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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아내 맞아 영화 <오아시스> 같은 사랑 일궈낸 부부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사진·장다혜

입력 2003.02.07 15:45:00

뇌성마비에 휠체어 타고 다니는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인’이라 부르며 지난 크리스마스 때 결혼에 골인, 달콤한 신혼기를 보내고 있는 선원 출신 박상환, 그의 아내 문경희씨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뇌성마비 아내 맞아 영화  같은 사랑 일궈낸 부부

저녁 무렵 박상환(41) 문경희씨(32) 부부가 사는 신혼집을 찾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앞치마를 두른 박상환씨가 문을 열어주었고, 그의 아내 문경희씨가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았다. 뜻밖이었다. 조금 어두운 분위기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지금 막 시작한 신혼부부의 달콤하고 환하고 따뜻한 기운이 집안에 가득했다. 남편 박상환씨가 쑥스러운 듯 앞치마를 벗으며 한마디 한다.
“지금 막 퇴근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이 사람이 미역국을 끓이려던 참이었는데 사실 미역국은 내가 더 잘 끓이기 때문에….”
박상환씨는 앞치마를 입은 모습이 쑥스러웠던지 한참 변명을 했다. 그러면서도 예쁜 커플잔에 커피를 손수 내오기까지 했다. 벽에 걸린 결혼사진 속의 문경희씨는 여느 신부들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손놀림이 부자연스러울 텐데도 손님을 맞느라 곱게 화장을 한 것이 예사 솜씨가 아니다.
본인이 직접 화장을 했느냐고 묻자 남편이 대신 대답을 해준다.
“사실 이 사람은 그런 질문을 참 싫어해요. 전에도 잘 아는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어려서부터 웬만한 일은 혼자서 하는 편인데 화장도 남이 시켜주는 줄 아는 게 속상하다고요.”
문경희씨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성마비를 앓은 터라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생활하는 데 불편이 따른다. 말 한마디 하는 데도 얼굴 표정이 바뀌고 손놀림이 어색하고 힘이 든다. 이런 장애를 가진 문씨와 정상인인 박씨의 결혼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화제가 되었던 영화 가 이들 부부처럼 뇌성마비를 가진 장애인 여성과 신체적으로 건강한 남자의 사랑얘기를 다뤄 입에 오르내리던 터라 이들 부부의 결혼 소식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오아시스 부부’로 모 방송국의 전파를 타기도 했다.
영화를 꽤 좋아하는 문경희씨도 를 봤노라고 했다. 그리고 문씨는 영화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얘기했다.
“오아시스는 너무 어둡고 칙칙해요.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요. 장애인을 둔 가족들은 누구보다 더 많이 장애인을 사랑해주고 도와주고 그러거든요. 저도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당당하게 살 수 없었을 거예요.”
더듬더듬 힘겹게 한마디씩 이어가는 말속에 당당하고 밝은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 이렇게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대전에 있는 모두사랑 장애인 야간학교에 나가면서 아내를 만나게 됐어요. 장애인 야간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쳐준다고 하길래… 제가 워낙 컴맹이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학교로 찾아갔더니 입학금도 등록금도 모두 무료라고 하더라구요. 그때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보니까 나는 장애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신체 건강해 보이지만 박상환씨는 “사실 나도 장애인”이라며 바지를 걷어 보인다. 한쪽 다리가 의족이다. 아내 문경희씨를 만나기 전 직장에서 사고를 당해 발목을 절단했다고 한다.
박상환씨가 찾아간 ‘모두사랑 장애인 야간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정신지체자나 뇌성마비, 다운증후군을 앓는 사람들로 정상적인 학업을 할 수 없는 상태. 문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박씨는 컴퓨터를 배울 목적으로 찾아갔다가 결국 그 학교에서 차량봉사자로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문경희씨하고 연결이 되는 거예요. 학교에서 문경희씨가 지금 어디어디에 있으니까 집까지 좀 데려다 주라는 지원요청 연락이 오고…. 그렇게 자꾸 얼굴을 대하다 보니까 정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제 아내가 대단히 미인이잖아요(웃음).”
문씨를 만나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아내가 미인이라는 대목을 유난히 힘주어 말하는 박씨. 박씨는 문씨를 처음 봤을 때 ‘미인인데 참 안됐다’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집도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문씨의 집 수도가 고장이 났고 박씨가 고장난 수도를 고쳐주게 된 것이 둘의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틈틈이 시를 쓰는 문씨는 박씨에게 시낭송회에 함께 갈 것을 제의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첫 데이트를 시작했다.
박씨는 처음에 문씨 혼자 휠체어를 타고 쇼핑을 하는 것도 신기했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도 신기해서 호기심 아닌 호기심을 가졌다고 한다. 더구나 문씨는 감수성이 풍부했다. 학교를 다녀보지 못했던 문씨는 장애인 야간학교에 온 지 6개월 만에 초등학교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검정고시에 통과했고, 지금은 중등과정을 공부하는 중이다. 불편한 몸으로 여행도 박씨보다 더 많이 했다고 한다.

뇌성마비 아내 맞아 영화  같은 사랑 일궈낸 부부

박상환씨는 젊은 시절 원양어선 선원생활을 했다. 집안이 그리 넉넉지 않아 목돈을 만져볼 요량으로 배를 탄 것이 7년 세월을 훌쩍 넘겨버렸고 귀국을 했을때는 이미 30대 초반의 나이. 오랫동안 타지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친구도 별로 없고 유일한 낙이 술을 마시는 것일 정도로 외롭게 생활했다. 그런데 문씨를 만나면서 함께 영화도 보고 시낭송회도 가는 등 생활에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 이렇듯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생활도 즐기고 지난해 봄에는 바닷가로 여행까지 갔고 그곳에서 박씨는 문씨에게 청혼을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다친 다리의 후유증으로 박씨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다. 박씨가 문씨를 멀리한 것. 문씨는 영문을 모른 채 자신이 뇌성마비 환자이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싶은 마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후유증으로 절단한 발목이 곪으면서 병원에 입원하고 보니 ‘나도 장애인인데 내가 어떻게 뇌성마비 환자를 돌볼 수 있겠나’ 하는 마음에 자신감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연락을 한동안 끊었지요. 또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친구들한테 이 사람을 떳떳하게 소개할 수 있을까, 가족들한테는 뭐라고 말을 하나… 결국 헤어져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하지만 인연은 피할 수가 없었는지 병원에 누워 있는데 텔레비전에서 뇌성마비 부인과 함께 사는 정상인 남자의 생활을 담은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박씨는 그 프로를 보면서 내내 문씨의 얼굴만 떠올렸다고 한다.
이윽고 박씨는 그녀와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가족들은 박씨의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문씨가 장애인이어서라기보다 혹여 살다가 중간에 포기하려거든 아예 시작을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더 큰 상처를 줄 바에는 결혼하지 말고 끝까지 잘살 자신이 있으면 결혼을 하라는 것이 가족들의 당부였다.
문씨 역시 앞으로 다가올 결혼생활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지금은 모르지만 결혼해서 살면 밥 먹을 때 밥알도 흘리고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 싫어질 텐데 그게 걱정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다 알고 결혼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끝까지 함께 갈 거라고 말했죠. 그리고 제 눈에는 이상하게 아내의 장애가 하나도 안 보여요.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예쁜 모습만 보여요.”
결국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25일 장애인 야간학교 교장선생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은 충청도 산골짜기로 들어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이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는 게 라는 거예요. 우리더러 오아시스 주인공이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게 사실 좀 웃기더라구요. 우리는 그냥 다른 노총각 노처녀가 결혼한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거든요.”
아기를 언제쯤 가질 계획이냐고 묻자 문씨는 걱정이 앞서는 듯했다.
“저도 아이는 좋아하지만 내 몸이 불편하니까 업어줄 수도 없고 아이가 커서 우리 엄마는 왜 저럴까 하고 창피해할까 봐 그것도 걱정돼요. 그래서 그냥 둘만 오붓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박씨는 아이가 생기면 신의 선물로 알고 고맙게 받겠지만 아이가 없다면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아내가 계속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비록 중등과정이지만 언젠가 대학교까지 진학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 그가 아내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표현이다.
“세상 사람들은 제가 아내를 돕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제가 아내의 도움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 인생을 보람찬 일상으로 끌어주고 있으니까요. 제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아내가 있어서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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