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반갑습니다

영화 ‘오! 브라더스’로 스크린 돌아온 이정재

“이젠 외모가 망가지더라도 캐릭터가 돋보이는 연기로 승부 걸겠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3. 06. 03

한동안 CF에서만 볼 수 있었던 영화배우 이정재가 색다른 ‘사랑’ 이야기를 담은 새 영화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작품성 있는 영화 속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기 위해 뜸들여왔다는 그. 어느새 연기생활 10년을 훌쩍 넘기고, 꽉 찬 서른살이 된 그가 영화와 사랑에 대한 욕심을 털어놨다.

영화 ‘오! 브라더스’로 스크린 돌아온 이정재

지난해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이후 CF를 제외하고는 활동이 뜸했던 영화배우 이정재(30)가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영화 ‘몽정기’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영화배우 이범수와 함께 새 영화 ‘오! 브라더스’를 촬영하고 있는 것. 지난 5월4일, 촬영장인 경기도 양평의 한 초등학교에 연한 핑크빛 셔츠에 하얀색 재킷을 입고 나타난 그는 전보다 훨씬 날렵해 보였다.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젖살이 빠졌는지 좀 야윈 것처럼 보이죠?”
지난 4월 촬영을 시작한 영화 ‘오! 브라더스’는 흥신소에서 일하며 불륜 남녀의 사진을 찍는 상우(이정재 분)와 신체가 빨리 노화되는 병인 조로증에 걸려 실제 나이는 열두살이지만 30대의 외모를 지닌 배다른 동생 봉구(이범수 분)의 우애를 그린 휴먼 코믹물. 2000년, 단편영화 ‘자반 고등어’로 주목을 받은 김용화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이범수와는 99년 ‘태양은 없다’ 이후 두번째 만남. 그는 ‘태양은 없다’에서 고약한 고리대금업자 이범수를 피해 다녀야 하는 고달픈 처지였다.
“‘태양은 없다’를 찍을 때 저는 함께 출연한 정우성씨랑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였지만 라이벌 의식도 강했어요. 정우성 한고은 커플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저와 이범수씨가 함께 나오는 장면이 영화의 다른 한 축이었기 때문에 제가 범수씨에게 우리 둘이 나오는 장면이 잘되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여러가지를 요구했었어요. 지금보다 여유가 없었던 거죠. 그때 범수씨는 저를 부담스러워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서는 이범수가 동생으로 나오지만 실제 나이는 이범수가 세살 위다. 그는 아직까지 이범수를 ‘형’이 아닌 ‘범수씨’라 부르는 단계라며 쑥스러워했지만 호흡만은 척척 맞았다. 이날 야외촬영에서도 큐 사인 두세 번만에 감독이 흐뭇해하며 ‘오케이’를 외칠 만큼 4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뛰어난 연기 호흡을 과시했다.

‘스캔들’ ‘역도산’ 놓친 건 지금도 아쉬워
영화 ‘오! 브라더스’로 스크린 돌아온 이정재

상우 역할은 흥신소에서 일한다는 점, 철 없는 젊은 날을 보내며 사회의 주변인으로 생활한다는 점에서 ‘태양은 없다’의 홍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더욱이 98년, ‘정사’를 시작으로 ‘인터뷰’ ‘시월애’ ‘순애보’ ‘선물’ 그리고 지난해 ‘오버 더 레인보우’까지 주로 멜로물에 주력했던 그가 장르를 바꾸면서 선택한 작품 속 인물이 ‘태양은 없다’와 유사한 캐릭터라는 점이 의아했다.
“홍기와 비슷한 캐릭터라 사실 부담감이 없지 않았어요. 그때와 비슷해지지는 않을까 하고. 하지만 홍기가 압구정 거리를 거니는 한심한 젊은이였다면 상우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인물이고, 이 영화에는 형제애와 가족애가 담겨있어 느낌 자체는 많이 다를 거예요.”
그가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랑’이라고 한다. 어떤 모습의 사랑이 얼마나 담겨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작품에 ‘사랑코드’가 있어야만 관심이 가요. 이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요. 그동안 했던 작품들이 멜로에 치중한 것도 일부러 멜로만 고집한 게 아니라 그러한 기준에 맞춰 작품을 고르다보니 그렇게 된 거예요.”
그는 자신의 기준에서 보면 ‘오! 브라더스’ 역시 독특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과 맥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상우는 모성애는 물론 부성애를 모르고 자란 인물이에요.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자 충격으로 엄마가 자살을 했거든요. 혼자 힘으로 어렵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 오래 전 집을 나간 아버지가 엄청난 빚을 남겨놓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죠. 상우가 봉구를 만났을 때는 아마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강한 증오심을 느꼈을 거예요. 봉구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씨앗이니까요. 하지만 나머지 빚 상속자인 그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는 봉구와 함께 있어야 하니 참 묘한 상황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만년설이 따뜻한 봄 햇살에 사르르 녹아들 듯 배다른 형제이자 원수의 자식인 봉구에게 형제애와 가족애를 느끼는 상우의 캐릭터는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는 제작진의 재촉을 받아가며 그는 자신이 맡은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생각해보니 ‘오버 더 레인보우’ 이후 1년 넘게 공백기를 가져온 그를 다시 스크린으로 이끌어낸 작품이니 오죽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이번 작품을 선택하기 전 출연하고 싶어했으나 결국 다른 배우가 캐스팅 된 작품이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물어보았다.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기자는 전에 영화사 관계자로부터 그가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전설적인 인물을 다룬 영화 ‘역도산’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이 관계자는 이정재가 ‘역도산’에 출연하기 위해 몸무게를 무려 40kg이나 늘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으나 결국 다른 배우가 캐스팅됐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가 ‘스캔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건 몰랐던 사실이다. 그는 엉겁결에 ‘스캔들…’에 대해 말을 꺼내긴 했지만 더는 말하기 난처한 듯한 눈치였다. 이미 남자주인공으로 배용준이 캐스팅되어 한창 촬영중이기 때문이다.

영화 ‘오! 브라더스’로 스크린 돌아온 이정재

전보다 날렵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이정재.


그의 한 측근은 그가 ‘스캔들’을 굉장히 욕심냈었는데 소속사의 만류로 출연하지 못했고, 그 사실을 아직까지도 아쉬워한다고 전했다. 최근 젊고 세련된 이미지의 CF 여러 편에 출연하고 있는 그가 ‘상투’를 트는 것은 그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소속사의 판단이었던 것. 그는 다시 영화 ‘역도산’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바꿨다.
“아, 맞아요. 역도산은 제가 도전해보고 싶었던 역할이에요. 그 역할을 하려면 몸을 불려야 하는데 제 친구 중에 보디빌딩 선수가 있거든요. 단기간에 몸무게를 40kg까지 늘리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대한보디빌딩협회 홍보대사를 맡았을 정도로 몸 좋기로 소문난 그가 몸무게를 40kg이나 늘리는 것을 감수하려 했다는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더욱이 그의 친구가 몸을 불릴 수는 있으나 다시 원상태로 살을 빼는 것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는 말에 다시 한번 놀랐다.


결혼 계획 묻는 질문에 ‘노코멘트’라며 묘한 여운 남겨
“예전에는 배에 꼭 ‘王’자가 새겨져야 한다는 식으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제는 캐릭터가 매력 있다면 그런 건 문제되지 않아요. 역도산은 굉장히 매력적인 역할이거든요. 일본에서는 ‘천왕 다음은 역도산’이란 말이 나올 만큼 대단한 인기를 모은 한국인이잖아요. 일본이 패망할 때 미국인 레슬러를 불러다가 맨주먹으로 날려보내 패전의 상처에 고통스러워하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단한 사람이죠. 권모술수에 능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인물인데 배우라면 도전해볼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역도산’은 제작비 50억원을 들여 싸이더스 영화사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으로 16세에 스모선수로 발탁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이 일본 최고의 프로레슬러로 군림하기까지의 드라마 같은 삶을 담을 예정이다. 최근 영화 ‘실미도’ 촬영에 들어간 설경구가 주인공으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재는 자신도 욕심은 나지만 자신보다 설경구나 송강호가 훨씬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영화에서 불륜전문 파파라치로 나오는 그는 10년째 카메라 앞에 서다보니 카메라가 낯설지 않고, 사진 찍는 것도 이제 반 베테랑이 됐다고 했다.
“사진에 관심이 많아요. 친하게 지내는 사진작가들에게 카메라를 잡는 포즈나 조작법 등을 물어가며 직접 사진을 찍어요.”
카메라가 익숙한 그도 파파라치라면 골치가 아팠을 터인데 다행히 파파라치에게 시달린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팬의 애정표현 방식이 아주 독특했던(?) 기억은 있다고 했다.
“1년 전쯤일 거예요. 한 여성팬이 제 소속사 사무실과 대학로 카페에 선물을 들고 찾아온 적이 있는데 한여름에 공포영화를 보듯 온몸이 오싹해지는 선물이었어요. 자신의 속옷 위에 피묻은 칼을 올려놓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데 그는 이미 1년이 지난 일이라며 웃어넘겼다.
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해 어느새 연기생활 10년을 훌쩍 넘긴 그는 샤프해진 외모와 달리 연기를 향한 마음가짐은 훨씬 안정되고, 여유 있어 보였다. 최근엔 담배도 끊었다고 한다. 이날 야외 촬영에는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금연초였다.
“한 1년 된 것 같아요. 담배가 맛이 없어지더라고요. 물론 지금도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가 있어요.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렸을 때는 정말 담배 한대 딱 피웠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죠.”
그의 나이도 올해로 꽉 찬 서른살이다. 어느덧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그는 “언제쯤 국수를 먹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국수라면 언제든 사줄 수 있다”고 받아친다. 그리고 “아직 다음 작품 계획은 없다”고 딴소리다. ‘알려진 그녀’와 결혼을 하는 건 맞느냐는 물음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노코멘트”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에겐 오랫동안 사귀어 온 연인이 있고, 그녀와 함께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에 대해서는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결혼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 같아요. 30대가 됐지만 인생이라는 큰 퍼즐에서 한 귀퉁이 정도를 완성한 것에 불과한 걸요. 이제 겨우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조금 알 것 같은 정도예요. 인생이란 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 같지는 않고요.”
여전히 진지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그는 6월까지 영화 촬영에 몰입한 뒤 추석 무렵 관객들에게 완성작을 선물할 예정이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