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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 주인공 송강호가 직접 밝힌 ‘흥행 비결’

■ 글·전상희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06.03 17:28:00

‘살인의 추억’이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 경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가볍게 풀어낸 것이 흥행의 원동력.
이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 송강호가 직접 밝힌 ‘살인의 추억’이 흥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영화 ‘살인의 추억’ 주인공 송강호가 직접 밝힌 ‘흥행 비결’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 제작 싸이더스)이 장안에 화제다. 개봉 22일째인 5월16일 전국 관객 3백만명을 돌파했다. 이 기록은 올 최고의 흥행작 ‘동갑내기 과외하기’보다 닷새 늦은 것이지만 관객 감소율이 완만해 ‘흥행 대박 롱런’이 확실해 보인다.
극장가에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다는 ‘넥타이부대’까지 ‘살인의 추억’을 보기 위해 몰려나오는 상황. 스크린 수도 첫 개봉할 때 51개였던 것이 63개로 점점 늘어나는 등 대박은 ‘따놓은 당상’이다. 이미 역대 흥행 최고기록인 ‘친구’의 8백만명 기록을 넘겨 한국영화 역사의 새 장을 열 것이라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이 흥행 돌풍의 주역은 두말할 나위 없이 주연배우인 송강호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인정 많은 인민군 장교, ‘복수는 나의 것’에선 딸을 납치한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복수하는 아버지, ‘YMCA 야구단’에선 구한말 열혈 청년으로 천의 얼굴을 보여준 그가 ‘살인의 추억’에선 시골 형사 박두만으로 나온다. 사건이 터지면 일단 동네 양아치들을 집합시키는 걸로 수사를 시작한다.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 인간이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육감파다. 신들린 듯한 열연으로 홈런을 날린 송강호가 밝힌 ‘살인의 추억’의 흥행 비결을 들어보자.

완벽한 시나리오
보통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쉽게 답을 주는 배우는 거의 없다. 심할 경우 한달에서 석달 가까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관계자들의 애를 있는 대로 태운다. 그러나 송강호는 ‘예스 또는 노’가 신속정확한 편. 시나리오를 받는 대로 교통정리를 확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대부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면 확답을 준다. 그런데 ‘살인의 추억’엔 그 정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읽자마자 결정을 내렸다. 한마디로 ‘필(feel)’이 확 왔다는 것.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그해 한국영화 중 최고예요(내가 주연을 한 ‘반칙왕’은 빼놓고. 으하하). 대단한 감독이 나왔구나 생각했죠.”
감독에 대한 믿음에 원작의 매력이 더해졌다. 연극 ‘날 보러 와요’가 대학로에서 무대에 올랐을 때 다섯번이나 봤다는 송강호는 봉감독이 영화로 만든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다고 한다.
“제가 먼저 전화를 했어요. 시나리오 좀 보여달라고. 아니나다를까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더라고요.”

완벽주의자들의 만남
봉준호 감독이나 김형구 촬영감독은 충무로에서도 알아주는 완벽주의자. 여기에 ‘독종’ 송강호가 더해졌으니 촬영현장엔 열정만이 넘쳐났다. 80년대 농촌을 실감나게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주요 로케이션 장소만 30여곳이 넘었다. 영화에서 언뜻 보면 한동네 같지만 사실은 전국을 돌며 찍은 것이다. 경찰서는 강원도 횡성군, 논두렁은 전북 부안군, 철길에서 박해일과 싸우는 하이라이트 신은 경남 사천에서 찍는 식이었다.
“오죽하면 우릴 보고 사람들이 유랑극단 같다고 하더라고요. 전국 곳곳 평생 가보지 못한 곳을 얼마나 누비고 다녔는데요.”
촬영 막판 에피소드 하나. 비 내리는 장면을 찍기 위해 송강호를 비롯한 전 스태프들이 진짜 하늘에 구름이 낄 때까지 기다렸다. 경기도 파주에서 한 열흘은 하늘만 보며 빈둥거렸던 것.
“화가 나지 않았냐고요? 무슨 말씀을. 오히려 신이 났죠.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거잖아요. 오히려 더 욕심이 생기던데요.”

영화 ‘살인의 추억’ 주인공 송강호가 직접 밝힌 ‘흥행 비결’

송강호는 봉감독에게 먼저 시나리오를 보여달라고 사정을 했을 정도로 ‘살인의 추억’에 애착을 보였다.


극중 화성에 새로 부임해온 김상경을 강간범으로 오인해 송강호가 가격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대개의 경우 액션 신을 찍을 때 배우들은 철저히 동선을 사전에 익힌다. ‘내가 여길 치면 네가 이렇게 막아라’ 하는 식으로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게 마련이다. 부상의 위험에 대비해서다. 그런데 송강호와 김상경은 이 위험한 장면을 사전 준비 없이 바로 찍었다.
“상반된 캐릭터의 두 형사가 처음 대면을 하는 장면이잖아요. 이후 있을 두 캐릭터의 충돌을 암시하는 장면인 만큼 리얼리티가 생명이라고 생각했죠.”
그 결과 두 배우가 논두렁으로 굴러떨어지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남기는 데 성공, 이야기 초반의 액센트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김)상경씨가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카메라 앞에서라지만 두들겨 맞다보면 불쾌해질 수도 있는데, 먼저 더 욕심을 내더라고요. 촬영 끝내놓고 기분 좋게 술 한잔씩 했죠.”

체중은 고무줄?
송강호는 2001년 ‘복수는 나의 것’을 찍을 때 약 7㎏을 뺐다. 그리고 2002년 ‘YMCA 야구단’을 거쳐 ‘살인의 추억’에선 평소 체중보다 다시 8㎏을 늘렸다. 육감에 따라 살인자를 잡아내는 시골 형사라는 캐릭터에 맞추기 위해서다. 남들은 2∼3㎏도 빼기 힘들어 애를 먹는데, 2년에 걸쳐 약 15㎏을 늘렸다 줄였다 한 셈이다. 그러나 정작 송강호는 겸손할 뿐이다.
“인터뷰할 때마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배우가 몸무게를 조절하는 건 기본이죠. 특별한 일이 아니에요. 그 캐릭터에 빠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체중이 줄거나 늘어나게 되는 것 같아요.”
벌써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 가운데 체중을 정상회복시켜 놓았다는 송강호. 왜 그를 충무로에서 ‘캐스팅 0순위’에 올려놓는지 알 수 있을 듯.



넘쳐나는 애드리브
‘살인의 추억’의 최고 미덕은 묵직한 주제의식을 유머로 풀어냈다는 점.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칙칙한 스릴러’로 생각하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은 초반 쉴새없이 펼쳐지는 송강호의 재치 넘치는 멘트에 배꼽을 잡게 된다. 김상경을 강간범으로 오인해 두들겨 패는 장면에서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 하고 외치는 건 순전히 즉석에서 생각해낸 것이다. 과학수사를 주장하는 김상경이 살인현장을 찾아내는 심각한 상황에서 “저기 뱀이 많은데”라고 엉뚱한 멘트를 날리는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봉준호 감독은 배우가 가진 모든 것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어요. ‘어, 이 장면에서 뭔가 더 재미있는 게 있을 것 같은데’ 하며 배우를 고문(?)하죠.”

9회말 투아웃에 터진 홈런
개봉 전 기자회견에서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은 9회말 투아웃에 마지막 타자로 나선 기분”이라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가벼운 코미디 영화만 흥행에 성공하는 요즘 추세에 진지한 문제의식을 다룬 정통 드라마로 승부수를 던진 기분을 절절하게 표현해낸 것. “좋은 영화라면 관객들이 반드시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던 송강호의 굳은 신념이 신들린 듯한 연기로 승화됐고, 결국 이에 관객들은 뜨거운 사랑으로 화답을 해준 셈이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여성동아 2003년 6월 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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