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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단독 인터뷰

인공수정 실패 등 숱한 마음고생 끝에 생후 한달된 아기 입양한 윤석화

“아이를 처음 안은 순간, 비로소 오랜 우울증과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3.05.07 11:05:00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해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마저 안타깝게 했던 연극배우 윤석화가 생후 한달된 남자아이를 입양했다. 일일위탁모 활동중 만난 운명적인 인연. ‘아이를 조용히 키우고 싶다’며 인터뷰를 고사하는 그를 어렵게 만나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아이 자랑,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공수정 실패 등 숱한 마음고생 끝에 생후 한달된 아기 입양한 윤석화

“수민이를 얻고서 첫 사진촬영이에요. 아침부터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처음엔 청바지를 입었다가 ‘이젠 아이엄마가 됐으니 차분하고 단정하게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어요.”
최근 그에게서 이렇게 환한 웃음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연극배우, 연출가, 그리고 월간 ‘객석‘ 발행인으로 한국 연극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윤석화(47). 지난 4월초 그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 바로 아이를 입양키로 한 것이다.
“SBS ‘스타 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일일위탁모를 하면서 수민이를 처음 봤어요.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그 녀석이 막 울어대며 저를 부르더군요.”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가 연출하는 ‘스타 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는 스타들이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을 찾아가 봉사하고, 그들에게 꿈을 안겨주는 프로그램. 그는 지난 3월말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이 프로에 출연, 미국 애리조나주로 입양될 여자아이의 일일위탁모를 맡았다. 일일위탁모란 아기를 양부모에게 인계하기 전까지 돌보는 사람.
생각해보면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일일위탁모로 활동하던 지난 3월20일, 그의 등엔 이번에 입양한 수민이가 아닌 생후 5개월된 주희가 업혀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등에 업고 공연 준비가 한창인 무대로, 시장으로 열심히 돌아다녔어요. ‘이 아이에겐 오늘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요. 그리곤 집에 돌아와 목욕을 시켰더니 금세 잠이 들더군요. 잠자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마치 천사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이 아이를 해외로 보내는 우리 모두 죄인이다’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어요.”
날이 밝으면 먼 나라로 떠나야 하는 아이를 보면서 연민과 미안함에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한 남자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심하게 울던 아이 품에 안자 울음 ‘뚝’, 아이 자랑 멈추지 않는 ‘보통엄마’
“주희를 데리러 갔던 동방사회복지원엔 쉰명이 넘는 아이들이 입양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유독 심하게 우는 아이가 있었죠. 선생님들이 달랬지만 소용이 없더군요. 무언가에 홀린 듯 아이를 품에 안았는데 글쎄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치는 거예요. 그리곤 제 눈을 맞추며 웃더군요. ‘그래, 네가 엄마가 그리워 이렇게 울었구나’ 순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어요.”
당시 태어난 지 2주를 갓 넘긴 그 아이가 이번에 입양한 수민이다. 그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주희를 떠나보낸 후 곧바로 복지원을 찾아 수민이를 입양할 뜻을 밝혔다.
“아이를 보러 갔더니 방실방실 웃고 있더군요. 그곳 선생님들이 ‘입양이 정해지면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고 하던데, 녀석은 제가 다시 찾아올 것을 미리 알았나 봐요.”
평소 아내가 얼마나 아이를 원했는지 아는 남편은 그가 찍어온 수민이 사진을 보며 “당신과 나를 반반씩 닮았군” 하며 그보다 더 기뻐했다고. 남편과 상의해 입양을 확정한 후 4월3일 수민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어차피 입양 사실이 알려지겠지만 그는 조용히 진행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고, 또 자신의 입양이 ‘감동스토리’로 확대 포장되는 게 싫었기 때문. 그래서 입양 사실도 시댁과 친정, 가까운 측근들에게만 알렸다.
“수민이를 데려오기 전날, 가수 노영심과 유아용품을 사기 위해 쇼핑을 했어요. 영심이가 그러더군요. ‘언니도 그렇지만 아이에게도 입양은 큰 기쁨이다. 가까운 사람들이라도 불러 수민이 환영식을 하자.’ 듣고 보니 아이에게도 그런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랴부랴 가까운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민이 환영식에 초대했다. 다음날 그의 집에 미리 도착, 수민이를 반긴 사람들은 평소 절친하게 지낸 주철환 노영심 이영애 김희애 CF감독 김규환 등과 연극 ‘토요일 밤의 열기‘ 스태프, ‘객석‘ 식구들.
“‘눈도 크고, 코도 오똑하다’며 다들 예쁘다고 하더군요. 손발이 길어서 키도 꽤 클 것 같아요. 하지만 너무 잘생긴 건 싫어요. 제가 늘 이영애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 같은 사람이야 벌써 포기하고 살지만 넌 얼마나 힘들겠니. 사람들 앞에서 늘 예쁜 모습만 보여야 하니 말야.’ 우리 수민이는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생각을 하면서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토록 원했던 아이를 얻어서인지 그의 아이자랑은 계속됐다.
“요즘 수민이는 하루에 20시간 이상 잠을 자요. 주로 새벽에 깨어있는데, 밤낮이 바뀌어 좀 힘들긴 하지만 안아주지 않아도 침대 위에서 혼자 잘 놀아요. 이제 막 생후 6주가 되었는데 엎어놓으면 벌써 고개를 가눈다니까요. ‘누워’ ‘엉덩이 들어’ ‘시원해?’ 아직은 혼잣말이지만 기저귀를 갈아주며 아이와 대화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오늘 아침에도 품안에서 잠든 것을 떼어두고 나오는데 얼마나 발걸음이 안 떨어지던지….”
그는 평소에도 입양과 미혼모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게 그의 생각.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생명에 대한 존중, 미혼모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아이의 원래 이름은 찬민이에요. 복지원의 선생님들이 지어준 이름이래요. 태어나서 처음 불린 이름인데 그 이름을 완전히 바꾸려니 미안하더군요. 그래서 수민이라고 지었어요. 빼어날 수, 옥돌 민. 아빠는 돌받침(석기), 엄마는 돌꽃(석화)인데 아이는 옥돌이네요, 하하.”

인공수정 실패 등 숱한 마음고생 끝에 생후 한달된 아기 입양한 윤석화

그는 그동안 팬들로부터 받아온 사랑을 이번 기회에 누군가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아이 자랑에 한창 빠져 있는데, 그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한 그가 “어머님이에요”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예, 어머니. 아이 잘 크고 있어요. 김박사(남편)도 잘 있고요. 이번 주 안에 제가 수민이 데리고 찾아뵐게요. 네? 어머니께서 오신다고요. 그래주시겠어요. 수민이가 외출하기는 아직 어려서….”
무대 위에선 카리스마 그 자체지만, 전화받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며느리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께는 미리 말씀을 드렸어요. 사실 그동안 눈치도 보이고 했는데 살다보니 저도 배짱이 좀 생긴 것 같아요. 상의라기보다는 일종의 통보였죠. ‘나이 드신 분들은 입양에 대해 그리 반겨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과 달리 두분 모두 너무나 기뻐하셨어요.”
사실 그동안 아기를 갖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과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지난 94년 결혼이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받았다. 부부는 용기를 내 인공수정까지 시도했지만 그것마저 성공하지 못했다. 배우로서는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여자로서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제가 아이문제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강원룡 목사님께서 그러셨어요. ‘당신은 배우로서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아이문제는 이쯤에서 정리해라. 아이는 여자라면 다 가질 수 있지만 당신의 재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저를 위로하려고 한 말씀이었지만 갑자기 설움이 북받치더군요. 그래서 ‘목사님의 딸에게도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냐’고 따지듯이 말했죠. 그랬더니 단호하게 말씀하시더군요. ‘내 딸이라 할지라도 똑같이 말했을 것’이라고요.”
입양 소식을 전하자 강목사는 “장하다.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하며 축복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민이를 본 후 그는 입양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요즘 한창 공연중인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준비하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
“제가 연극무대에 뛰어든 이후 작품 때문에 운 적이 딱 두번있어요. 지난 75년 ‘꿀맛‘이란 연극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그리고 이번에 연출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처음 공연한 날이에요. 사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고 외로웠거든요.”

인공수정 실패 등 숱한 마음고생 끝에 생후 한달된 아기 입양한 윤석화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그는 이번 기회에 국내입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예술가들에게 흔히 있는 조울증에, 일이 욕심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생긴 무력감까지 더해져 근 6개월 동안 심하게 마음고생을 했던 그는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입양해 잘 키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고 한다. ‘더 좋은 시기에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고.
“쉰살이 넘으면 입양하려는 계획이 있었어요. 수민이처럼 갓난아이말고 다섯살쯤 되는 여자아이를 생각했죠. 하지만 부모 자식이 되는 인연은 따로 있나봐요. 복지원에서 수민이를 보고 온 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제가 아이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저를 구원한 거예요.”
그의 입양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용기와 사랑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장하다’는 이야기, ‘당신을 보니 자신이 부끄럽다’는 반성의 글도 보인다. 한편, ‘아이가 커가면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에 힘겨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러 주입시킬 필요도 없지만 굳이 숨겨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요. 숨긴다고 숨겨질 문제도 아니고요. 전 우리 수민이가 커서 ‘전 입양아예요. 우리 엄마가 저를 사랑으로 잘 보살펴주어서 이렇게 건강하게 컸어요’하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열심히 뒷바라지할 것이고요.”
그는 수민이를 입양하며 ‘동방사회복지원’의 국내입양 홍보대사를 맡았다. 그동안 연극협회, 배우협회 등에서 대표직을 권유받았지만 한사코 거부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국내입양 전도사로 나선 것이다.
“어떤 일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선다는 것은 많은 책임과 노력을 요구하잖아요. 그런 게 부담스러워 지금까지 조용히 지냈는데 입양문제만큼은 제대로 해결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민이를 제 아들로 받아들이면서 제가 느꼈던 기쁨, 입양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지난해 총 4천59건의 입양 중 국내입양은 1천6백94건으로 전체의 42% 수준. 2001년 1천7백70건에 비해 오히려 줄었고, 최근 3∼4년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아무리 더운 바람이 부는 사막일지라도 그곳에도 식물이 살아갈 만한 옥토는 있어요. 나무를 옮겨다 그곳에 심으면 잘살 수 있죠. 그러나 더운 나라의 나무를 추운 나라에 가져다 심으면 못살잖아요. 전 입양도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나라에서 키워야 하지 않나요?”
인터뷰 전날에는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수민이를 보고 싶다’며 자정이 다된 시간에 들이닥쳤다고. 주원성, 최정원, 신인 박건형 등은 서로 아이를 안아보겠다며 아우성을 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칭얼대던 아기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방긋방긋’ 웃으며 눈을 맞추더라고 한다.
무대 위에서나 연출을 맡을 때나 깐깐하기로 소문난 윤석화. 그의 육아법은 어떨까.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제가 좀 덤벙대는 편이거든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리 깐깐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뭘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원하지 않는 것은 시키지 않을 것이고요. 대신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가지, 피아노만은 꼭 가르치고 싶어요. 아이가 피아노를 치면 그 옆에서 첼로를 켜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 수민이 위로 여자아이를 한명 더 입양해 키울 생각이라고 한다. 수민이에게서 입양아라는 혼란을 덜어주고, 형제 많은 집안에서 자라면서 느꼈던 ‘형제애’를 아이들에게도 주고 싶다고.
“수민이는 제가 한참 힘들 때 저를 구원해준 아이예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 생명일지라도 이 아이 앞에서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극이 망하고,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극한 상황이 오더라도 제겐 아이가 있잖아요. 수민이를 위해서라면 생선광주리라도 머리에 일 수 있어요.”
요즘 그는 봄꽃이 지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수민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꽃구경’을 나서고 싶은데 아이가 너무 어려 엄두를 못 낸다는 것.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모자를 시샘하듯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따스한 봄날이다.

여성동아 2003년 5월 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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