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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의 Happy Talk

“기브 앤 노 테이크”

2003. 06. 03

세상이 워낙 복잡해지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초적인 질서나 다름없는 ‘기브 앤 테이크’가 제대로 안된다. 마냥 받기만 하고 줄 생각을 안하는 이들이 자꾸 늘고 있다. 그래서 난 인생관을 ‘기브 앤 테이크’ 대신 ‘기브 앤 노 테이크’로 바꿨다. 누군가에게 뭘 준다 해도 어떤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아낌없이 던져주기로 한 것이다. 사실 누군가에게 내가 뭔가 도움이 되고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기쁨이고 행복인가.

“기브 앤 노 테이크”

제일 곤란한 일 가운데 하나가 아는 사람들로부터 각각의 흉을 들어주는 일이다. 그저 부담없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일일드라마 한편 보는 것 같을 텐데 내게 판결을 내려 달라거나 조언을 부탁할 때는 정말 난감하다. 얼마 전에도 나와 친한 이들 둘이서 함께 여행을 다녀온 다음 각각 나를 따로 만나서 하소연을 했다. 두 사람은 나 때문에 서로 알게 되었는데 코드가 맞았는지 둘이서도 자주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며 우정을 돈독히 하더니 화창한 봄날, ‘델마와 루이스’처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A가 먼저 여행을 제의해서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한다.
“아휴, 이제 그 사람이랑 다시는 여행을 못 가겠어. 내가 기분 좋게 비행기표를 샀으면 호텔비는 자기가 좀 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글쎄 계산서를 보더니 딱 반만 내는 거 있지? 그것도 백원짜리까지 철저히 셈해서. 그리고 자기가 무슨 유명인이라고 어딜 가나 선글라스를 끼고 있고, 신혼여행 온 것도 아닌데 잠자리 날개 같은 잠옷을 가져왔더라고. 그런 옷 입고 코는 또 왜 그렇게 고는지….”
상대방의 이야기는 또 달랐다.
“정말 같이 여행을 가봐야 인간성을 알 수 있다는 말 맞는 것 같아. 비행기표를 끊어줬으니 밥값은 내가 낼 수도 있어. 그렇다고 있는 동안 단 한번도 식사비를 안 내는 거 있지. 그 사람, 부자 맞아? 모처럼 제주도 왔다고 생선회에 옥돔에 실컷 주문하더니 계산할 때는 화장 고치며 모른 척하는 거야. 하도 얄미워서 호텔비를 안 내려다 반만 냈지. 그리고 자기가 무슨 문학 소녀라고 호텔에서 잠은 안자고 책만 읽는데 미치겠더라.”
많은 이들이 친구나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렇듯 서운해하고 실망하는 이유는 ‘주고받기’의 계산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10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편은 5밖에 안 받았다고 느끼고 그만큼만 보답할 때 나는 다시 돌아온 것이 3에 불과해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자신의 시간과 정열, 심지어 돈까지 들여서 최선을 다했는데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오히려 더 많이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제로 어떤 친구는 적금까지 깨서 동창에게 2천만원을 빌려줬는데 그 동창은 “필요한 돈이 3천만원인데 이왕 빌려주려면 3천만원을 빌려주지 2천만원만 빌려주니 또 다른 곳에 돈을 구하러 다녀야 하지 않냐”며 짜증을 부리더란다.

‘정확한 주고받기’가 가능한가
나도 얼마 전 비슷한 경우를 경험했다. 일 때문에 알게 된 직장여성인데 상냥하고 세련되고 유능했다. 두번째 만나는 날, “앞으로 언니라고 부를게”라고 통보하더니 수시로 전화를 걸고,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예쁜 카드를 보내기도 하는 등 살갑게 굴었다. 그런데 몇년을 친하게 지내는 동안 점점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요구가 한도 끝도 없어서였다.
“언니, 그 스웨터 너무 예쁘다. 근데 언니한테 안 어울리니까 나 줘.”
“언니, 나 요즘 영양 부족인가 봐. 몸이 허한지 나른하고 피곤해. 고기 좀 사줘라.”
그 친구가 이렇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하면 나는 무슨 약이라도 먹은 듯 판단력이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럴 게”라며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만다.

“기브 앤 노 테이크”

얼마 전엔 자기 일에 많은 도움이 될 사람인데 함께 밥이나 먹자며 낯선 사람과 함께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 우리 회사 부근인데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과 밥을 먹는데 내가 밥값을 냈다. 마침 그날 아침에 딸아이가 면바지 하나를 사달라는데도 돈 없다고 매몰차게 거절했는데 바지 두세개 값을 지불하고 나니 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 어제 고마웠다는 내용일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나 삐쳤어. 어제 언니가 그 사람이랑 말을 많이 하는 바람에 내가 할 말을 제대로 못했잖아.”
그런 말을 듣고는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말을 많이 해서 미안한데 앞으로 자기랑 말 안하고 싶어.”
이런 유치한 말로 전화를 끊으면서 그에 대한 섭섭함보다 나의 태도에 대해 반성했다.
난 그에게 ‘감사’의 말을 기대했다. 만약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하건 실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수년을 알아오면서 막연히 ‘난 얘한테 참 잘해주고 있어, 난 좋은 인간이야’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가 그가 전혀 나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생각에 이렇게 화가 나고 상처를 받은 게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주고받기다. 영수증처럼 확실한 금액이 표시되진 않지만 베푼 만큼 돌아오고 정을 주면 보답을 받고, 흘린 땀에 감동의 대가를 거둬 다독거려가며 산다.
그런데 워낙 세상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다 보니 가장 기초적이고 간단한 계산인 주고받기조차 제대로 안된다. 마냥 받기만 하고 줄 생각을 안하는 이들이 자꾸 늘고 있다. 그래서 막연히 준 다음에 받기를 기대했던 이들만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받고 “인간이 싫고 세상이 싫다”며 혐오주의자가 된다.
그래서 난 인생관을 바꿨다. 주고받기가 아니라 주고 안 받기.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대신 기브 앤 노 테이크(give and no take)로 바꾼 것이다. 누군가에게 뭘 준다면, 그건 아무런 보답이나 감사를 기대하지 않고, 아낌없이 던져주는 것이다. 내 딸에게도 그렇고 친구에게도 그렇고 뭘 준다면 그건 내가 좋아서이고 내가 기뻐서다. 사실 누군가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사탕 하나라도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기쁨이고 행복인가. 그걸 몇몇 ‘싸가지’ 없는 이들 때문에 주저하고 아낄 필요없다.
그리고 내가 사심 없이 흔쾌히 주었을 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등의 감사의 말을 듣는 것은 일종의 ‘보너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내가 줄 수 있어서 더 기뻤는데 작은 정성을 받고도 큰 은혜로 여겨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이를 만나는 것은 축복이고 행운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 내게 아름다운 마음과 정성을 보냈는데 나 역시 바쁘다거나 무딘 성품을 핑계로 모른 척한 일은 얼마나 많았을까. 다른 사람의 감사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감사란 말에 인색했는지 반성했다. 생각 하나 바꾸면 천하에 박복하던 내 팔자도 아주 넉넉하고 인복이 많게 변할 것이다.
“아무튼 나를 아시는 모든 분들, 뭐든지 일단 다 감사드립니다. 내게 보내주신 사랑이나 선물은 물론 욕과 비난도 감사드립니다. 선물은 요긴하게 잘 썼고요, 욕은 많이 먹어서 제 수명이 늘어나고, 앞으로 반성하며 더 착하게 살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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