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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최미선 기자의 여행스케치

‘아트센터 마노’에서의 아기자기한 예술문화 체험

유리공예, 금속공예, 남사당패 놀이…

■ 글·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사진·홍상표

2003. 03. 03

자연 속에 파묻혀 ‘순수하고 소박한 아트’를 꿈꾸고 있는 경기도 안성의 아트센터 마노. 거꾸로 선 집과 옆으로 누워 있는 집, 별난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이색적인 곳에서의 신선하고 풋풋한 체험.

‘아트센터 마노’에서의 아기자기한 예술문화 체험

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아트센터 마노는 참 재미있는 곳이다.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아늑한 느낌을 주는 가운데 연못이 있고 잔디로 뒤덮인 구릉엔 군데군데 아마추어 작가들이 만든 개성있는 조형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어디 그뿐인가? 이곳의 백미는 ‘거꾸로 선 집’과 ‘옆으로 누운 집’이다. 뾰족한 삼각지붕이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땅을 짚고 있고 편편한 바닥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형국이다. 거꾸로 선 집 바로 옆에는 그에 뒤질 새라 창문도 지붕도 바닥에 기대어 잠을 자는 모습으로 길게 누워 있는 집이 있다.
그 모습을 보니 기자 역시 집의 방향에 따라 고개가 저절로 움직여지면서 세상을 거꾸로 보고 옆으로 보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자세를 취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 아트센터 마노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렇듯 별난 첫인상을 심어준다.
‘거꾸로 선 집’과 ‘옆으로 누운 집’이 눈길끄는 예술랜드
서울에서 자동차로 불과 한시간 남짓 거리의 안성 하면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도시를 떠올리겠지만 아트센터 마노만큼은 예외다.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오른편으로 대덕터널과 비봉터널을 지나 아트센터 마노 이정표를 따라 비포장도로로 진입하면 어느새 도심 풍경과는 사뭇 다른 한적한 ‘시골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길 양옆에는 배나무 과수원이 들어서 있어 키 작은 나무들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고 드문드문 들어서 있는 양철지붕의 낮은 집들도, 자동차 바퀴 밑으로 덜컹거리며 전해오는 울퉁불퉁한 흙길도 정겹게 다가온다. 톨게이트에서 아트센터 마노까지는 불과 15분 정도의 거리이건만 그안에 자연의 맛이 진하게 배어 있다.
아트센터 마노 안에는 방갈로도 마련되어 1박2일 코스로 지내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다락방 같은 느낌의 넓은 방에 놓여 있는 독특한 분위기의 침대와 테이블, 중세 유럽 옥탑방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두툼한 나무 문, 거친 질감의 창호지 문에 달린 문고리… 저마다 여느 숙박시설과는 다른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또한 투박한 모습의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사이에 두고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는 방갈로의 모습은 마치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이 ‘사고를 치고’ 잠시 숨어 지내던 시칠리아 섬 시골마을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트센터 마노’에서의 아기자기한 예술문화 체험

잔디로 뒤덮인 구릉 곳곳에 놓여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조형물들.


이곳에 오면 뭐랄까 하룻밤 지내면서 단순히 놀다 가는 분위기는 아니다. 인생이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굳이 표현한다면 ‘준비된 예술의 집’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유리공예와 금속공예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또한 안성시에서 운영하는 남사당패의 ‘본거지’가 있어 주말이면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남사당패 공연을 직접 볼 수도 있다.
입구에 세워진 ‘거꾸로 선 집’의 정체는 바로 갤러리. 젊은 작가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이곳 전시관에는 무명 작가들의 작품이 늘 전시되어 있다. 주로 이름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유명 갤러리들은 일반인들이 선뜻 들어가기도 그렇고 용기를 내서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올라치면(작품이 좀 비싼가?) 왠지 뒤통수가 따가운 게 영 부담스럽지만 이곳에선 그럴 염려가 전혀 없다. ‘끼’는 많지만 가난한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조금이나마 기회를 주어 작가로서의 발판을 키워주고 싶다는 이곳 주인 심종섭씨(48)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배려 때문이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돈이 없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지 못하고 있죠. 그러다보니 이 친구들 작품은 대부분 먼지만 잔뜩 뒤집어쓴 채 구석진 곳에 파묻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있거든요. 예술작품이라는 게 유명하냐 아니냐, 작품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내가 봐서 좋고 남들이 봐서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그림 보러 갈까?’ 하며 가족끼리 손잡고 나가는 집은 몇 안돼요. 근데 우리집에 와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전시장도 둘러보다 마음에 있는 작품을 사면 사는 사람도 좋고 작가들에게도 힘이 되는 거죠.”
아울러 이곳에는 유리공예와 금속공예를 하는 젊은 작가들이 항상 작품을 만들고 있어 일반인들도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대장간 같은 작업실에서 눈치볼 것 없이 뚝딱뚝딱 망치를 두들겨 보기도 하고 유리를 녹여 액세서리 소품을 만들다보면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즐거워한다고.
기자 역시 갓난아기 손바닥만한 쇳덩이를 놓고 망치로 꽝꽝 두들기다보니 스트레스가 절로 풀리는 듯했다. 취향에 따라 눈독을 들이는 분야가 다르겠지만 기자는 자꾸 유리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마침 핸드폰 고리가 망가진 터라 그에 도전하기로 했다.
일단 유리를 녹일 불을 붙이자 빨간색이 아닌 파란 불꽃이 맹렬한 기세로 뿜어댄다. 그때 유리공예 작가가 투박한 안경을 내민다. 그걸 쓰니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벗을 수도 없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보안경을 쓰지 않으면 ‘작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소 ‘스타일’은 구겨져도 안전을 위해선 반드시 써야지 별수없다.
가늘고 긴 투명 유리봉을 빙글빙글 돌리며 불에 녹이니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녹아내리면서 동글동글 맺혀지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그위에 색깔있는 유리봉을 녹여 붙이니 투명 유리 알맹이 안에 스며들면서 야릇한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어릴 적 숱하게 가지고 놀던 동글동글한 구슬을 생각하면 된다. 유리알이 대추만한 크기만큼 됐을 때 칼로 꾹꾹 눌러 납작하게 한 후 나뭇잎 모양을 만들었다(자세한 과정을 어찌 다 설명하랴! 현장에 가면 기자처럼 초보자도 쉽게 도전할 수 있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핸드폰에 끼울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 완성. 세상에서 단 한개밖에 없는 핸드폰 고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 이렇게 만들어진 핸드폰 고리나 목걸이 등은 개당 1만원 정도에 판매된다. 하지만 이렇듯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랴.

유리공예도 재미가 쏠쏠하지만 주부들이라면 이곳에서 운영하는 그림학교를 권하고 싶다. 집에서 살림만 하다 어느날 문득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주부들도 그렇고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듯. 집안일을 하다 짬이 나면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기분전환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 속에 파묻혀 그림을 그리다보면 어느새 주부 아닌 예술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인생이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는 주부들이 많다는 것. 하긴 전면이 유리창으로 꾸며진 화실에서 바로 앞에 놓인 연못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다보면 그렇듯 ‘기분 좋은 착각’을 하기에 충분한 분위기다.
그림학교의 비용도 그렇게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2~3시간 정도 그림을 그리는데 한 달에 드는 비용은 10만원. 그림지도도 받으며 습작을 하면서 보통 6개월 정도 지나면 ‘이제 그림 좀 그리는구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 그림으로 전시회도 하고 전시회가 끝나면 내가 그린 그림을 집에 걸어놓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참 뿌듯한 일이다.
‘아트센터 마노’에서의 아기자기한 예술문화 체험

가족들끼리 오손도손 모여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비닐하우스와 작품전시실.


이곳의 재미가 어디 이뿐인가? 2만평에 이르는 잔디 구릉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별난 작품들이 거꾸로 서 있거나 누워 있는 집에 버금갈 만큼 눈을 즐겁게 해준다. 늘씬한 여자 다리를 뒤집어 놓은 조형물이 웃음을 자아내고 알루미늄 철사와 유리를 섞어 만든 퓨전 작품이 색다른 느낌을 주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흉내내어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작품도 눈길을 끈다. 그안에 넓은 연못도 있고 가끔 다람쥐와 노루도 볼 수 있다니….
이 잔디밭에서 가끔 결혼식도 열리는데 이때는 뭔가 색다른 결혼식을 치러주기 위한 주인의 또다른 배려(?)로 별난 결혼식이 펼쳐진다. 여느 곳처럼 하객들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신랑신부가 입장하는 코스를 따라 하객들을 두 줄로 나란히 세워 신랑신부가 그 사이를 통과하게 한다는 것. 번거로울 것 같지만 하객들도 좋아해 그 원칙은 고수할 예정이라는 주인. 아울러 결혼식을 마친 후 ‘다음 타자’를 위해 서둘러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일 없이 소풍 온 것처럼 느긋하게 즐길 수 있어 이곳에서의 결혼식은 그야말로 ‘따봉’이지 싶다.
아울러 주말이면 어떤 형태로든 가족 이벤트를 만들어 남사당패 공연과 함께 야외에서 영화관람도 할 수 있게 하고, 바비큐 파티도 벌이고, 캠프 파이어를 통해 가족간의 사랑을 다지는 데 일조를 하고 싶다는 아트센터 마노(031-6767-815). 파릇파릇한 새봄의 향기가 물씬 풍겨질 무렵 가족끼리 어울려 한번쯤 찾아가 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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