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DIY 작업도 함께 한다는 남편과 네 아이가 그의 가장 큰 후원자들이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주부 배은주씨(40)를 만나러 갔을 때 마침 배씨는 아이들과 함께 새로 만든 CD장에 천연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페인트 좀 그만 엎질러!” “나도 하고 싶단 말이야.”
아이들은 엄마를 흉내내며 페인트칠을 해보지만 CD장에 바르는 페인트보다 페인트 병을 자꾸만 쓰러뜨려 버려지는 페인트 양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의 시선은 새로 탄생될 CD장에 쏠려 있다.
“누구나 일상이 지루해서 늘 일탈을 꿈꾸기 마련인데요. 저는 DIY(Do It Yourself) 가구 만들기를 통해 제법 멋진 일탈을 실현하고 있어요.”
배씨는 DIY 마니아 주부. 이번에 아이들과 함께 만든 CD장은 물론이고 집안에 놓인 시계, 액자, 책상, 의자 모두 배씨가 만든 작품이다. 도무지 평범한 주부 혼자 뚝딱뚝딱 만든 것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디자인도 독특하고 튼튼해 보인다.
“원래 무엇인가 만들어보겠다는 욕망이 강했지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참고 참다가 지난해에는 이 욕망을 반드시 분출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생겼죠. DIY 가구 만들기를 무척 배워보고 싶었거든요. 우선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부터 뒤지기 시작했죠.”
배씨는 인터넷 검색엔진에 들어가 ‘DIY’라는 검색어를 친 후, DIY 관련 사이트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러던 중 ‘반쪽이와 함께 뚝딱뚝딱 DIY(www.banzzogi.net)’라는 사이트를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반쪽이 공방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DIY 목공교실’을 운영하더라고요. 당장 회원으로 가입했죠. 총 2개월 과정인데 처음 4주 동안 기본적인 공구 사용방법과 설계 기술을 배웠고요. 나머지 4주는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보는 실기 시간이었어요.”
지난해 1월 배씨가 목공교실에 다니며 처음 만든 작품은 아이들의 책상이다. 직접 디자인을 구상하고 설계도면을 그린 후 나무에 못질까지 했다.
“제가 만들었지만 ‘나한테 이런 재주가 있었나!’ 하고 놀랄 정도로 기분이 좋아요. 아이들도 학교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면 ‘이 책상 엄마가 직접 만들어줬다’고 자랑하죠. 아이 친구들도 엄마가 직접 만들어줬다는 말에 굉장히 부러워하더라고요.”
배씨는 집에서 쓸 가구뿐만 아니라 친척이나 친구들의 특별한 기념일에도 손수 만든 DIY 인테리어 소품을 선물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에게 직접 만든 침대와 액자, 시계를 선물했더니 틈만 나면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무척 좋아해요. 친구들 생일에도 제가 직접 나무로 만든 액자나 시계를 선물해요. 받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이나 색을 다양하게 해서 한껏 멋을 부리니까 모두들 좋아하죠.”
배씨는 DIY 소품을 새로 만들면 작품 사진을 찍어 인터넷 동호회 ‘반쪽이 공방’에 올려놓는다. 공방 가족들은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데, 배씨도 공방 가족들이 올려놓은 DIY 관련 글과 사진을 보며 자신의 작품 제작에 많이 응용하는 편이다.
“정말 특별한 디자인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을 때는 외국 가구 사이트를 검색해봐요. 국내 사이트와는 다른 뭔가 독특한 분위기의 가구 디자인이 많거든요. 한번은 외국 가구 사이트에서 본 의자에서 힌트를 얻어 여름용 의자를 만들어서 선물했는데요. 받으신 분이 무척 좋아하셨어요.”
배씨가 워낙 감각적으로 가구를 잘 만들다보니 배씨의 솜씨를 익히 잘 아는 친구들은 재료 값만 주고 배씨가 만든 책상이나 의자를 사가기도 한다.
“남편이 일하면서 알게 된 외국인에게 책상을 만들어 드렸는데 ‘창업을 해보라’며 많은 격려를 해주시더군. 남편도 덩달아 칭찬해주면서 제 사기를 많이 북돋아줬어요.”
남편 최병권씨(39)는 처음 배씨가 DIY 가구 제작법을 배운다고 했을 때 ‘그런 것을 왜 배우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정작 배씨가 목공교실에 드나들며 살림살이를 하나씩 만들어오기 시작하자 불평 한마디 없이 토요일과 일요일 휴식을 반납하고 유리(10), 선묵(8), 수연(6), 우석(3) 네 아이를 돌봐주며 열렬한 후원자를 자처했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긴 시간에 배씨는 목공교실을 찾아 샌드페이퍼로 정밀하게 나무 가공을 하고 전동드릴로 못도 박으면서 마음껏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
배씨 부부는 서강대학교 독문과 같은 학번 동기로 처음 만났는데 나이는 남편이 한살 아래다. 학과 연극을 준비하면서 서로 가까워졌고 남편의 군복무 중에 결혼식을 올렸다. 요즘 한 가정에 아이 한 두 명 키우는 세태와 비교해보면 배씨 부부는 꽤 많은 아이를 낳은 셈인데 배씨는 넷째아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 5개월이나 지나서야 집안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임신 사실을 안 시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침통한 표정이셨고 친정어머니는 ‘생기는 대로 다 낳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하셨어요. 친구들도 ‘대책 없이 용감하다’고 놀라워하고요. ‘자기 밥그릇은 다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 저희 부부의 신조예요(웃음). 넷째를 키워보니까 이제서야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방법을 확실히 알 것 같아요.”
네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꼼짝없이 발목이 묶일 것 같았던 배씨지만 역설적으로 아이가 넷이나 되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DIY 마니아가 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가급적 외출을 줄이고 인터넷에서 해결책을 많이 찾아요. 시집 올 때 사온 식탁이 있는데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네 다리를 자르고 바퀴를 달았죠. 아이들 때문에 꼼짝달싹 할 수가 없으니까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서 바퀴를 구입하게 됐죠. 아이들이 크니까 공간활용을 하기 위해 가구배치를 자주 바꾸게 되는데, 바퀴를 다니까 여러모로 실용적이에요. 이때부터 DIY가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배씨는 DIY에 이력이 붙어 거실 벽이나 방문의 페인트칠도 본인이 직접 한다. 페인트 칠을 잘못해 동글동글하게 엉겨붙는 것을 ‘눈물’이라고 하는데 새로 페인트칠한 방문에는 그런 눈물이 한 방울도 없을 만큼 페인트칠에도 능숙한 그다.
“봄이 됐으니까 마당에 점토벽돌을 깔아서 색다른 분위기를 내보려고요. 인터넷으로 품질비교, 가격비교를 다 끝냈으니까 이제 시공만 하면 돼요. 또 싱크대 상부장과 하부장도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아직은 아이들에게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라 DIY 창업은 힘들 것 같다는 배씨. 대신 집에 있는 차고를 개조해 개인 공방으로 활용하면서 조금씩 주문제작을 해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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