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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수집한 작품 모아 국내 첫 ‘섹스 박물관’ 연 김영수 관장

■ 기획·최미선 기자 ■ 글·김순희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7.07 11:43:00

첫사랑, 첫 키스, 첫 섹스.
언제나 첫번째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국내 처음 선보인 섹스 박물관도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들과 함께 보기에 민망한 작품들도 많아 적잖은 고민 끝에 섹스 박물관을 열었다는 김영수 관장을 만났다.
20년간 수집한 작품 모아  국내 첫 ‘섹스 박물관’ 연 김영수 관장

지난 5월24일 국내에서는 최초로 섹스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서울 경복궁 민속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이 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동양 성문화 박물관(Asia Eros Museum).’ 동방예의지국답게 ‘점잖은’ 이름으로 대중 앞에 다가선 섹스 박물관은 우선 외관부터가 눈길을 끈다. 입구에는 1m 높이의 거대한 남근 형상의 기둥이 우뚝 서 있고 그 옆에는 여체의 누드화가 걸려 있다.
김영수 관장(45)을 만나기 전 ‘차림새도 독특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하는 상상을 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깔끔한 헤어스타일에 단정한 양복정장 차림, 점잖은 말투가 영락없는 ‘모범생’의 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측이 빗나갔다고요(웃음)? 사실 박물관을 열기까지 적잖은 고민을 했고 많이 망설였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성박물관을 열 만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죠. 하지만 지구촌의 여러 나라 중 섹스 박물관이 있을 만한 곳에는 다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왜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될 때쯤인 10년 후에나 박물관을 열려고 생각했지만 그러면서도 이제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박물관을 오픈한 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는 격려를 받고 있어요.”
지하1층 지상3층, 총 1백50평 규모의 전시장에 모인 성 관련 전시품은 3백여점. 남녀 모조 성기를 비롯해 성행위 조각상, 각국의 춘화, 성행위를 묘사한 노리개 등 보는 이들을 낯뜨겁게 만드는 이 전시품들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네팔·티베트·인도 등 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처음부터 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성 관련 작품들을 수집한 것은 아니에요. 뭔가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제 취미생활이었죠. 20대 초반부터 그저 우리나라의 농경문화에 관심을 갖고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했어요. 사라지는 우리의 문화를 후손들에게 알려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시작했는데…. 수집을 하던 중에 우연히 선조들의 성문화를 알 수 있는 물품을 하나 둘 접하면서 ‘이것도 좋은 자료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공대를 졸업하고 20대 중반에 출판업에 뛰어들어 주로 교육용 책을 출간하고 있는 김관장은 성을 중시한 조상들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어 ‘낯뜨거운’ 작품의 수집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성을 중시한 선조들의 성문화 엿볼 수 있는 작품 많아
20년간 수집한 작품 모아  국내 첫 ‘섹스 박물관’ 연 김영수 관장

그의 수집품 중 눈에 확 띄는 것은 2층 전시실에 있는 통나무 작품. 커다란 통나무 위쪽으로 뻗은 줄기는 페니스 모양으로 되어 있는 반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아래쪽은 여성의 성기 모양으로 되어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벌목 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 근처를 지나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인부들이 톱을 들이대고 자르기 직전에 소리를 질러서 작업을 중단시켰죠. 희한하게 남녀 성기가 한곳에 모여있는, 보기 드문 물건이었어요. 위쪽에는 남자 옷을 입혀놓고, 아래쪽에 여자 옷을 입혀놓고 보니까 재미있는 작품이 되더라고요.”
1층에는 한국의 민속신앙에 나타난 성 관련 유물과 티베트 불교·힌두교와 관련된 에로틱한 유물들이 모여 있다. 기원전 112년에 사망한 중국의 왕 유승의 무덤에서 나온 청동 모형 성기는 현대의 성기구 못지않게 정교하다. 이 모형 성기는 고대인들이 직접 성기구로 사용했다고 한다. 고대에도 현대의 ‘자위 기구’와 같은 물건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20년간 수집한 작품 모아  국내 첫 ‘섹스 박물관’ 연 김영수 관장

김영수 관장은 성적인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부들이 많이 찾아와 작품을 통해 새로운 활력소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옛날에 지체 높은 어른들은 베개 속에 춘화를 몰래 보관했다고 해요. 춘화는 요즘의 포르노 사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의미도 있었어요. 일본에서는 춘화에 악령을 쫓는 주술적 힘이 있다고 믿어 액땜용으로 몸에 지니고 다녔어요. 증명 사진 크기로 만들어진 19세기 중국의 미니 춘화들도 호신용으로 쓰였고요.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의 춘화는 출가를 앞둔 여성의 성교육 자료이기도 했어요.”
전시된 동양 3국 춘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은 성기를 실제보다 크게 그리는 등 과장된 표현이 많고, 중국은 다양한 성체위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한국은 남녀가 성행위하는 공간에 화병이나 장식용 소품 등을 두어 분위기 연출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박물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전시품은 여성들 발을 꽁꽁 묶는 전족에 쓰인 10㎝ 크기의 신발. 이 신발은 그 자체가 남성들의 성적흥분을 자극시키는 도구로 사용됐다고도 한다.
“이 풍습은 여성의 발을 어린애처럼 부드럽게 유지시킴으로써 남성의 변태적인 성희를 위한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다고 해요. 동양의 과거 역사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성적으로 억압되었는가를 생생히 알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죠.”
김관장은 이 박물관에 “부부가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부부 사이를 엮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대화의 수단인 섹스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대화의 물꼬를 텄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성욕은 식욕과 더불어 감출 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잖아요. 부부 사이에 골이 깊어진 경우 성관계가 원활치 못한 부부가 많아요. 특히 남자들은 성적인 자신감을 상실하면 남자로서는 끝이라는 자학과 함께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게 되죠.”
특히 ‘젊은층’에 밀려 사회에서 소외됐다는 느낌과 함께 성적으로도 무능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중년의 남성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나락 속으로 빠지게 된다고. 이럴 때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의 기를 충분히 살려줘야 한다는 게 김관장의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섹스 박물관을 개관한 후 중년 남성들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거의 비슷하다고. 대부분 “몸은 말을 듣지 않지만 (섹스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면서 작품을 통해 시각적인 자극을 받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다는 것.
20여년간 차곡차곡 모아온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은 김관장은 “성은 은밀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당당한 것이라는 시각이 사회에 자리잡는 데 섹스박물관이 작은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여성동아 2003년 7월 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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