않고 ‘그 분’ ‘강장관’ ‘강금실’ 등으로 불렀다.

전통무 스승 김수악 선생이 얘기하는 강금실 법무부장관 춤 배운 사연

최근 일선 검사들에게 연애편지와 같은 이메일을 보내 화제에 오른 강금실 법무장관.


“난 항상 춤을 가르칠 때 인간으로서의 기본 품성을 먼저 강조하는데, 그분은 참 사람이 됐다 싶은 것이 소탈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자기에 대해 조금도 잘난 체를 하지 않았어. 오히려 아는 것도 모른 척하고.”
겸손하면서도 진지한 배움의 자세를 보였던 당시 강장관에 대한 한 에피소드는 기자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낯선 제자가 갑자기 한명 나타나니 다른 제자들도 자연히 관심이 가지 않았겠나. 특히 춤추는 품새나 단정하고 반듯한 행동거지가 예사롭지가 않다고 느낀 거겠지. 그래서 틈만 나면 강금실 곁에서 묻곤 했어. ‘뭐 하는 사람이냐?’고 말야. 강금실이 ‘그냥 법원에서 일 좀 배우고 있다’고 대답하자, 한 제자가 ‘그럼 타이프 쳐요?’ 하지 않겠어. 그래도 그냥 ‘예’ 하며 배시시 웃고 말아. 나중에 강금실이가 부산지법 판사라는 걸 알았을 때 그 제자가 얼마나 무안했겠어. 강금실은 오히려 그런 것을 무안해할까봐 더 신경을 쓰곤 했지.”
“그런 자랑스런 제자가 법무부장관이 되었는데, 왜 강장관 얘기를 피하려고만 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높은 데서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많이 배우고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이지. 특히 우리의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런 점에서 난 강장관이 폭이 넓다고 봐. 그런데 자꾸 주위에서는 춤을 배웠네 어쩌네 하면서 헐뜯으려고 한다고 안 그러는가?” 하고 언론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강장관에 대해서 계속 질문이 이어지자 김선생은 부담스러웠는지 “딱히 대접할 것도 없으니 나가서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기자를 데리고 나섰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 국악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다시 강장관 얘기를 슬며시 먼저 꺼낸 이는 김선생이었다. “춤은 맵시도 있지만, ‘춤씨’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지. 강금실이는 춤씨가 있어. 물론 얼굴도 예뻤고. 참 잘했지. 오히려 이전부터 죽 배워온 다른 제자들보다 나았으니까. 그것도 그거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참 좋았어. 염치가 있었지. 열심히 하고 겸손하고.”
최근 제자들에 대해 느끼는 서운함과 배신감 같은 것 때문인지, 그는 유난히 강장관의 품성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관이 된 후에 한번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손사래를 친다.
“에이 뭐 하려고 만나. 바쁜 양반인데. 바쁘지만 않으면 한번 내려왔을 텐데. 몇해 전 그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참 힘들어했지. 모친이 또 훌륭한 분이셨거든. 안 그래도 장관 되고 나서 전화는 몇번 왔었어. 건강하시냐고 말야. 생각지도 않았는데, 반갑고 고맙더만.”
기자를 진주역까지 배웅해준 김선생은 끝까지 강장관에 대한 염려를 놓지 않았다.
“기자 선생들 사이에서도 강장관 평판이 좋지? 많이 도와줘야지. 그리고 내가 한 말들은 쓰지 마. 괜히 큰일하는 데 방해만 되고, 이 늙은이를 곤란하게 만드는 거야.”
불가피하게 기자는 김선생에게 또다시 무례를 범한 꼴이 되고 말았다.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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