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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주제가 있는 만남

호주제 폐지 운동 앞장선 여성학자 오한숙희 & 탤런트 권해효

“엄마가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는데 왜 성은 엄마를 따를 수 없는 건가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정경진

입력 2003.07.01 19:21:00

수년 전부터 여성계에서 강력하게 주장해온 ‘호주제 폐지’가 곧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부와 여야 국회의원들이 각각 수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 그동안 호주제 폐지운동에 앞장서온 탤런트 권해효와 여성학자 오한숙희씨가 만나 호주제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주제 폐지 운동 앞장선 여성학자 오한숙희 & 탤런트 권해효

여성을 억압하는 호주제가 드디어 폐지될 전망이다. 호주제란 가족을 호주를 중심으로 편제하도록 한 제도로 일제시대 때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일본에서조차 폐지돼 현재 호주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호주제는 자녀가 출생하면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 아버지 호적에 입적을 하도록 정해 그동안 재혼가정에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재혼가정의 경우 아버지와 자식, 또는 형제간에 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하면 여성은 남편의 호적에 입적되고, 호주 승계가 나이와 상관없이 아들, 손자 등 남성 우선으로 이루어지고, 여성이 혼인외 자를 입적시킬 때는 전남편과 현재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여성의 지위를 억압하는 제도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5월초 지은희 장관의 지시로 ‘호주제 폐지 특별기획단’을 구성한 여성부는 국민여론을 수렴해 곧 개정법안을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 5월27일엔 민주당 이미경 김근태, 한나라당 박근혜 이부영 등 여야 국회의원 52명이 공동발의한 ‘호주제 폐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로써 올해 안으로 어떤 식으로든 호주제가 폐지 또는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은 그만큼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6월초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남성의 50.1%, 여성의 82.3%, 전체 응답자의 70.2%가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9년 조사했을 때 찬성이 전체의 41.7%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현저히 높아진 것이다. 여성단체연합,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이 수년 동안 호주제 폐지를 위해 대국민 홍보를 벌여온 결과다.
지난 6월11일, 그동안 호주제 폐지 운동에 앞장서온 여성학자 오한숙희씨(44)와 탤런트 권해효(38)가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호주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 출생신고 하며 호주제 문제 눈떴다는 권해효
오한숙희(이하 오): 안녕하세요? 행사 때 얼굴만 뵙다가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요.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해효씨가 여성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데, 언제부터 여성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나요?
권해효(이하 권): 꼭 언제부터라고 이야기할 순 없어요. 사회단체 행사에 참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네요.
오: 솔직히 한편으로 걱정이 되더라고요. 배우란 대중적인 이미지가 중요한데, 이미지가 그쪽으로 고정되면 손해가 크잖아요. 배우로서 대단한 용기죠.
권: 잘못된 사회현실에 대해 속으로 불평만 한다고 좋은 사회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데, 최소한 아이들이 자랐을 때 ‘아빠는 너희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았다’는 말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하는 거죠. 처음엔 유명하지도 않은 제가 앞에 나서는 게 좋은 건가 싶기도 했지만 지금 안 하면 나중에도 못한다고 생각해 시작했어요. 열심히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직업상 제가 할 수 있는 일, ‘가볍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충실히 하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지난 5월에 출간된 선생님의 책 ‘부부 살어 말어’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례들이 저희 부부 이야기랑 똑같은 게 많아 공감이 가더군요(웃음).
오: 대부분의 부부가 김종서의 노래처럼 ‘그녀를 집에 들여보내기 점점 힘들어져서’ 결혼을 하잖아요. 그런데 처음엔 연애 감정을 유지한 채 잘 살다가 아이가 생기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겨요.
권: 부부가 집안일을 공동으로 하기로 했다가 여자가 다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육아가 대표적인 경우죠. 그럼 그게 남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에요. 사회 시스템의 문제죠. 남자가 아이를 키울 권리와 의무를 사회가 인정을 안 하잖아요.
오: 맞아요. 요즘은 남자들도 의식이 바뀌어 가사분담을 하고 싶어하는데, 사회적으로 받아들이질 않는 거죠. 남자도 법적으론 육아휴직을 낼 수 있지만 실제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사용할 분위기가 아닌 거죠.

호주제 폐지 운동 앞장선 여성학자 오한숙희 & 탤런트 권해효

권: 문제는 거기에서 출발해요. 현실적으로 여자가 아이를 낳고 돌보기까지 한다면 당연히 엄마의 권리가 더 강해야 하는데 호주제만 봐도 아니잖아요. 전 혼인신고나 첫아이 출생신고를 아버지가 대신 해주셔서 몰랐는데, 작년에 둘째딸 출생신고를 직접 하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출생신고서를 쓰다가 아내 본적을 몰라 전화로 물어봐서 적어냈는데, 동사무소 직원이 한심한 듯이 쳐다보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처의 본적이 당신 본적이랑 똑같아야지 왜 다르냐’는 거예요.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곱게 키운 내 딸도 시집을 가면 본적이 자기가 태어난 우이동이 아니라 남편의 본적으로 옮겨간다는 거잖아요.
오: 제 딸이 어느 서류의 본적란에 ‘없음’이라고 썼는데, 정말 여자에겐 자기의 본적이 없어요. 단적으로 여자가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 본적을 적어야 하는데, 남편 본적을 어떻게 외우냐고요, 남자들도 자기 본적을 모르는데. 제 후배는 대학원을 다니던 중 결혼을 했는데, 졸업할 때 서류를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본적이 바뀌어 있더라며 황당해하더라고요. 이런 일은 여자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거예요.
권: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호주제를 폐지하면 씨가 섞이고 근본을 모르게 돼 혈통주의가 훼손된다’는 것인데, 오히려 현재 시스템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근본을 더욱 모르게 만드는 거잖아요. 옛날엔 족보에 딸도 다 올렸어요. 그 사람의 근본을 정말 확실히 하려면 여성들도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는 건데, 결혼했다고 호적에서 파내고, 본적을 바꿔버리니….
오: 오랫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세운 후 어디까지를 유대인으로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할머니가 유대인이면 다 인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대요. 친손자보다 외손자가 더 정확한 핏줄이라는 것이죠.
권: 우리 사회는 엄마가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는 게 자연스러운데 왜 성은 엄마를 따를 수 없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걸 사회학적으로 소외된 노동이라고 부른다면서요? 노동자들이 물건을 만들어도 그 물건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공장 주인의 것이 되잖아요. 자기가 만든 물건인데도 그걸 가지려면 돈을 내고 사야 돼요. 노동자가 생산물로부터 소외된다는 거죠. 근데 놀라운 게 영어로 노동이란 뜻이 ‘labor’인데 사전을 찾아보면 출산의 고통도 같은 단어를 써요. 다시 말하면 여성들도 출산의 고통으로 얻은 생산물인 아이로부터 소외된다는 거죠.

재혼가정, 부자간에 형제간에 성 달라 고통 극심
오: 저는 상담을 하면서 재혼가정의 문제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느껴요. 하루는 한 남자가 찾아와 이야기를 하는데아이가 둘 있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했대요. 그런데 자기는 아이를 더 낳고 싶은데 여자가 죽어도 안 낳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아이를 낳으면 지금 있는 아이들과 성이 달라지는데 그로 인해 훗날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고 한대요. 이 남자는 4대 독자이고 부모님이 살아 계신데도 지금 이민을 준비하고 있어요. 자기는 여기서 효도하며 알콩달콩 살고 싶은데 우리 사회가 자기들을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거예요. 또 하루는 재혼가정 부부가 찾아왔어요. 초등학교 때까지 활발하던 애가 엄마가 재혼한 후 성격이 확 달라졌다는 거예요. 왜 그런가 해서 일기장을 봤더니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내라고 한다. 아빠랑 나랑 성이 다르다는 걸 아이들이 알까 두렵다’고 써 있었대요. 엄마가 그걸 보고 3시간을 울었다고 하더군요.
권: 호주제는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예요.
오: 여자가 두번 결혼해서 각각 한명씩의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녀들의 성이 다르면 거기에서 오는 고통이 너무 커요. 해효씨가 그런 것을 주제로 연극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사람들이 무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권: 호주제 사수를 위한 1천만 서명을 받겠다고 하는 유림들조차 호주제 자체는 문제가 있다고 인정을 해요. 그럼에도 전통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 1910년까진 호주제란 게 없었어요. 전에 MBC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종가’를 보고 놀랐어요. 우리나라 명문가의 종손들을 다루었는데, 유림들이 말하는 것처럼 순수혈통이 이어져 내려온 게 아니라 어느 집안이든 한두번씩은 양자로 대를 이었다는 거예요. 그것도 종가집 며느리가 그 집안과는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양자를 선택해 들였어요. 결국 전통이란 혈통이 아니라 그 가풍을 이어받는 정신이라는 거죠.
오: 많은 사람들이 호주제 폐지 반대 이유로 공감하는 것 중에 하나가 죽어서 제사를 못 받아먹는다는 것인데, 성을 물려주지 못하면 그 집안은 폐가가 돼요. 딸만 있는 집은 딸들이 결혼을 하면 다 호적을 파가서 폐가가 되는 거예요. 분명 자손들이 이어진 집안인데도요.
권: 원래 우리나라에는 딸도 제사를 지내는 미풍양속이 있었어요. 조선중기 율곡 이이 선생 때까지만 해도 외가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요. 제사를 지내니까 상속도 똑같이 받았고요.
오: 저희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난 죽은 다음에 자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다 둘러보며 다니고 싶으니 돌아가면서 제사를 해라, 제사상도 홍동백서 따지지 말고 개성을 살려서 해라, 술도 여러가지 술을 맛보고 싶으니 새로 나온 술을 우선해서 올려라’고. 많은 사람들 심정이 그럴 거예요. 그런데 형식과 제도가 그런 마음을 죽이고 있어요.
권: 사회 전반 분위기가 받쳐주질 못하잖아요.
오: 반쪽이 최정현씨가 평등부부상을 받았잖아요. 그런데 그의 만화를 보니까 헹가레를 치는데 그 받쳐주는 손들 중에 칼을 든 손이 있어요. 제가 그걸 보면서 느낀 것은 남자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 사회가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에요.

호주제 폐지 운동 앞장선 여성학자 오한숙희 & 탤런트 권해효

오한숙희씨와 권해효는 호주제는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권: 남자뿐 아니라 여성들도 문제예요. 많은 여성들이 ‘가장 심각한 피해자는 이혼 후 재결합한 가정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호주제는 내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해요. 최소한 남편을 설득시켜야 할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설득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죠.
오: 대학로에서 매월 마지막 주말에 호주제 폐지를 위한 거리서명을 하거든요. 거기서 제가 서명을 받고 있는데, 어떤 부부가 지나가다가 남편이 서명을 하자고 하니까 아내가 ‘저거 우리랑 상관없는 거야’ 하면서 마치 불행한 부부들의 문제를 구제하기 위한 걸로 생각하더라고요. 또 연애하는 남녀가 지나가다가 남자가 ‘저거 니 문제니까 서명해야 하는 거 아냐’ 하니까 여자가 ‘싫어. 나 저런 거 시키지마’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자가 ‘넌 그게 문제야’ 하면서 혼자 서명을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자괴감까지 들더군요.
권: 저도 학생들을 만나보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동의를 해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예 무관심하더라고요.
오: 어떻게 보면 남녀 대립문제가 아니라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문제예요. 일부 언론에서 호주제 문제를 유림과 진보적 여성의 대립으로 몰아붙여 성 대립과 세대 대립을 절묘하게 연결시켰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제가 아는 사람은 이혼을 했는데 일흔이 넘은 아버지가 ‘잘했다 꿋꿋하게 살아라’하고 격려를 했대요.
권: 저는 여성대회 때 탑골공원까지 행진을 하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저를 부르시더니 ‘어이,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야’ 하던데…(웃음).
오: 차리리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사실은 이렇다고 설득이라도 할 수 있는데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말을 해줄 수조차 없어 답답하죠.
권: 그런 점에서 홍보대사인 제 숙제라면 먼저 가족을 설득시키는 거예요. 그런데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호주제 이야기를 하는 게 참 생뚱맞아요. 다른 형제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뭐 그런 이야길 하냐’라고 말하기도 하고….
오: 그래도 이 운동을 하다 보면 보람을 느낄 때도 많아요. 호주제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이게 자기들이 잘못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제도가 잘못된 것이란 걸 깨달을 때 보람을 느끼죠.
권: 저도 지금 우리 사회에 이런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걸 보며 ‘내가 작은 보탬이 되었구나’ 하는 기쁨을 느껴요. 결론적으로 호주제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도’란 말을 없애야 한다는 거예요. 어머니들이 흔히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근데 왜 며느리한테 그래?’ 하면 ‘그래도 그게 아니다’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때문에 사람이 계속 망가지는 거예요. 그냥 한번만 극복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오: 그게 사회적 관습이고 개인적 습관이죠. ‘그래도’를 ‘그래서’로 바꿔야 해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바꿀 수 없어’가 아닌 ‘그래서 호주제가 폐지되어야 해요’라고. 호주제가 폐지되는 그때까지 열심히 권해효씨가 국민들에게 호주제 폐지를 ‘권해’ 주길 바랍니다.
권: 오늘 이야기 즐거웠습니다.



여성동아 2003년 7월 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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