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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고정관념을 깬다

아리랑 TV 뉴스 진행하는 국내 최초 여성 더블 앵커 주영애·박수진

■ 글·이남희 ■ 사진·정경택 기자

2003. 06. 10

5월초부터 아리랑 TV의 주말 뉴스 프로그램 ‘코리아 디스 위크’를 진행하는 주영애씨와 박수진씨. 국내 최초로 여성 더블 앵커를 맡아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우리만의 새로운 뉴스 스타일을 개척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힌 두 여성 앵커를 만났다.

아리랑 TV 뉴스 진행하는 국내 최초 여성 더블 앵커 주영애·박수진

아리랑TV 스튜디오에서 뉴스 녹화를 마친 주영애·박수진 앵커.


“스마일! 표정 풀고….”
PD가 화면에 비친 앵커의 경직된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어보라 주문한다. 5월16일 오전 아리랑 TV의 주말 뉴스 프로그램 ‘코리아 디스 위크’의 녹화가 진행중인 스튜디오 안.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앵커석에 앉아 뉴스를 준비하는 두 여성 앵커의 모습에 긴장감이 돈다. 두 사람은 영어 뉴스 원고를 소리내어 읽거나 목소리 톤을 정리하며 카메라 슛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선 뉴스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의욕이 묻어난다.
뉴스 ‘코리아 디스 위크’를 진행하고 있는 주영애씨(27)와 박수진씨(29). 이들은 국내 뉴스 사상 최초의 ‘여성 더블 앵커’다. 4월 말경 주씨와 함께 프로그램을 이끌던 남성 앵커가 도중 하차하면서 보도국 기자 출신의 박수진씨가 공동 앵커 자리를 꿰찬 것. 그동안 ‘TV뉴스는 연륜 있는 남성 앵커와 예쁜 여성 앵커가 진행하는 것’이라 여겨왔던 사람들에게 화면을 메우는 두 사람의 모습은 꽤나 생소한 일일 터. 여성 앵커가 안경을 쓴 모습은 더욱 그렇다. 여러 모로 파격적인 실험인 만큼 뉴스를 이끄는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성 더블 앵커 체제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바로 “왜 ‘두 여성’이 뉴스를 이끌게 됐냐”는 것이다.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앵커를 맡을 적당한 남자기자가 없었다는 것. 아리랑 TV의 앵커는 그 특성상 한국어와 영어에 모두 능통해야 하는데 앵커로 발탁된 두 사람의 어학 실력이 누구보다 뛰어났고 뉴스 전달력 면에서도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한국에 관련된 뉴스를 전세계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이들의 경력은 화려하다. 주씨는 어려서부터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외국생활을 많이 해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한국 체류 기간은 초등학교 2년, 사회생활 4년을 합쳐 고작 6년이지만 한국어도 곧잘 한다. 고등학교 시절 교내 기자로 활동하며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됐다는 그는 대학에서 사회심리학과 스페인어를 전공하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아리랑 TV에 입사하기 전에는 현대종합상사 홍보실에서 1년간 해외뉴스 제작을 맡았던 경력도 있다.
주씨가 전형적인 해외파라면, 박씨는 국내파에 가깝다. LG상사의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4년 동안 독일에 머물렀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은 모두 한국에서 마쳤기 때문. 연세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며 ‘책’을 통해 영어를 배웠고 미국 퍼듀대에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기자의 꿈을 키웠다. 그는 아직 자신의 영어가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주변에선 그의 실력을 인정한다.

아리랑 TV 뉴스 진행하는 국내 최초 여성 더블 앵커 주영애·박수진

박수진씨(왼쪽)와 주영애씨(오른쪽)는 “최고의 뉴스를 만들겠다”며 활짝 웃었다.


뉴스를 진행할 때도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이 묻어난다. 밝은 표정의 주씨가 뉴스를 더욱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면 선한 웃음이 매력적인 박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뉴스에 신뢰감을 더한다. 뉴스 진행을 준비하는 모습에서도 두 사람의 성격 차이가 엿보인다. 앵커 경력 선배인 주씨가 자연스럽게 읽기 연습을 하는 반면 박씨는 꼼꼼히 원고를 외운다. 주씨가 ‘일을 즐기면서’하는 스타일이라면 박씨는 ‘치밀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 이런 대조적인 두 사람의 개성이 뉴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 사람의 뉴스가 방송된 후 주위의 반응은 어땠을까. 세번째 녹화를 마친 이들은 “아직 부족하지만 색다른 시도에 대한 반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엔 남자 앵커가 없는 뉴스라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겠냐는 주변의 우려가 많았으나 두번의 방송이 나간 후 오히려 “뉴스 진행이 신선하고 재밌다”는 평가가 돌아왔다는 것. 무거운 뉴스는 대개 남자 앵커가 전한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씨는 “무거운 내용을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라이트(light)하게 전달하면 오히려 뉴스의 재미가 더 커지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그것이 ‘여성 더블 앵커 체제’의 장점이라는 것.
“그런데 여자 앵커가 안경 쓰면 안되는 건가요?”
인터뷰 도중 안경을 쓴 박씨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최근 한 일간지가 자신을 인터뷰한 뒤 내세운 기사의 제목이 “쌍꺼풀 없고 안경 써도 실력으로 승부”였기 때문. 이전에 뉴스를 진행하던 남자 앵커도 안경을 썼는데 안경 쓴 여자 앵커가 화제가 되는 것이 의아하다는 것. 말하자면 기사 내용은 마치 ‘얼굴은 안되도(?) 실력은 뛰어나다’는 식이었지만, “안경을 벗고 지금까지 보여온 ‘예쁜’ 여성 앵커의 모습을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고 밝힌 박씨의 얼굴에는 당당한 아름다움이 엿보인다.
“여성 더블 앵커제가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걸 보니 우리사회에 남성중심주의가 아직도 뿌리 깊은가 봐요.”
두 사람은 앞으로 사람들이 여성 앵커에게 갖는 고정관념을 깨나가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 생각하고 있다. 자신들이 어떻게 뉴스를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뉴스 진행자로서 여성 앵커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금껏 기자로서 인터뷰 요청만 해오다가 인터뷰를 ‘당하니’기분이 묘하다며 유쾌하게 웃는 두 사람. 앞으로의 뉴스 진행에 대한 그들의 포부는 남달랐다.
“모델로 삼는 뉴스프로는 없어요. ‘코리아 디스 위크’는 ‘한국’이란 콘텐츠를 영어로 전달하는 유일한 종합 뉴스 프로그램이잖아요. 기존의 어떤 뉴스와도 차별화된, 외국 사람들에게 생생한 현재 한국의 모습을 알릴 수 있는 저희만의 뉴스를 만들고 싶어요.”(박수진)
“과거 외국에 방영된 한국 관련 영어뉴스에 대해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어요. 영어가 틀리는 경우도 많았고, 화면이 촌스럽게 연출되기도 했고. 전세계에 배달되는 우리 뉴스의 질을 한단계 높여 한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주영애)
마지막으로 “남자친구 있냐”는 질문에 “일에 푹 빠져 아직 제 짝을 만나지 못했다”는 그들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이에 떠밀려 결혼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일’과 ‘사랑’에 모두 좋은 결실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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