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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안타까운 사연

의식불명 상태 아버지 5개월째 간병중인 방송인 이매리

■ 기획·이한경 기자 ■ 글·조희숙 ■ 사진·박해윤 기자

2003. 06. 11

방송인 이매리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뇌동정맥기형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현재까지 의식불명 상태인 것. 아버지의 잦은 사업 실패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던 그는 현재 일주일에 5백만~6백만원 하는 입원비까지 감당하고 있다. 아버지와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안타까움이 더하다는 이매리의 절절한 심경 고백.

의식불명 상태 아버지 5개월째 간병중인 방송인 이매리

“병원에 가면 아빠 옆에 앉아서 그날 있었던 일을 계속 얘기해요. 엄마는 아빠 면도를 해드리고 손톱을 깎아드리죠. 아빠가 항상 입을 벌리고 계시니까 물에 적신 거즈로 입술이 마르지 않게 해주고요. 한마디로 지금 아빠는 큰 아기 같아요.”
5개월째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고 있는 방송인 이매리(31). 그는 요즘처럼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한다. 비록 아버지로부터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일할 때 제외하고는 병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방송에서 밝고 명랑하게만 보이던 이매리가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다는 사연이 알려진 것은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그가 식물인간 상태가 된 부친을 간호하고 있으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 하지만 그는 주변의 염려와 달리 전보다 더 씩씩해졌다고 털어놓는다.
“아빠가 쓰러지시고 난 다음 가장 먼저 살찌는 약을 먹었어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마른 몸 때문에 불쌍하고 약해 보이는 게 싫었거든요. 요즘에는 헬스클럽에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옷도 일부러 화사하게 입으려고 해요. 제가 그렇게 입는 것을 아빠가 좋아하셨거든요.”
아버지의 정확한 병명은 뇌동정맥기형. 뇌혈관의 기형으로 뇌동맥과 뇌정맥 사이에 모세혈관이 없어 뇌혈류가 동맥에서 직접 정맥으로 흘러 뇌출혈이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병이라고 한다. 평소 건강한 체질이었던 그의 부친은 지난 1월5일 집을 나섰다가 길가에 쓰러져 응급실로 옮겨졌다.
“아버지가 길거리에 쓰러져 계신 것을 어떤 분이 응급실로 옮겨주셨더라고요. 하지만 너무 늦게 발견되어 출혈이 심한 상태였어요. 그후 네 차례나 뇌수술을 하면서 뇌를 많이 제거해 회복돼도 한두 살 아이 정도의 지능밖에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회복될 가능성도 5% 남짓이고요.”
부친은 수술 후 지금까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의식이 없는 환자 받기를 꺼리고 의사들마저 큰돈 들이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곧 한방병원으로 옮겨서 침 치료를 받도록 할 생각이에요. 이미 수술한 환자는 효과가 없다지만 혹시나 싶어서요. 돈은 살면서 또 벌 수 있잖아요.”
그는 요즘 마음에 걸리는 게 한가지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가족 여행을 다녀왔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는데 그가 너무 바빠 부모만 친척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
“특별히 아프신 데는 없었는데 이상하게 ‘놀러 가자’ ‘여행 가자’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제가 자라고 나서는 부모님과 여행을 다닌 적이 없는데도 말이에요. 아빠가 나아지시면 꼭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다녀오고 싶어요.”
무남독녀지만 그와 아버지는 그리 가까운 편이 아니었다. 그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무렵부터 건설붐이 일면서 부친이 중동과 유럽 쪽에서 해외근무를 오랫동안 했기 때문. 그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1년에 한번 만나 선물을 사주는 낯선 존재였다고 한다.

의식불명 상태 아버지 5개월째 간병중인 방송인 이매리

5개월째 투병중인 그의 아버지가 회복될 가능성은 5% 남짓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보고 고등학교 입학할 즈음에 돌아오셨으니까 당연히 낯설고 어색했죠. 게다가 아빠랑 제 성격이 똑같아요. 둘 다 불같은데다 잘못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자주 부딪쳤어요. 결정적으로는 아버지가 제 일을 싫어하신 게 문제였고요. 일이 험해 상처 받을 수 있으니까 그냥 평범하게 살라고 하셨거든요.”
아버지는 그에게 엄격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귀가시간을 오후 7시로 정해놓았을 정도. 하지만 막상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방송일을 시작하자 “이왕 시작했으니 열심히 하라”며 격려해주고 직접 의상도 챙겨주었다고.
아버지가 쓰러진 후 그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수시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게 된 것. 아버지의 경과도 궁금하지만 간호하는 어머니가 더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엄마한테 거의 전화하는 일이 없었는데 요즘엔 수시로 해요.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밥 꼭 챙겨 드시라’는 말이죠. 힘드니까 택시 타고 다니시라고 해도 꼭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병원에 다니세요.”
그는 아버지의 잦은 사업 실패로 그동안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노릇을 해왔다. 하지만 부친이 쓰러졌을 때는 그의 상황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당시 그는 케이블 TV에서 방영되는 한 개 프로그램에만 출연중이었던 것. 자연 1천만원이 넘는 수술비와 일주일에 5백만∼6백만원 하는 입원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병원비를 카드할부로 해결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병원비 걱정은 덜 정도가 됐죠. 아버지 입원비에 보태라며 일부러 행사 진행을 잡아주신 분도 계시고요. 생각지도 못한 힘든 일을 겪고 보니 요즘은 작은 것들에 대해 소중함을 많이 느껴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별’에서 공형진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그는 요즘 연기 쪽으로도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낭만자객’이라는 영화의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했고, 영화출연 제의도 심심치 않게 받는다고.
“예전에 아침 드라마 ‘사랑과 이별’에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어요. 연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지난해에는 연기학원에 다니기도 했고요. 얼마 전에 본 ‘낭만자객’ 1차 오디션에서 합격은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현재 그는 MBC ‘임성훈과 함께’와 ‘토요일은 떠나볼까’에 리포터로 출연중이고 케이블 채널인 매일경제TV에서 경제 관련 프로그램을 2개 진행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노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과 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내년쯤 부동산 관련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결혼은 아직 이른 이야기라는 이매리. 그러면서도 그는 건강해진 아버지를 모시고 결혼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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