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홍익대학교 앞 놀이터에서는 ‘프리마켓(Free Market)’이란 이름을 달고 왁자지껄한 예술시장이 열린다.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에서 4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각자 집에서 제 손으로 만든 스카프, 페인팅한 옷, 반지, 목걸이, 금속공예, 비즈공예, 도자기 등 이 세상에서 오직 단 한 개만 존재하는 수공예품을 들고 나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린다. 젊은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인 만큼 물건마다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독특한 개성을 풍기기 때문에 이곳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이것저것 만지작거리지 않고는 그냥 못 지나칠 만큼 신기한 예술품들이 뿜어대는 유혹이 대단하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이곳 예술시장으로 몰려나와 한판 축제를 벌이며 시민들의 발걸음을 잡아 끄는 것일까.
‘일상’과 ‘예술’이 함께하는 열린시장 프리마켓을 1년 가까이 정착시켜온 사람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홍대앞벼룩시장’(cafe.daum.net/artmarket)이란 이름으로 둥지를 튼 젊은 예술가들.
홍대앞벼룩시장은 지난해 5월 인터넷에 문패를 단 이후 현재 1만2천3백여명의 회원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1주일에 한번씩 프리마켓이 열리는 터라 정기모임, 번개모임도 따로 잡을 필요가 없다. 매주 토요일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해소되는 전천후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운영자 김영등씨(34)는 홍대 앞을 ‘밀실’이 아닌 ‘광장’으로 승화시키고자 프리마켓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작년 월드컵 때 처음 프리마켓을 열기 시작했어요. 홍대 앞을 마니아들만 찾는 곳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나 관광객도 자유롭게 다가와서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죠.”
프리마켓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만나지만, 반대로 가난한 예술가들은 프리마켓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팔면서 창작활동을 지속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참가신청서를 제출하고 1만원의 회비를 내면 프리마켓에 참여할 수 있어요. 어떤 시민들은 재활용품이나 자신의 손때 묻은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팔기도 하죠. 프리마켓에 있는 10% 정도의 물건은 재활용품이고 나머지는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이에요.”
홍대앞벼룩시장 온라인 게시판은 ‘참가안내’ ‘후기&제안’ ‘프리마켓 앨범’ ‘My Home link’ ‘Performance’ 등으로 짜여 있는데 매주 프리마켓이 열리는 만큼 게시판에는 다양한 글들이 속사포처럼 올라온다.
‘제가 가고 싶은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프리마켓에 감사하다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대학 때 의상을 전공하고서도 어찌어찌하다가 그 꿈을 펼쳐 보이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저였습니다. 늘 맘 한구석엔 언젠가는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뿐이었는데, 우연하게 남자친구에게 프리마켓이 있노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잃어버린 꿈을 다시 찾은 것처럼.’(ID 220th st.)
‘귀찮다는 남동생을 꼬셔서 프리마켓에 갔습니다. 날도 덥고 아기까지 안고 가서 조금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좋은 물건들 실컷 구경하고 와서 고생스럽지 않았어요.*^^* 손으로 만든 액세서리들, 퀼트, 종이공예품, 알공예품…. 다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예쁜 물건들이 많아서 저도 한번 꼬옥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ID 광팔이엄마)
‘전 항상 파는 것 보다 사서 집으로 가져오는 게 더 많아여^^ 이번에두 이쁜 시계를 하나 샀네여^^ 뒤풀이두 처음 참가해보구^^ 거기서 만난 모든 분들 반가웠습니다^^’(ID 잼잼잼)
‘프리마켓 앨범’ 코너는 회원들이 직접 만들어 프리마켓에 내놓을 물건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사전 홍보를 하고 프리마켓의 이색풍경도 담아 그곳의 열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또한 ‘My Home link’ 코너는 홍대앞벼룩시장의 온라인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비즈공예나 도자기 등 각자의 예술품을 소개한 개인 사이트를 5백개 넘게 링크해 놓았다. 일종의 사이버 갤러리라고 할 수 있는데 시중에서 대량으로 파는 획일적인 패션용품에 싫증난 사람은 이곳에서 신선하고 독특한 문화적 충격을 만끽할 수 있다.
‘앞서 프리마켓에서 기타 들고 자기가 직접 만든 시디 팔던 팔팔한 청년이 있었죠. 그 친구가 드디어 프리마켓 공연에 나섭니다. 기대해주세요.’
‘카바레사운드의 플라스틱피플과 오브라더스가 프리마켓에서 작년에 몇 차례 공연했죠. 올해도 조만간 공연할 겁니다. 카바레사운드는 홍대앞 인디씬에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집단입니다. 독특한 뮤지션들이 모여서 앨범을 제작하거나 공연을 합니다.’
‘Performance’ 코너를 클릭하면 이렇게 운영자가 게시판에 올린 공연 예고 글을 볼 수 있는데 프리마켓에 가면 개성 넘치는 수공예품뿐만 아니라 흥겨운 콘서트도 만나게 된다. 새로 밴드를 조직한 음악인들은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며 새로운 팬을 만들고, 장보러 나온 시민들은 일상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생활의 활력소를 얻어가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프리마켓이 평범한 시장이 아니라 ‘축제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홍대앞벼룩시장 회원들은 얼마 전 ‘이라크 어린이에게 의약품 보내기 시민캠페인’도 벌였다. 그만큼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폐쇄적인 커뮤니티가 아니라 좀더 많은 사람들의 생활과 고민을 끌어안고자 노력하는 열려 있는 공동체다.
회원들끼리도 특별하게 친목을 다지는 자리를 갖지는 않지만 예술시장이 열리는 과정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다. 그러면서 서로 수공예품에 대한 정보를 나누거나 공동작업에 함께 들어가는 ‘동업자’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놀이와 예술이 넘쳐나는 신나는 예술시장! 일상이 무료하다면 그동안 감춰왔던 끼와 열정을 홍대앞벼룩시장 회원들과 함께 마음껏 펼쳐 보이며 ‘도시문화 게릴라’로 변신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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