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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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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장편소설 심사평

“많은 습작 거친 게 역력히 보이는 유려한 문장의 힘 돋보여”

■ 글·한수산 소설가, 세종대 국문과 교수 ■ 사진·박해윤 기자

2003. 02. 07

여성동아 장편소설 심사평

최종심을 맡은 소설가 한수산(왼쪽), 문학평론가 정과리씨.


최종심에 넘어온 네 작품(<쾌자를 입은 여인> <바람꽃> <월식> <내 마음의 집>)은 그 소설기법이나 다루고 있는 소재가 판이하게 달랐다. 우연히 두 작품이 충청도 방언을 구사한다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그만큼 다양했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따라서 심사의 잣대는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이 시대 여성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을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느냐 하는 점에 맞춰 쉽게 좁혀질 수 있었다.
가족사를 그리면서 충청도 방언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쾌자를 입은 여인>과 <바람꽃>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공통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약속한 듯이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토속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의미 전달이나 소설의 진행에 장애가 되면서 그 맛을 살려내지 못했다든가, 이야기를 묶어서 쌓아올리거나 담아내지 못하고 작은 이야기들을 바닥에 확 흩어놓은 것같이 구성이 산만하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이야기들이 너무 작위적인데다 그 비극에 근원이나 당위성이 없다. 거의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해 물려간다. 인과관계가 없는 산발적 사건 전개에 의존하지 말고 좀더 탄력있는 소설적 구성을 하는 데 노력을 했으면 한다. 서술력 부족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견주면서 당락의 대상이 된 <월식>은 레즈비언을 다룬 이반(離反)들의 이야기다. 이제는 꽤 특이할(?) 것도 없는 소재이긴 하지만,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는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깊이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아직 읽는 사람과 공유하는 자리가 너무 좁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주인공들의 일상을 둔주곡처럼 반복해 나갈 뿐, 인물들의 갈등에 발전이 없다는 점이다. 거기에 인물들의 난삽한 출몰(?)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하나씩 이야기의 매듭을 지어 나가는 구성력을 길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무엇보다도 당선작 <내 마음의 집>은 아름답다. 주인공도, 그녀가 엮어내는 삶도 서글프게 아름답다. 그리고 이 소설은 슬프다. 내 친구 혹은 우리 이웃 누군가의 이야기일 것만 같아서 그렇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우리를 그만큼 후회하게 하고, 회상하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 점이 리얼리티의 갑옷을 입으면서 살아서 뛰는 숨소리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구성도 단아하다. 너무 매끈해서 오히려 자칫하다가는 작위적인 느낌을 줄 정도인데 이것을 섬세한 묘사와 현실감 있는 표현으로 극복해내고 있다. 많은 습작을 거친 것이 역력히 느껴지는 유려한 문장도 이 소설의 힘이 된다. 탁월한 어휘 활용이나 대사의 생동감도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이야기가 너무 늦게 중심권으로 들어가고 있어 읽어가는데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성(性)을 어둡고 거칠고 황폐한 삶의 요인으로 표현한 점 역시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이 점이 이 작가만의 아름다운 개성이 될 지 아닐지는 이제부터 지켜볼 우리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정진을 거듭하여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다리며, 좋은 여성 작가의 탄생에 기쁜 마음으로 마음으로부터의 꽃다발을 걸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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