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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최미선 기자의 여행스케치

전남 화순 ‘복조리 마을’ 체험

■ 글&사진·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2003. 02. 05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 사이엔 복조리를 사고 파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풍습도 사라져 복조리 구경을 좀처럼 할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예나 지금이나 묵묵하게 복조리를 만들고 있는 전남 화순 복조리 마을을 찾아 점점 잊혀져가는 옛추억을 더듬어보았다.

전남 화순 ‘복조리 마을’ 체험

“복조리~ 사시오~.”
새해 벽두에 복조리를 사라고 외치는 아저씨들의 소리를 심심찮게 듣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면 이렇듯 복조리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도 참 많았다.
조리질을 하면 쌀이 일어나듯 복이 일어난다는 의미로 사들이던 복조리. 남보다 일찍 사야 복이 더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새벽부터 사는 사람도 있었고, 또 집안에서 사야 복이 집으로 들어온다 해서 복조리 장수를 대문 안으로 불러들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새해 첫손님은 복조리 장수가 ‘넘버 원’을 차지하곤 했다. 때문에 예전에는 집집마다 안방이건 어디건 복조리를 매달아 놓았던 모습도 생각난다.
이제는 ‘그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 등의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추억의 복조리’. 이렇듯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지며 아쉬움을 안겨주는 가운데 예나 지금이나 묵묵하게 복조리를 만드는 곳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전남 화순군에 위치한 송단리 마을. 이곳은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복조리 때문이다. 송단리 마을이 복조리마을의 대명사가 된 건 주변 환경이 받쳐주기 때문. 백아산 줄기에 둘러싸인 이곳 주변에는 복조리의 재료가 되는 산죽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다. 때문에 조상 대대로 겨울마다 복조리를 만들어 파는 ‘복조리 마을’이 되었다.
송단리 마을 사람들은 추수가 끝난 10월말, 찬바람이 불기 시작 할 즈음이면 산죽을 베러 인근 산에 오른다. 산죽은 보통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굵직한 대나무가 아닌, 연필 지름보다 약간 가는 굵기. 이것을 네다섯 조각으로 가른 후 말려둔다. 그런 다음 뻣뻣한 대가지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반나절 정도 물에 담갔다가 말린 후 겨우내 복조리를 만든다.
“우리 마을이 전국에 복 안겨주는 곳이제”
전남 화순 ‘복조리 마을’ 체험

열다섯 살에 복조리 마을로 시집와 60년 동안 복조리를 만들어왔다는 이점순 할머니.


십수년 만에 아랫녘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장식하고 난 며칠 후 송단리 마을을 찾았다. 교통수단이 여의치 않던 옛시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3박4일은 걸려야 닿을 수 있을 만큼 심심산골에 자리한 복조리 마을. 이곳에 30여 가구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살고 있다. 좁디 좁은 산길을 헤치고 아담한 마을 초입에 이르니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고드름과 이미 내린 눈이 지붕 위와 돌담 위에 고스란히 쌓여있는 풍경이 앙상한 나뭇가지와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았다.
날씨도 제법 쌀쌀한데다 저마다 방에 들어앉아 복조리를 만드느라 그런지 마을 전체가 아주 한산한 분위기다. 하지만 복조리 마을답게 집집마다 대문 앞에 대나무 가지를 말리느라 여기저기 늘어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아니나 다를까. 부녀회장 집에 들어가니 몇몇의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복조리를 만들고 있었다.
“추운데 어여 들어오랑께. 우린 겨울이면 이렇게 모여서 복조리를 만들제. 내가 여기서 제일 오래 됐는디… 열다섯살에 시집와서 지금껏 만들었으니 한 60년 되능가? 요즘은 아들이 힘들다고 못하게 하는디 아, 놀면 뭐하능가? 근데 요즘은 복조리 사러 오는 사람도 별로 없어 신이 안나제. 경기가 나쁘다고 안 오고… 그러니까 (기자를 보고)색시가 우리 마을 좀 잘 얘기해서 사람들이 복조리 좀 많이 사게 해주랑께. 아, 복조리 사가면 복도 듬뿍 받고 우리도 좋고 그러잖여.”

전남 화순 ‘복조리 마을’ 체험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물씬 풍겨지는 전남 화순 ‘복조리 마을’ 풍경들.


먼 데서 온 손님을 반갑게 맞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와중에도 연신 손에 침을 튀겨가며 복조리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던 이점순 할머니(75). 오랫동안 복조리를 만들어온 할머니의 손은 나무껍질처럼 까실까실하고 손가락이 뭉툭해져 있지만 오염 없는 시골 공기를 마시고 지내서일까? 도심에서 보는 웬만한 중년 여성보다 건강해 보인다.
아침을 먹은 직후부터 모여든 아낙네들이 이곳에 둘러앉아 하루종일 복조리를 만들다 보면 ‘누구네 집은 어떻고 누구네 집 자식은 어떻고…’ 하는 식으로 온갖 동네 얘기가 다 나오는 게 동네 방송국이나 다름없다.
쓱싹쓱싹 능숙하게 복조리를 만드는 손놀림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복조리 마을에 온 이상 적어도 내 손으로 직접 ‘작품’ 하나쯤은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기자 역시 구석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복조리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보는 것과 달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복조리를 제대로 만들려면 우선 바탕이 움직이지 않도록 발바닥으로 눌러준 상태에서 고르게 엮어야 하는데, 발바닥으로 고정시키려면 내내 한쪽 무릎을 세워야 하고 한쪽 무릎을 세운 상태에서 엮자니 허리를 약간 비틀어야 한다. 그런 자세로 서너 개쯤 만들다 보니 어느새 옆구리가 결리고 목이 뻣뻣해지는 게 슬슬 몸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뻣뻣한 대나무 가지를 이리저리 끼우다 보니 손끝이 까칠거리는 게 마치 기타를 처음 배울 때의 ‘통증’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개 엮는데 10분은 족히 걸린 듯싶다. 하지만 복조리 마을 아낙네들이 한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5분 정도. 역시 ‘숙달된 조교’와 신참과는 두배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오래 버티며 잘 만드는 사람도 하루 50개를 넘기지는 못한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복조리 값은 크기에 따라 한개에 5백~6백원. 앉아서 만드는 것도 일이지만 산에 올라가 손수 대나무를 잘라와 일일이 쪼개서 말리고 물에 불리는 수고에 비하면 그야말로 ‘껌값’이라는 생각에 은근히 안타까움이 일기까지 한다.
“백화점에선 한쌍에 5천원도 받고 만원도 받고 한다는디… 그러니까 장사들을 해먹고 사는 거제. 우린 그저 ‘몸공’만 받는 거여. 따지고 보면 남는 것도 없제. 어디 돈 보고 하남? 그냥 노느니 하는 것이제. 이거 하고 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당께. 그래도 요것은 신사여. 나무 베러 가면 가시에 찔리고 옷도 다 찢어진다닝께. 시방은(지금은) ‘구루마’라도 있제. 예전엔 일일이 지게 짊어지고 내려왔다닝께. 젊은 사람들이 누가 요런 것 하것소? 우리 같이 늙은 사람이나 하제. 인자, 앞으론 복조리 마을이란 것도 없어질탱게. 고것이 좀 아쉽기는 하제.”
그나마 예전에는 불티나게 팔리던 복조리가 요즘은 복을 사 담는 풍습이 점점 사라지면서 개별적으로 사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그저 중간 상인들이 때에 맞춰 복조리를 팔기 위해 주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간간이 자녀들에게 옛 풍습을 알려주고 복조리를 직접 만들어 보게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한다. 그러면 대개 아이들이 자신이 만든 복조리를 신기해하며 오히려 어른보다 더 열심히 만든다고 한다.
“마음 같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보라고 하것는디 그냥 만들라고 하면 귀한 건 줄 모르고 대나무 다 망가뜨려서 대나무 값만 좀 받제. 그거(복조리 재료) 만드는라 얼마나 애썼는디… 돈 주고 사면 좀더 조심스럽게 만들잖여.”

전남 화순 ‘복조리 마을’ 체험

송단리 사람들은 겨울이면 옹기종기 모여앉아 하루종일 복조리를 만든다.


처음엔 몸이 뻐근해 힘들었지만 한동안 만들다 보니 어느새 손놀림이 익숙해지는 게 복조리 만드는 재미가 나름대로 쏠쏠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배가 출출해질 즈음 부녀회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밥을 지어 상을 내온다. 반찬이라곤 오로지 김치 한가지였지만 정이 듬뿍 담긴 훈훈한 시골 인심까지 맛보고 나니 마음이 푸근해지는 듯했다.
기념 삼아 직접 만든 복조리와 함께 좀더 넉넉한 값을 쳐서 복조리 10개를 사들고 나오니 “이 복조리 갖다 걸어놓고 나중에 부자 되면 전화 좀 하랑께” 하며 복조리 마을다운 덕담을 던진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같이 복조리를 만들며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드는 느낌이랄까? 시골 아낙네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을 나설 땐 마치 고향을 떠나는 듯 서운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복조리 마을에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옥과 IC를 빠져나오자마자 오른쪽 화순 방향으로 9.5km 가면 원리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못 미처 왼쪽 길로 들어가거나 삼거리에서 원리 동네를 통과하면 송단1구라는 표석이 나오는데 그 표석을 따라 계속 들어가면 된다. 참고로 복조리를 구입하거나 마을을 방문하려면 송단마을 이장댁(061-373-9514)으로 연락하면 된다.
복조리 마을에서 자동차로 10여분 정도 걸리는 곳에 화순온천단지가 있어 겨울여행을 더울 알차게 해준다. 방랑시인 김삿갓도 방랑을 멈추고 이곳 화순에 머물렀다는데… 그만큼 천혜의 자연경관이 무공해 상태로 남아있어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조용한 휴식을 취하기에는 그만이다.
“복조리 마을 옆엔 뜨끈한 청정무공해 화순온천도 있어요”
전남 화순 ‘복조리 마을’ 체험

화순온천의 대표적인 곳으로 꼽히는 금호화순 리조트 전경.


화순온천단지의 대표적인 곳은 금호화순 리조트. 대형 온천과 온천수 수영장, 어린이 정글놀이터와 대형 튜브슬라이더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로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곳의 자랑은 뭐니뭐니 해도 화순온천의 대명사답게 다양한 아이템의 온천탕. 숙지황, 당귀, 백작약, 인삼 등 원기회복제로 알려진 열가지의 한약재로 만든 ‘십전대보탕’을 온천에 응용한 한방온천탕을 비롯해 동굴탕, 황토탕, 안개사우나 등 여덟가지 종류의 탕이 마련돼 있다. 특히 안개사우나방에는 검은색의 몽글몽글한 자갈이 깔려 있어 몇 걸음 걷다보면 발에 지압이 가해져 시원함과 개운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화순 온천수는 마그네슘, 칼슘 등 20여종의 광물질이 다량 함유된 알칼리성 라듐온천으로 이곳에서 온천욕을 하면 류머티즘, 만성피부염, 습진, 무좀 등에 큰 효험을 볼 수 있고 변비, 숙취에도 좋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친 건 금물. 온천욕은 보통 식사 후 1시간 정도 지나서 하는 것이 좋다. 또 뜨거운 물에 너무 오래 몸을 담그는 것도 삼가야 한다. 온천욕을 많이 하면 좋다는 생각에 탕에 너무 오래 있거나 하루 4회 이상 온천욕을 하면 오히려 몸에 해가 된다는 것.
또 일명 이태리 타월로 불리는 때밀이 타월로 피부를 있는 대로 힘껏 미는 것은 뜨거운 물에 불은 피부를 과도하게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온천수에는 몸에 이로운 다양한 광물질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온천 후 수건으로 닦아내기보다는 가급적 자연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말리는 것이 좋다.
문의 061-372-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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