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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경 소설 ‘인도로 간 또또’ 실제 주인공 태백이 가족의 남다른 삶

“인도는 저희에게 고향 같은 곳 꿈을 실현시켜 주는 곳이에요”

■ 기획·최미선 기자 ■ 글·박진숙 ■ 사진·홍상표

입력 2003.06.10 15:42:00

오로지 공부만 잘하는 아이보다는 세상을 넓은 눈으로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 아들 태백이에게 학원 수강증 대신 인도를 선물한 아빠 원유진씨와 엄마 김경애씨. 그렇게 떠난 인도에서 만난 소설가 강석경씨는 태백이의 이야기를 소설로 펴내기도 했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며 사는 것은 불편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들이 말하는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법’.
강석경 소설 ‘인도로 간 또또’ 실제 주인공 태백이 가족의 남다른 삶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고 세계일주를 꿈꿨었는데 여의치 않았어요. 대신 인류문화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인도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우리 부부도 항상 인도를 동경해왔기 때문에 무작정 떠났지만 두렵진 않았어요.”
조각가 원유진씨(47)와 화가 김경애씨(44) 부부는 무거운 책가방을 멘 채 축 처진 어깨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아이만큼은 다르게 키우고 싶었다. 그렇다고 특출나게 공부 잘하는 아이, 성공의 지름길을 향해 쉼 없이 뛰어가는 아이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줄 알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아이를 바랐을 뿐이다.
그래서 원씨 부부는 세살 된 아들에게 영적인 나라, 스승의 나라, 그리고 평화의 나라로 인식되는 ‘인도’를 선물했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지금, 아버지 원씨는 아들의 어린 시절을 ‘아빠가 준 인도’라는 한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이제 16세의 소년으로 성장한 아들에게 추억의 인도를 또 한번 ‘선물’한 것이다.

태백이의 인도 생활을 책으로 펴낸 아빠
강석경 소설 ‘인도로 간 또또’ 실제 주인공 태백이 가족의 남다른 삶

“인도에 살면서 겪었던 일들을 책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아이에게 약속했었죠. 아이들은 어릴 때의 일을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에 책을 만들어주면 도움이 되겠다 싶었거든요. 하지만 책을 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간간이 아이가 ‘책은 언제 만들어 줘?’ 하고 묻길래 2년 전부터 틈틈이 준비해서 완성하게 됐어요.”
3년 동안의 인도 생활을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록해두었던 원씨는 드디어 ‘아빠가 준 인도’를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원씨 가족이 인도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세계에 눈떠가는 과정을 아들의 눈으로 그린 성장일기다. 재미난 것은 인도에서 사는 동안 계속 길어진 아이의 이름이다. 아이의 원래 이름은 재덕. 원씨 부부는 덕이 많은 아이라는 뜻으로 ‘덕이’라고 불렀다.
아이는 인도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테레사 수녀, 인도의 성자들을 만나며 인도를 온몸으로 체험해나갔다. 이 여행 중에 한 스님으로부터 산스크리트어로 덕을 뜻하는 ‘실라’라는 이름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늘어갔다. 결국 인도 여행이 끝나갈 무렵 아이는 ‘원덕실라리더크리슈나틴틴텐진남걀루루또또태백이’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갖게 됐다고.
원씨 부부는 인도의 미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이 되면 서둘러 짐을 쌌다. 그러고는 레 라다크, 동인도, 갠지스 강, 히말라야 등 인도 곳곳을 아이와 함께 여행했다. 덕이는 인도에서 젖병을 뗐고, 인도 유치원에 다니며 인도어와 영어를 배웠다. 예술가 부모의 피를 이어받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찮은 성냥개비부터 물감까지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릴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던 것이다. 또한 덕이는 인도의 산티니케탄에서 소설가 강석경씨와 이웃으로 살게 된 덕분에 강씨의 장편동화 ‘인도로 간 또또’의 실제 인물이 되기도 했다.
“어릴 때 기억은 잘 나지 않아요. 하지만 아빠가 찍어주신 사진이나 책을 보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절 알아보니까 참 기분 좋아요. 그리고 책을 만들어준다고 한 약속을 지켜주신 아빠가 너무 고마워요.”
처음 인도에 도착하자 밤이 어둡고 침침해서 싫다던 꼬마는 이제 한창 멋 부리기 좋아하는 170cm 훤칠한 키의 사춘기 소년이 돼 있다. 그리고 아이는 더는 ‘원덕실라리더크리슈나…’가 아니다. 긴 이름 대신 ‘태백’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자신의 삶을 일구기 시작했다. 열살 때 엄마와 함께 올라갔던 태백산의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을 닮고 싶어하는 소망이 담긴 이름이다. 태백이에게 인도는 어릴 적 향수가 묻어나는 고향 같은 곳이다.
“아이는 인도에서 자유롭게 살았죠. 3년 동안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워했어요. 자연 속에서 맨발로 뛰어다니고 인도 음식을 먹으며 요가를 했죠. 인도에서 자유롭게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사실 걱정도 많았어요. 아이가 도시 속의 답답한 문화와 부딪혀 충격을 받을까 싶어요. 그래서 아내와 아이는 금산의 외할머니 댁으로 내려가 2년 동안 살았어요. 다행히 아이는 적응을 잘하면서 아무 탈 없이 자랐죠.”
시골에서 유치원을 마친 태백이와 김씨는 가족이 생이별을 한 채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도시로 왔다. 그나마 비교적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서울 주변 도시로 이사한 뒤 태백이를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칠 무렵 원씨 부부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태백이의 교육을 맡길 수 없었던 것이다.

강석경 소설 ‘인도로 간 또또’ 실제 주인공 태백이 가족의 남다른 삶

인도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한 태백이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잘 하는 아이만 최고로 인정받는 현실이 싫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전 공부보다 미술을 잘했지만 칭찬받기는 커녕 공부 못하는 아이 취급만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더라고요. 심지어 태백이가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닐 때는 돈 봉투를 보내라고 학교에서 연락을 하더군요. 처음엔 보내지 않았죠. 하지만 또다시 보내라고 연락이 오는데 어쩌겠어요. 정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김경애씨는 아이가 잘하는 것을 칭찬해주는 교육, 인격을 존중해주는 교육을 바랐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들의 교육에 회의적인 생각을 품게 됐을 무렵, 그들 부부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미술학원을 1년6개월 정도 운영하고 있었죠.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니까요. 꽤 잘되던 편이었어요. 어느날 장애아를 데리고 한 엄마가 찾아왔죠. 우리 부부가 인도에서 살다왔으니 믿을 만하다면서 아이를 보내고 싶다고 했어요. 당연히 장애아도 미술을 배울 수 있으니까 다니라고 했죠. 그렇게 몇몇 장애아들이 다니게 되면서, 반대로 꾸준히 다니던 비장애 아이들이 학원을 그만두는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장애아와 함께 학원을 다니기 싫다는 거였어요. 결국 학원문을 닫으면서 이렇게 냉정하고 차가운 사회에서 우리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결론을 냈죠.”
원씨 부부는 아이와 의논한 끝에 인도로 다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 태백이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 원씨는 한국에 남기로 했다. 비록 부부가 서로 떨어져 살아야 했지만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강석경 소설 ‘인도로 간 또또’ 실제 주인공 태백이 가족의 남다른 삶

태백이의 여섯살때 모습


태백이와 김씨는 어릴 때 살았던 산티니케탄으로 돌아가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곳 역시 아이들에게 체벌을 하면서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었다. 고민하던 태백이는 스스로 ‘오로빌 공동체’를 선택했다. ‘오로빌 공동체’는 68년, 세계 1백24개국에서 인도로 모여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만든 실험 공동체다.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곳으로, 데칸 고원 남동쪽 끝에 위치한 인도에서도 한참 외진 곳.
“아이가 오로빌을 선택했을 때 믿고 맡겼어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오로빌은 우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이곳 생활이 벌써 5년짼데 아이나 저나 아주 만족스러워요. 남편과 떨어져 사는 것은 힘들지만요.”
이곳에는 현재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세계 36개국에서 온 세계인 1천6백여명이 모여 산다. 그중 한국인은 10명뿐. 태백이는 오로빌 최초의 동양소년이다. 처음 2년 동안 아이는 무척 힘들어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오로빌의 선생님들은 태백이가 하나를 완전히 깨우칠 때까지 반복적으로 가르쳐주었고, 덕분에 지금은 어느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아이가 됐다고 한다.
레스트 스쿨(우리의 중학교)에 다니는 태백은 특히 미술 분야 수업이 많은 이곳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스케치, 조각 등을 배우며 아빠 같은 조각가를 꿈꾸고 있다. 많은 외국사람들이 함께 살기 때문에 영어, 불어, 인도어는 물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제2외국어를 또 배우게 된다. 교사가 가르치는 방식도 일정한 틀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동등한 곳, 미술을 잘하면 그것을 칭찬하고, 봉사를 잘하면 그 착한 마음을 칭찬하는 따뜻한 학교다.
또한 맨발로 걸어서 학교에 가고, 길목마다 뱀, 다람쥐, 공작새뿐 아니라 꽃과 나무들이 사람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다. 이곳의 구성원들은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해야 한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고, 목수 일을 잘하는 사람은 목수가 된다. 김씨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가르치는 일보다 화원을 돌보고 싶어 정원사로 일하며 한달에 3천루피(약 8만원)를 받는다.
“하루 4시간 동안 일을 하고 낮에는 집에 와서 그림을 그려요. 도시 생활과는 다르기 때문에 제가 번 돈으로 생활하기에 충분해요. 공동체 식구들이 서로 나눠먹고, 함께 쓰기 때문에 풍족하진 않아도 살 만하죠. 학교도 무료라서 교육비 걱정 없이 다니고 있죠. 하지만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갈 때를 대비해야 해요. 그래서 남편과 아이교육을 분담하게 됐죠. 태백이가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할 때까진 엄마인 제가 인도에서 돌보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는 아빠가 한국에서 태백이를 지켜보기로 했어요. 전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오로빌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강석경 소설 ‘인도로 간 또또’ 실제 주인공 태백이 가족의 남다른 삶

느리지만 평화롭게, 다소 불편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택한 태백이네 가족.


성자들의 나라 인도에서 살기 때문일까. 이들 가족이 살아가는 방식은 남달랐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보다 오히려 문명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불편한 삶을 아들에게 선물한 부부. 멀리 보고, 자세히 보고, 본질 자체를 보며, 항상 자신의 위치를 기억하라는 뜻에서 인도로 가는 태백에게 망원경과 현미경, 카메라와 나침반을 선물한 아빠. 그리고 아들을 믿는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삶의 진리를 깨닫도록 옆에서 기다려주는 엄마. 인도라는 나라가 도시 속의 안정된 삶을 미련 없이 버릴 만큼 이들 가족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이 서로 떨어져 살기 때문에 잃는 것도 있지요. 하지만 일상 속에서 사건을 만들어줌으로써 아이가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연출하는 사람이 부모라고 생각해요. 그런 체험들을 통해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다음에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사는 삶을 살도록 말이죠.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들 부부는 매달 생활비의 절반을 자신의 꿈을 피우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내놓고 있다. 또한 김씨는 인도에서 작업했던 연꽃 그림을 한국에서 전시한 뒤 그 수익금으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도울 생각이다.
지난 5월 중순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 어딜 가나 꼭 붙어다닌다. 여름이 되면 김씨와 태백이가 한국으로 오고, 겨울이 되면 원씨가 인도로 가서 재회를 한다. 아무리 인도에서 특별한 생활을 한다 해도 태백이는 아직 열여섯살 어린 소년이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찾았던 것이 떡볶이, 김밥, 자장면, 라면.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는 태백이는 한국에 있는 동안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이 힙합댄스라고.
“부모님께 감사하죠. 언제나 친구처럼 대해주시고 잔소리도 하지 않으세요. 믿고 맡겨 주시거든요. 아빠는 제게 이메일로 항상 좋은 말씀을 들려주세요. 바빠서 답장은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요(웃음).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일단 조각가를 해보고 싶지만 직업으로 삼을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마주 대할수록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들 가족은 앞으로 계속해서 지금까지 꾸려왔던 삶의 방식을 지켜나갈 것이다. 인도가 그들을 성숙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인도를 더 가깝게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한결 푸근해짐을 느꼈다. 김씨는 어른이 되어 세상과 부딪혀야 하는 아들의 장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태백이가 잘 자라주는 것이 가장 고마워요. 먹는 것은 한국에서 살 때보다 부실하지만 아이가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니까 좋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오면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때가 되면 태백이의 내면이 영적으로 더 성숙해 있겠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릴지 모르지만 거북이처럼 가다 보면 언젠가는 토끼보다 빨리 꽃을 피우겠죠.”
느리지만 평화롭게, 남들과 다르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택한 태백이 가족의 활짝 웃는 모습이 한층 빛났다.

여성동아 2003년 6월 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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