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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색 인생

승려 출신으로 가톨릭 신자와 결혼해 사는 '보리울의 여름' 작가 이만희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조희숙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05.07 14:03:00

2년간의 출가, 파계 후 가톨릭 신자와 결혼….
한편의 영화 같지만 시나리오 겸 극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만희씨의 실제 이야기다. 영화 속 ‘보리울 마을’처럼 20년째 부부싸움 한번 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는 그의 이색 인생.
승려 출신으로 가톨릭 신자와 결혼해 사는 '보리울의 여름' 작가 이만희

박신양·전도연 주연의 영화 ‘약속‘의 시나리오를 쓴 이만희씨(49·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충무로보다 대학로에서 더 유명하다. 침체된 연극계에서 작품성과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불 좀 꺼주세요‘ ‘용띠 개띠‘ ‘피고지고 피고지고‘ 등을 쓴 최고의 흥행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최근 두편의 영화로 충무로에 도전장을 던졌다. 차인표 박영규 장미희 신애 주연의 ‘보리울의 여름‘과 양동근 정진영 주연의 ‘와일드 카드‘가 그것. 특히 4월24일 개봉한 ‘보리울의 여름‘은 이만희 작가의 독특한 이력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출신인 그는 대학교 3학년 때인 75년, 전북 금산사(‘보리울의 여름‘ 촬영지이기도 하다)로 출가해 2년 동안 산사에서 수행 생활을 한 적이 있는 승려 출신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내 임숙씨(47)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20년째 부부싸움 한번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그의 집은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처럼 불교와 가톨릭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집안에는 커다란 불상도 있고 성모마리아상도 있어요. ‘서로 껄끄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아내와 저의 종교가 다르다고 불편한 것은 없어요.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기 때문이죠. 아내를 따라 몇 차례 성당에 나가서 교리공부를 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제 종교는 불교예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출가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사진관을 운영하던 그의 집은 여덟 식구가 변변한 방 한칸 없이 지내야 했을 만큼 가난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탓에 학창시절 사찰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다는 그는, 불교에 빚진 마음이 컸다고 고백한다. 심한 폐결핵으로 군 생활에서 도중하차한 그는 군대에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해 나름대로 ‘형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고 덧붙인다.
“원래 3∼4년 있을 생각으로 산에 들어갔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내려왔어요. 산에 가면 글도 좀 쓰면서 지내리라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죠. 행자승을 하면서 글 한줄 읽어볼 시간이 없더라고요. 하지만 산사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자 그대로 있다가 절에 영원히 파묻혀 지내게 될 것 같아서 하산했어요.”
영화 ‘보리울의 여름‘은 보리울이라는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신부님과 스님이 지도하는 축구팀이 힘을 합쳐 읍내 축구팀에게 승리한다는 줄거리다. 신참내기 신부와 괴짜스님의 대결이 주요 볼거리로 영화 속 우남스님 역할을 맡은 박영규는 승려시절 그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한다.
영화 속 우남은 “술이 다 떨어졌는데 그리스도 피(포도주) 좀 얻어먹읍시다” 하고 말할 정도로 괴짜스님. 승려 시절 그도 불경 속에 소설책을 끼워넣고 읽을 만큼 자유분방했다고 한다. 첫 시사회날 그는 스승이었던 월주스님으로부터 “술 먹는 장면이 너무 많다”고 지적을 당했다고.
“금산사가 생긴 이래 머리 깎을 때 웃은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다고 했을 정도예요. 승려생활은 한마디로 ‘짬지기 공부’였어요. 전라도 사투리로 아주 혹독하다는 뜻인데 6개월 동안 행자생활을 하면서 하루 1가마의 쌀을 조리질하고 나면 어깨가 빠질 것 같았어요.”

승려 출신으로 가톨릭 신자와 결혼해 사는 '보리울의 여름' 작가 이만희

영화 '약속', 연극 '불 좀 꺼주세요' 등의 대표작을 갖고 있는 이만희씨는 시나리오와 희곡을 넘나드는 최고의 흥행작가다.


그가 부인 임씨를 만난 것은 지난 79년. 대학 졸업 후 불교잡지 편집장을 거쳐 경기도 양동의 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였다. 당시 그와 아내는 같은 중학교에서 각각 윤리와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 비친 임씨의 첫인상은 쌀쌀맞고 도도했다.
교편생활을 하던 중 희곡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미이라 속의 시체들‘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되면서 교직생활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던 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전라도의 한 섬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임씨도 전라도로 발령을 받으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결혼은 저에게 ‘황당한 사건’이었어요. 10년 동안 지독한 폐결핵을 앓았고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항상 독신으로 살 것이라고 말하곤 했으니까요. 아내도 결혼 초에 ‘저 사람이 3년이나 제대로 살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군요. 그럼에도 아내가 저와 결혼한 건 대단한 희생이라고 할 수 있죠.”
결혼 3년 만에 부인 임씨의 극진한 간호로 그의 지긋지긋한 폐결핵이 완치되었다. 그때 임씨가 맨 처음 한 말은 “나한테 미안하면 성당 한번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고. 종교가 다른 그와 부인은 서로 성당과 사찰을 찾아가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쪽이다.
평소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부인 임씨는 그와 함께 동반한 행사장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라치면 먼저 집으로 돌아갈 정도로 숫기도 없다. 하지만 때로 놀랄 만큼 대담한 면도 있어 어려운 생활 중에도 과감하게 남편을 전업작가로 들어앉히기도 했다.
“‘불 좀 꺼주세요‘라는 작품이 대학로에서 공연됐을 때였는데, 작품을 본 제 친구들이 아내한테 남편 조심하라고 농담을 건넨 적이 있어요. 부적절한 연애감정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 틀림없다고 말이죠. 그때 아내가 ‘작가라면 모든 여자를 내 여자처럼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추잡하고 더러운 세상에 ‘무공해 영화 한번 만들어보자’는 이민용 감독의 말에 의기투합해 한달 만에 ‘보리울의 여름‘을 탄생시켰다는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부산 스님과 목포 신부님이 축구하는 이야기지만 종교나 축구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에요. 평소 종교 때문에 다투거나 지역감정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두 가지만 없어도 세상이 살 만할 텐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는 지역감정이나 종교감정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3년 전부터 동덕여대에서 희곡을 강의해오고 있다. 앞으로 뮤지컬 쪽으로 영역을 확대할 생각이라는 그의 바람은 외국에 많은 개런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순수창작 뮤지컬을 우리나라 무대에서 자주 봤으면 하는 것이다.

여성동아 2003년 5월 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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