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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나 스스로 칭찬하기

입력 2003.07.02 11:01:00

요즘 남편이 딸에게 하는 잔소리를 들어보면 대부분 나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어쩜 칠칠치 못한 게 엄마를 쏙 빼닮았니.” “그렇게 정리정돈 안하면 남편에게 구박받는다. 나니까 참고 살지 내 사위까지 고생시켜야겠니.” 나는 화가 났지만 대부분 사실이기 때문에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나에 대한 생각은 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남편과 딸이 되도록 남 앞에서 나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나는 내 자신을 스스로 달래고 칭찬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게 가장 신경 쓰이는 대상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날 구박하고 나한테 실망하면 그보다 비참한 일이 또 있을까.
나 스스로 칭찬하기

가장 곤혹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가 남들 앞에서 나에 대한 평가를 듣는 것이다. 너무 과한 칭찬이나 덕담을 들을 때는 ‘맞습니다 맞고요’가 아니라 오히려 ‘어머, 내가 평소에 이렇게 뻥을 치고 다녔단 말인가. 앞으론 정말 솔직하고 겸손해져야겠다’ 하는 생각과 함께 쑥스러워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한편 나에 대한 오해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들을 때는 ‘남들이 날 이렇게 보고 있구나, 반성해야겠다’ 하는 생각보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싶어서 잠시 동안이긴 해도 ‘그동안 헛살았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진다.
평소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누가 칭찬해주면 감사하고, 누가 욕했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한다. 나를 하늘로 붕붕 띄워주던 이들이 나중에 독화살을 던지기도 하고, 내게 매서운 질책을 퍼붓던 이가 열렬한 지지자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평판에 연연하는 성격이라면 신문기자란 직업도 진작에 그만두었고 남의 안방에 얼굴을 뻔뻔하게 들이미는 방송 활동도 하지 못했을 게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난 아직까지도 어느 카메라가 내 얼굴을 비추는지 알지 못한다. 또 대부분 생방송이어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화면에 나오는지도 잘 모른다. 친구들이 “야, 너 오늘은 얼굴이 막 해산한 여자처럼 퉁퉁 부었더라” 하면 “응, 어젯밤에 라면 먹고 자서 그래” 하고 답하고, “요즘은 화면발이 아주 잘 받더라” 하면 “마사지를 했더니 효과가 있군” 하고 말한다.
남들의 조언에 매우 충실한 인간이라면 훨씬 발전하고 성공했지 지금처럼 엉터리로 살고 있지도 않을 게다. 말투와 옷차림을 바꾸고, 생활습관도 개선하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공부해 아마 새사람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남편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을 내 앞에서 직접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혼 초에야 당연히 ‘이 남자가 나를 정말 사랑할까’ ‘내가 예쁘게 보일까’ ‘이 음식을 좋아할까’ ‘이 옷을 마음에 들어할까’ 등 남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에 신경을 쓰기도 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혹은 묵비권을 주장하는 사람처럼 통 말을 안하는 남편이 나를 미치게 할 때도 있었다. 싸움을 하면 항상 나의 일방적인 모노드라마로 끝나고 레퍼토리는 늘 같았다.
“제발 말 좀 하란 말야. 말을 해야 알지, 말을! 답답해 미치겠어!”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모르고 무조건 ‘과묵한 남자’가 멋있는 걸로 아는 남편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거의 협박하듯 물어봐야 어렵게 나오는 말이 ‘몰라’였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나는 남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에겐 아무 말도 안하는 사람이 한창 자라나는 딸아이에겐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제발 좀 옷을 제대로 걸어둬라. 어쩜 그렇게 칠칠치 못한 게 엄마를 꼭 닮았니.”
“방 좀 치워라. 그렇게 정리정돈 안하면 나중에 남편에게 구박받는다. 나니까 참고 살지 내 사위까지 고생시켜야겠니.”
“그래도 내 딸이 패션감각은 뛰어나다니까. 일단 몸매가 받쳐주는 데다 취향도 우아하고. 땅딸막한 엄마 안 닮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회장 선거에 나간다고? 엄마 닮아 뻔뻔하니까 잘할 거야.”

나 스스로 칭찬하기

남편이 딸에게 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알게 된 나는 화가 나도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대부분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취향이 고상한 편인데 나는 ‘유치찬란’이다. 남편의 눈에는 한심하기 그지없을 유치한 옷차림으로 다니고, 남편은 깔끔한 편인데 나는 여전히 온 집안을 어지른다.
나에 대한 생각은 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우리 엄마를 우상으로 알았고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내 딸은 나를 아주 우습게 알고 별로 칭찬하지 않는다.
“야, 넌 엄마가 별로니? 난 어릴 때 우리 엄마가 천사 같고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이던데.”
이렇게 물었더니 딸은 냉정하게 말했다.
“엄마가 좋기야 좋지. 날 낳아준 친엄마니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은 아니지. 엄마가 딸한테 거짓말을 강요하면 되우?”
딸에게 말을 더 시켰다가는 어떤 험한 말이 나올지 몰라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 내 남편과 딸이 그저 입을 꾸욱 다물어주기를, 절대로 남 앞에서 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대상은 나 자신이다. 그동안 나는 내 자신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도, 맘에 들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도 안하고, 이성을 잃은 듯 마구 먹어대서 똥배를 불리고, 우유부단해서 잔뜩 일을 맡아놓고는 팔자타령만 했다. 전원을 꽂으면 작동하는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그렇게 일개미처럼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해하며 살았다. 이젠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에게 보이는 나의 이미지보다는 내가 보기에 좋은 나,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위해주는 나로 살아갈 생각이다. 그래서 수시로 나의 기를 살려주고 내 몸에게도 말을 건다.
“야, 유인경. 너 아직 보톡스 안 맞아도 되겠다. 그리고 뱃살아, 좀 많이 먹었다고 그렇게 진솔하게 나오면 어떡하니. 어깨야, 오늘 원고 많이 쓰느라 아팠지? 내가 문질러줄 테니 노여움을 풀어라….”
내가 나 자신을 잘 달래고 비위를 맞춰가며 건강하고 평화롭게 늙어가야겠다. 내가 날 구박하고 나한테 실망하면 그것처럼 비참한 일이 또 있으랴.


여성동아 2003년 7월 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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