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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과 기관지 기형으로 사경 헤매는 5개월 아기 둔 엄마 임정님씨

“아직 이름도 없는 우리 아기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안소희 ■ 사진·정경진

2003. 02. 28

태어날 때부터 심장과 기관지에 이상이 있어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한 채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생후 5개월 된 아기가 있다. 경황이 없어 아직 아기 이름도 짓지 못한 상태. 게다가 엄마 임정님씨 자신도 장애인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남편은 교통사고로 6개월째 투병중이다. 장애의 몸으로 차가운 병원 바닥에서 밤을 새우며 어린 생명을 지키는 임씨의 애끓는 모정.

심장과 기관지 기형으로 사경 헤매는 5개월 아기 둔 엄마 임정님씨

임정님씨(44)와 아직 이름도 없는 임씨의 ‘아기’(생후 5개월)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병동에는 얼굴 가득 수심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대기실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오전에 한차례 진행되는 30분간의 면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안내 방송과 함께 병실 입구가 열리며 면회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손을 소독하고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해졌다. 그 안타까운 표정들 속에 임씨가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임씨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집 앞 구멍가게에 나온 것 같은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병원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기 때문이다.
임씨와 함께 들어선 병실엔 그야말로 연약하기 그지없는 작은 생명이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임씨가 “우리 아들, 잘 지냈어?”라며 말을 걸어도 약에 취해 잠만 잘 뿐이다.
“태어날 때 몸무게가 2.1kg이었는데 지금은 2.3kg이에요. 키는 컸는데 몸무게가 늘지 않아 더 연약해 보여요.”
아기의 다리는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에 불과하고 팔은 믿기 어려울 만큼 가냘프다. 하루 10g의 분유를 식도에 연결한 관을 통해 먹여보지만 혼자 숨도 쉴 수 없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아기에게는 소화하기 어려운 양이다. 더구나 치료를 위해 계속 잠을 재우고 있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더욱 떨어진다고 한다. 태어난 지 5개월, 그 동안 아기는 이 가녀린 몸으로 두 차례의 큰 수술을 감당해야만 했다.
임씨가 아기를 낳은 것은 지난해 9월. 예정일보다 한달 빠르게 태어났다. 그때만 해도 유난히 작아 1주일간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긴 했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퇴원하고 난 후, 아기가 울 때 얼굴이 심하게 파래지곤 해 큰 병원을 찾게 되었다.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심장과 기관지의 선천적 기형이었다.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세개 뚫려있고, 기관지는 정상에 비해 지나치게 좁아서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었다.
곧바로 수술준비에 들어갔다. 태어난 지 두달 만에 심장의 구멍을 막는 수술을 했고, 그후에도 비대해진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 현재는 기관지에 관을 삽입하여 기형을 바로잡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일단 생명에 지장을 주는 심각한 기형은 고쳐진 상태지만 아기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인공호흡기로 가냘픈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다. 더구나 기관지의 기형은 완전히 치료된 것이 아니다. 기관지에 심어놓은 관을 평생 주기적으로 교체해주어야만 살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가 없다는군요. 언제 어떻게 위급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곁에 있어야 해요. 전 그저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하지만 가끔 욕심이 나기도 하죠. 한번만이라도 중환자실을 떠나서 일반병동으로 내려가 보는 게, 그게 제 소원이에요.”
남편은 교통사고로 6개월째 투병중 임씨가 병원 바닥에서 먹고 자며 아기 보살펴
임씨는 애써 밝게 웃어 보였다. 환한 미소를 가진 임씨지만 그의 삶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임씨는 세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다. 20년 전 남편 권씨(47)를 만나 결혼을 했고 전주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남편 권씨는 평생 건설업에 종사했지만 20년 막노동에 얻은 것은 허리디스크뿐이었다. 1년이 넘게 허리디스크 때문에 일을 못하다가 작년 7월에야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설상가상이라고 일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2개월 전이었다. 그후 지금까지 6개월이 넘도록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정강이뼈가 으스러지고 인대가 끊어져 회복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심장과 기관지 기형으로 사경 헤매는 5개월 아기 둔 엄마 임정님씨

태어나자마자 심장과 기관지 기형으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임정님씨의 심정은 막막하기만 하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고민 많았어요. 남세스러운 건 말 할 것도 없고 우리 형편도 어려웠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도 생명인데 포기할 수가 없더군요. 너무 민망해서 남편과 저만 알고 있었어요. 임신중엔 제가 임신중독증 때문에 온몸이 부었었는데 그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임신한 사실조차 몰랐어요. 같이 사는 딸에게도 숨겼으니까요. 게다가 아기 낳기 전에 애들 아빠가 사고를 당해 힘들었죠. 출산이며 산후조리며 다 저 혼자 해야 했어요.”
그렇게 어렵게 얻은 막둥이가 선천적 기형이라니 그때 임씨의 심정은 ‘딱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정말 아기와 함께 죽을 생각도 많이 했어요. 제가 욕심이 과해서 아기한테도 고통을 주는 게 아닐까 후회도 많이 했죠. 저 스스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그런 고통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는데….”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임씨는 오전에 30분, 오후에 30분, 하루 두 차례 아기 얼굴을 보기 위해 하루종일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중환자 간호자 대기실이 그의 숙소다. 숙소라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차디찬 시멘트 바닥 한켠에 비닐 장판을 깔아놓은 것이 전부. 밥은 보름에 한번씩 전주에서 해와 냉동실에 한꺼번에 넣어놓았다가 끼니 때마다 꺼내먹는다. 어려운 처지에 밥 한끼 값이 아쉽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주위 사람들이 안타깝다며 밥을 사주기도 하고 반찬을 챙겨주기도 한다.
2년 가까이 일정한 수입도 없이 생활을 꾸려야 했던 임씨에겐 감당 못할 카드빚만 남아있는 상태다. 병원 치료비로 생긴 빚만도 3천만원에 이르고 앞으로 들어갈 치료비 또한 3천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이렇듯 힘겨운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임씨에게 최근 기쁜 소식이 있었다. 집이 없어 비닐하우스를 전전하던 임씨 부부에게 9평형 영구임대주택이 나와 따스한 보금자리를 얻은 것. 그러나 당장 눈앞에 닥친 치료비를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 아이만 살릴 수 있다면 뭐든지, 도둑질만 빼고 뭐든지 할 생각이에요. 지금 죽음과 싸우고 있을 아이를 위해 내 몸이 바스라져도 어떻게든 치료비를 마련할 거예요.”
절망에 빠져 있다가도 아이의 똘망똘망한 눈을 보면 새로운 힘이 솟는다는 임씨. 새봄과 함께 임씨의 마음에도 따스한 봄기운이 전해지도록 작은 기적이 일어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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