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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튀는 남자

춤추며 커피 팔아 이웃사랑 실천하는 총각마담 이형호

“시민들이 즐겁고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된다면 늙어서도 이 일을 계속 해야죠”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김정미 ■ 사진·박진관

입력 2003.04.15 10:22:00

울산 태화강변 사거리에서 엽기적인 복장을 하고 온갖 종류의 춤을 추며 커피를 파는 ‘길카페 총각마담’ 이형호씨.
그러나 그의 튀는 모습 뒤에는 누구보다도 가슴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
부모와 어린 조카를 돌보면서도 많지 않은 수입을 쪼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이씨의 별난 인생.
춤추며 커피 팔아 이웃사랑 실천하는 총각마담 이형호


울산시 남구 신정동 태화강변 앞 사거리.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어느 유명 관광지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진다. 수줍은 새신부마냥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은 사람이 갑자기 차들이 멈춰선 도로 위를 질주하듯 뛰어들며 현란한 디스코를 선보이는가 하면, 코맹맹이 소리로 “언니∼, 오빠∼” 하며 아침운동 나온 아줌마·아저씨들의 손을 이끌며 블루스에서 지루박까지 춤이란 춤은 죄다 선보인다. 일명 길카페 총각마담의 댄스퍼레이드다.
1년 365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태화강변 차도에서 춤을 추며 커피를 파는 이형호씨(35). ‘길카페’ 경력 8년째인 그는 웬만한 커피전문가 부럽지 않은 손맛을 자랑함은 물론, 춤 솜씨 또한 전국노래자랑 골수 바람잡이로 명성을 날릴 만큼 수준급이다. 매일 아침 운동을 즐기는 울산시민에서부터 이곳 사거리를 지나는 출퇴근 운전자들, 그리고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그의 별난 커피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총각마담의 길카페’는 울산 최고의 명물로 통한다.
스스로 ‘미치광이 푼수’라고 말하는 그가 울산 명물로 손꼽히는 이유는 비단 ‘잘 놀고, 잘 웃기는’ 그의 푼수같은 행동 때문만은 아니다. 칠순 노모와 어린 조카들을 위해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시작한 길카페지만 그곳엔 확고한 그만의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는 뭇사람들의 손가락질마저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저의 망가진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깔깔대며 즐거워할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도움이 될 때 비로소 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는 적금 통장을 많이 갖고 있다. 길카페 커피값은 한잔에 1천원.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그렇게 열심히 춤추고 쫓아다니며 올리는 하루 평균 매상은 커피 50잔, 약 5만원 정도다(물론 주말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그보다 몇배 웃도는 매상을 올린다). 그리 많지 않은 벌이지만 그는 결코 어길 수 없는 철칙 하나를 세워두고 있다. 바로 수입이 좋은 날이든 그렇지 못한 날이든, 매일 번 돈의 절반을 꼬박꼬박 저금하는 것.
통장 이름과 그 의미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모두 별난 것뿐이다. 7천만 국민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2006년 11월 5년 만기 예정으로 7천원씩 저금해 만든 ‘7천만 통일저축’, 불우이웃을 돕는 천사가 되고 싶어 매일 1천4원씩 저축해 2004년 3년 만기 예정으로 만든 ‘1천4만원 천사저축’, 경찰을 위한 ‘112저축’, 소방대원을 위한 ‘119저축’, ‘태화강변사랑저축’, 첫잔 첫 마수 기념으로 만든 ‘5백원 마수걸이저축’, 거기다 울산을 열렬히 사랑해 매일 1천10원씩 저축해 만든 ‘열렬이 저축’ 등 다양하다.
보통 사람들의 저축 방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별난 예금통장의 돈은 모두 만기가 되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별난 저축통장의 이름에 관심을 갖는 것과 달리, 그는 매일매일 은행에 가는 일에 더 큰 책임감과 가치를 매긴다.
“결국 제 자신과의 싸움이죠. 한치의 게으름도 용서치 않는…. 처음에는 농협 직원들이 장난치냐며 버럭 화를 내더군요. 10원짜리 하나까지 일일이 계산해야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분들이 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그는 이미 지난 한일월드컵 때도 2년간 매일 2천20원씩 저금해 1천일 동안 모았던 2백2만원을 울산시에 내놓았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만기가 끝난 ‘열렬이 저축’을 울산 사랑의열매 단체에 성금으로 기부했다.

춤추며 커피 팔아 이웃사랑 실천하는 총각마담 이형호

울산시 태화강변 사거리에 가면 이형호씨의 재미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울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기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그의 고향은 전북 고창으로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족 모두 빚쟁이로 몰려 졸지에 고향을 등져야만 했다. 돈벌이를 위해 가족들이 겨우 찾아든 곳이 바로 이곳 울산이다. 그 무렵, 설상가상으로 큰형님 내외까지 집을 나가게 되어 본의 아니게 어린 조카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60만원의 월급으로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조카들까지 함께 생활했으니, 정말 하루하루가 비참함 그 자체였죠. 직장생활을 해도 역마살 때문인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기 일쑤였으니까요.”
궁하면 통하는 법인지, 우연히 시장통을 지나다 마주친 리어커 커피장수의 모습이 ‘쿵’하며 가슴을 때렸다. 그 길로 커피 봉지를 들고 나선 길카페 장사. 보기만큼 그리 호락호락한 장사가 아니었다. 시장 아주머니들의 텃세가 워낙 심한 터라 ‘젊은 놈이 뭐 할 게 없어서’라는 욕설과 함께 물벼락 맞기가 일쑤였다. 그야말로 커피 파는 것은 고사하고, 몸이라도 성하게 들어오면 그것만으로 족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사나이 자존심에 그대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 고심 끝에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춤과 노래를 곁들인 지금의 길카페 전략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춤과 노래는 자신 있던 터라 자신의 끼를 펼쳐보이는 데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결과는 대성공. 그러나 하루하루 매상이 많아질수록 경찰서에 드나드는 일 또한 잦아졌다.
4월 부처님 오신 날 사찰 앞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커피를 팔다 몰매를 맞기도 하고, 풍기문란·고성방가 등을 이유로 경찰에 쫓기기가 수십번이었다(그래서 그는 당시 경찰관들을 괴롭힌 데 대한 사죄의 마음으로 ‘경찰을 위한 112적금’을 붓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 특히 조카들에게 가장 미안했죠.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별난 삼촌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요즘엔 그 녀석들이 오히려 더 좋아합니다. 삼촌이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매스컴에도 나오고 하니까 친구들이 사인까지 부탁한다며 너스레를 떨곤 합니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으로 언제까지 길카페를 하며 늙어갈 수만도 없는 노릇. 넌지시, 작은 가게라도 하나 얻어 정착하고 싶은 욕심이 없냐고 하자 그의 대답은 단호하다. “절대 노”.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맘껏 춤을 출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미치광이 아니냐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는 것. 그의 꿈은 고아원을 만들어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다.

여성동아 2003년 4월 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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